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인식 변화·대학의 비전 제시 있어야 성공 가능
교수 인식 변화·대학의 비전 제시 있어야 성공 가능
  • 이해나
  • 승인 2018.06.11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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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스마트러닝, 어디까지 왔나 
고영훈 한국외대 교수(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의 초급 마인어 수업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단어시험을 치르고 있다. 고 교수는 직접 앱북을 제작하는 등 자신의 수업에 스마트러닝을 열성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외대 지식출판콘텐츠원
고영훈 한국외대 교수(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의 초급 마인어 수업 수강생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단어시험을 치르고 있다. 고 교수는 직접 앱북을 제작하는 등 자신의 수업에 스마트러닝을 열성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외대 지식출판콘텐츠원

2000년대 말, ‘스마트러닝’(Smart Learning·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한 학습자 중심 맞춤형 학습법) 개념이 등장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고, 같은 해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디지털교과서 상용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스마트러닝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울산대가 발 빠르게 스마트러닝을 도입하고, 2014년 이화여대가 스마트러닝 운영의 정점을 찍었지만, 초기만큼 저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스마트러닝 열풍이 한풀 꺾였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의욕적으로 도전에 나선 대학과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대학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의 사례를 좇다 보면 4차 산업혁명시대 대학교수의 교수법은 어때야 하는지 시사점을 잡아챌 수도 있다.

스마트러닝 넘어 AI러닝 선도를 노리는 한국외대

한국외국어대(총장 김인철, 이하 한국외대)가 강의에 스마트러닝을 도입한 건 이제 다섯 학기째. 널리 퍼진 건 아니지만 깊이는 어느 대학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고영훈 교수(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의 초급마인어 수업은 특히 인상적이다. 고 교수는 “수업 시간에 종이를 사용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아이패드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출석을 체크한다. 고 교수가 만든 앱북이 교재고, 학생과 소통은 아이튠스 유(iTunes U·교수자-학습자 간 소통이 가능한 애플의 교육용 앱)를 통해서 한다. 

앱북으로 하는 공부는 기존 온라인 동영상 강의와 무엇이 다를까. 고 교수는 “기능이 세분돼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급마인어 강의를 예로 들면 학습자가 자신의 발음을 녹음해 원어민의 발음과 비교해 들어볼 수 있고, 목표 학습 기간을 설정하면 자동으로 일일 공부량이 할당되는 식이다. 수강생 가운데 92%가 고 교수의 수업 이전에는 스마트러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지만 수업 만족도는 89%에 달했다. 다른 스마트러닝 수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학생도 95%였다.

한국외대의 스마트러닝 실험을 이끈 이는 권원순 사업지원처장과 지식출판콘텐츠원(이하 콘텐츠원)이다. 이리나 콘텐츠원 e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스마트러닝 시대 학습자는 크리에이터로, 교수자는 디자이너로 변모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마트러닝을 통해 학습자는 단순히 지식을 주입받는 객체에서 벗어나 지식을 재구성해 영상이나 이북 등을 직접 제작하게 된다.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던 교수는 각종 디바이스·플랫폼·교수법을 총괄해 수업을 꾸려가는 디자이너로 탈바꿈한다. 신선호 콘텐츠원 팀장은 “기존 강의 환경에서는 학습자가 암기와 이해만 할 수 있었다면, 스마트러닝을 통해서는 응용·분석·평가·창조까지 가능해진다”며 “학습자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는 교수법”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원은 한국외대가 기존에 보유한 데이터베이스에 스마트러닝을 통해 쌓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데이터까지 더해 빅데이터를 만들고, 향후 AI러닝으로까지 확대하는 포부를 갖고 있다. AI러닝을 통해 학습자는 시간별 집중력까지 점검받고, 제대로 이해 못한 부분은 자동으로 복습하게 되는 등 완벽한 맞춤형 교육을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신선호 팀장은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비용 투자도 필요한 만큼 스마트러닝을 이끌어가는 대학 내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러닝 선구자들, 의제 선점에서도 앞서

지난 2012년 카이스트(총장 신성철) 교수학습혁신센터는 에듀케이션 3.0을 출범해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에듀케이션 3.0이란 스마트환경을 활용한 학습자 중심의 상호작용식 수업으로, 스마트러닝의 일환이다.

카이스트는 현재 에듀케이션 4.0으로의 전환을 진행 중이다. 이태억 교수학습혁신센터장은 에듀케이션 4.0이 3.0과 비교해 달라진 점에 대해 “△플립러닝 이외 수업 방식의 다양화(강의를 수업 시간의 50% 이내로만 유지하면 어떤 방식이든 허용) △사회적 가치 추구”를 꼽았다. “지금까지 창의력·팀워크·커뮤니케이션 능력·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에듀케이션 4.0으로는 사회에 도움 되는 인재를 길러내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스마트러닝에 철학을 접목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카이스트는 현재 연간 150여개 강좌에 스마트러닝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전체 강좌수의 6% 수준으로, 오는 2031년 50%까지 늘릴 방침이다. 

“수강자가 중심이 돼야”

지난 4월 24일 싱가포르국립대 관계자가 경희사이버대(총장 조인원)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스마트러닝 활성화를 위해 경희사이버대에서 노하우를 배우려는 목적이었다. 경희사이버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2009년 국내 대학 최초로 모바일러닝을 도입했고, 거의 모든 강좌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수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사이버대는 스마트러닝 앱을 운영 중이다. 표준화된 웹 환경과 달리 앱은 OS별 최적화를 진행해야 하므로 유지가 쉽지 않다. 김철회 시스템운영개발팀장은 “수강자 입장에서는 웹보다 앱이 편리하므로 비용이 발생해도 꾸준히 개발·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희사이버대에 재학생의 국적은 30여개에 이른다. 김 팀장은 “통신 환경이 한국만큼 좋지 않은 국가가 많다”며 “이들 재학생을 위해 다운로드 기능(와이파이 환경에서 미리 콘텐츠를 저장해둔 후 스트리밍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 중”이라고 말했다.

신종우 미래융합교육학회장(신한대 치기공학과)은 2011년부터 개인적으로 스마트러닝을 진행해 왔다. 그는 “대학에 스마트러닝 환경을 구축해 달라는 요구가 많은데 사실 필요 없는 일”이라고까지 강경하게 말했다. “교수와 학생 손에 들린 스마트폰만 있으면 스마트러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신 회장은 스마트러닝이 대학가에 고루 확산되지 못한 원인으로 “교수의 불통”을 꼽았다. 기계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들이 기존 강의 환경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요즘 AI 스피커를 활용해 학생과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신 회장은 “교수는 스마트폰을 쓰는 학생을 보고 ‘딴짓한다’고 눈총을 줄 게 아니라 그와 연결할 통로를 찾아야 한다”며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하면 학습자가 즐거워하는 살아있는 수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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