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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설
역 설
  • 이상훈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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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역설


정치는 항상 역설이 지배하는 곳이다. 독재자일수록 선함과 민중의 지팡이임을 외치고, 깨끗치 못할수록 근사한 호들갑을 부리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무능할수록 폼은 여간 내지 않았고, 게으를수록 절차는 더 따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지만 항상 성황리에 재방송되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본토의 사막이 아니라 중동의 사막에서 황혼의 결투를 끝낸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정치적 역설의 대가급일 것이다. 종교심이 깊은 이라크 국민들을 이슬람 문화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전쟁을 감행하고,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명분으로 무차별 대량살상을 목표로 하는 고성능 정밀 유도 폭탄들을 퍼부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일명 깡패 국가들에게는 미사일을 팔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으면서, 정작 미국은 세계 1위 무기 수출국이다.

 

최근 국내에서 회자된 역설은 그래도 약간 참신한 면이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면서 대통령하는 참 재미있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는 말이 통하는 사람(easy man to talk to)으로 평가된 노대통령이 정작 국내에 와서는 말이 안 통한다고 언론과 여론에 대해 투덜된 말이다.

 

사실, 놓고 보자면 노대통령에 대한 부시의 평가 자체가 이미 역설적이기도 하다. 가장 어려운 국제 현안으로 부각된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조정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가장 까다로운 문제를 현안으로 마주 앉은 대화에서 말이 쉽게 풀린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지어 수백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입장 조정이 편하고 만만하게 이루어졌다면,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는 우리로서는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친 김에 조금 심각하게 말해 보자. 자주성이라는 말은 자유로운 주체성을 확립한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고, 주체는 상호 인정을 통해 정립됨은 물론이다. 그래서 자주 외교란 책임과 국제관계에 대한 상호 인정을 토대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현안에서 당사자의 안전과 존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어떤 결정에 쉽게 도달하는 것은 자주 외교일 수 없다. 만약 통치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높은 수준의 외교가 이런 상식을 어기고 수행된다면 한반도는 평화로부터 한 걸음 후퇴하고 말 것이다.

 

고금을 통해 진리로 여겨지는 신조 중에 하나가 젊음에 대한 믿음이다. 젊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더라도 최소한 그 가능성을 믿는다. 이를 믿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대통령이 기대와 실망을 버무린 역설의 정치인이 아니라 자주 외교를 개척한 젊은 지도자로 우뚝 서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상훈 편집기획위원 대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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