대학원의 위기
대학원의 위기
  • 이덕환 논설위원
  • 승인 2018.06.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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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대학원 학생들이 절박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言必稱 ‘학문’을 하겠다고 들어온 대학원의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학생이면서 동시에 대학의 행정직원과 학회 간사에 이르는 一人多役을 떠맡아야 하는 어정쩡한 정체성에 대한 하소연과 일부 교수들의 낯 뜨거운 갑질에 대한 불만이 핵심이다. 대학원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믿고 싶지는 않지만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원 학생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이어야만 한다. 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요구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학생이 강의실이나 실험·실습실에서 학부 학생을 가르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역할은 미래의 교육자에게 주어지는 훈련의 일부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대학원 학생에게 강의를 통째로 맡기는 일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

대학원 학생들에게 대학의 행정업무를 맡기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행정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런 인력을 마음 놓고 채용할 재정적 여유도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에는 학생의 입장도 절박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마땅한 다른 일자리가 없었다. 결국 대학원 학생의 행정 참여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대학과 학생이 相扶相助하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학과 학생의 입장이 모두 변했다. 대학의 행정업무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고 전문화 됐다. 학생들에게 맡길 수 있는 행정업무도 크게 줄어들었다. 대학원의 교육이 강화되면서 학생들도 본연의 학업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규 직원과 같은 수준의 행정업무를 수행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제 대학의 모든 행정업무는 정규 직원에게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원 학생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대체인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물론 대학이 근로 장학제도를 운영할 수는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맡기는 업무와 근무 형태와 보수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필요하다. 근로 장학생에 대한 부당한 ‘갑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갖춰야 한다.

대학원 학생들을 교수가 참여하는 학회·벤처·용역사업에 값싼 인력으로 활용하는 일은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학생들이 교수의 개인적 사회 활동을 통해 미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명분은 옹색한 것이다. 교수들의 개인적인 사회 활동에 학생들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한 이유로 학생들을 참여시킬 경우에는 사회적 관행에 따라 정당한 보수와 처우를 보장해야 하고, 근로기준법도 엄격하게 지켜야만 한다. 어떠한 예외도 인정될 수 없다.

일부 교수들의 갑질은 정말 난처한 일이다. 범죄 행위에 가까운 일탈 행위는 철저하게 밝혀내서 엄중하게 처벌해야 마땅하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교수들을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훈육과 인권 침해의 경계가 언제나 명백한 것은 아니다.

교수에게 불만을 가진 학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수도 모든 학생들에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스스로를 ‘을’이라고 비하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교수와 대학원 학생 사이의 신뢰를 강화하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패쇄적이기 쉬운 연구실의 연구 환경을 개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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