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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의 최대수치
한국대학의 최대수치
  • 도정일 논설위원
  • 승인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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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어느 시간 강사의 죽음

   마침내, 대학의 시간 강사 한 사람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자기 소멸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것인지 그 정확한 사연 전부를 우리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서로 판단컨대 대학 ‘시간 강사’ 신분에 대한 그의 좌절과 절망이 자살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명을 달리한 백준희 씨의 명복을 빌면서 (명복을 빌다니, 이 무슨 잔인한 소리냐), 차제에 우리는 다시 한번 시간 강사라는 이름의 슬픔과 치욕이 ‘한국 대학의 최대 수치’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대학, 정부, 사회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백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좌절과 절망은 그 혼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 강사’가 슬픔과 치욕의 직종이라는 것은 이미 대학가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심지어는 일부 자연과학)의 경우, 젊은 인재들이 학문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국내 학위를 취득하고 시간 강사가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이미 치명적 선택이 된지 오래다. 그것은 제 손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경제적 무능력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방법이 없는 폐인, 어떤 안정성과도 작별해야 하는 일종의 노숙자가 되기로 작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 후에도 근 10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바친 젊은 인재들이 ‘학문의 길’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이처럼 무능력자, 폐인, 노숙자 같은 신세로 전락해야 한다는 것은 당자들에게는 슬프고도 치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학문 후속세대에게 이런 슬픔과 치욕을 안긴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한국 대학의 크나큰 수치이다. 첫째, 대학이 학문 후계 세대를 폐인지경으로 몰아넣는 현실을 지속시키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 데도 대부분의 대학 경영자들, 그리고 다수의 교수들이 그 문제를 대학의 수치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는다. 대학들은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자원과 수단이 없는 것인가? 시간 강사 문제는 국내 학문 토대의 전면적 붕괴와 후속 학문세대의 단종(斷種)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대학 경영자들은 이런 위기를 풀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수단을 강구했는가? 그럴 의지가 있기나 한가?

    정부와 사회도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 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학 교육을 위한 사회와 국가의 투자는 최소한 지금의 세 배로 증대되어야 하고, 연구 인력의 배출과 유지를 위한 새로운 학문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인력의 안정적 고용을 위한 제도들이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없는 것은 의지, 문제의식, 정책이다. 

 도정일 논설위원 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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