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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심리상담치료 활성화가 필요하다 
성 심리상담치료 활성화가 필요하다 
  • 김정휘 춘천교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6.04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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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친고죄 폐지, 성범죄자의 거주지 주소와 사진 공개, 강간 살인범과 13세 미만 대상 성추행범에 대한 공소시효제 폐지, 몰카 촬영 엄벌, 성범죄 교원의 징계 시효를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연금 수급권 박탈……….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이렇듯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법조계와 정치계, 교육계, 종교계, 공사 기업체, 군부대 등 곳곳에서 성 관련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겉으로는 신사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던 사이코패스 형 인물이 성범죄 가해자로 밝혀진 경우도 많아 사람들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필자를 포함해 이런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필자는 성 관련 사건·사고, 특히 ‘미투’로 대변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기혼자의 성적 욕구 불만’을 꼽고 싶다. 실제로 2016년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는 45세 이상 중년 남성 가운데 절반이 외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미투 가해자들을 보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론이 떠오른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인자한 남편이자 자상한 부모의 이미지였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사이기도 했다. 미투 가해자로 밝혀지기 전 이들의 공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성범죄와 연관이 없는 인물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흑백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이란 없었다. 아렌트는 실존적 지능(survival intelligence)에 필요충분조건인 선행 조건(상황과 대상, 본인의 성적 충동 욕구 및 기존의 대처 방식과의 조합)이 갖춰지면 신사 숙녀라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다른 인격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사건화된 범죄나 暗數범죄(hidden crime)에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기혼자가 성범죄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복잡해서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섹스리스’ 부부를 줄이는 것이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부부 사이의 성 상담과 성 심리치료를 통해 부부간 성생활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 상담과 성 심리치료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정보 공개가 비교적 잘 돼 있는 대학부속병원에서도 성 의학 치료 담당과의 담당의는 알기 어렵다. 성 상담 전담기관도 흔치 않다. 수요자의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미투 가해자가 모두 부부간 성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 문제 해결을 통해 성범죄를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부부간 성관계 문제 해결은 심리치료나 성 상담심리학의 영역인데 적합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성 상담과 성교육은 청소년, 대학생, 미혼남녀, 기혼남녀, 노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적극적이고 공적인 서비스가 성범죄를 예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즉 성 심리치료 전문가에게 접근할 기회를 넓히는 것이 미투 사건의 재발 방지에 효과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이 자칫 미투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강화돼야 한다. ‘성범죄를 저질렀다가는 완전히 매장당한다’는 인식이 퍼질 정도로 강화돼야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육공무원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무조건 그의 연금을 박탈해야 한다. 퇴임해 보니 노후에 경제권을 박탈당하는 것만큼 끔찍한 처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혹시 미래에 미투의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효과적인 인지행동치료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성적 충동이 든다면 잠시만 감정을 억제하고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이 내 딸이라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될 것이다. 

 

김정휘 춘천교대 명예교수·교육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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