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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호 새로 나온 책
924호 새로 나온 책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0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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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혁명의 역사, 인간의 역사

시간의 흐름은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떠밀려가고 있다. 민족의 역사도 많은 경우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혁명은 민족이 역사에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자립성을 선명하게 역사 속에 확립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강렬한 의지와 행동의 축적이다. 이때 민족은 무한한 힘을 자각하게 되고 시간의 흐름은 흡사 멈춘 듯이 보인다. 사회의 모든 관계, 모든 가치는 역전돼 강대한 것은 卑小해지고 비소한 것은 강대해진다. 그리하여 민족은 역사의 주체가 돼 자기 존재를 영원히 세계사 속에 새겨 넣게 된다.
1789년부터 10년간은 프랑스인이 세계사의 주역을 담당했던 시기다. 프랑스 혁명이라 불리는 이 혁명은, 이른바 부르주아 혁명의 모범일 뿐 아니라, 역사상 모든 혁명의 모범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혁명도 역시 인간이 일으킨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을 이상화한 나머지 이따금 볼 수 없는 것을 이 혁명 속에서 보거나, 반대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나는 이 혁명을 인간이 일으킨 인간다운 혁명으로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혁명은 인간의 강점과 약점,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고, 또 바로 그 때문에 모범적인 혁명으로 평가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미 수많은 글들이 씌어졌다. 혁명과 관련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대강 이야기해보려고만 해도 책 몇 권의 지면이 필요한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많은 사건이나 인물을 늘어놓기만 하면 그것으로 프랑스 혁명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만 그런 건 아니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과거의 경험이나 사실에 제각각의 중요도를 부여하고, 취사선택을 하고, 관련 상황을 따져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리라.
프랑스 혁명 연구자인 영국인 제임스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혁명의 역사를 쓰는 데는 서술을 좀 줄이고 사색을 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뭐라 해도 모든 사건이 꼭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모든 인물이 꼭 같은 의미를 지니며, 모든 법률이나 제도가 사회의 진로에 꼭 같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장에 찬성한다.

가와노 겐지 교토시립예술대 교수,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한승동 옮김, 두레, 2018.5) 머리말 중에서

 

새로 나온 책

궁중의례미술과 십이장 도상 | 김주연 지음 | 소명출판 | 320쪽
“선비들이 사용하는 부채 장식인 선추에 왜 원숭이 장식을 했을까?”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가 복식박물관에서 떠올린 작은 궁금증이 박물관 유물들과 만나 책으로 탄생했다. 중국 황제의 면복에 시문된 십이장은 중국 고대 문헌인 『상서』, 「익직」 편에 언급된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의례미술의 핵심이자 면복제도를 통해 동아시아에 공유된 장식이다. 저자는 십이장이 문양적이면서도 회화적인 복합적 양상으로 구현됐기에 ‘도상’으로 지칭했다.  책에는 중국의 고대 갑골문자부터 중국 황실의 복식, 조선시대 궁중의례에 사용된 십이장을 살필 수 있는 경복궁 근정전의용 장식 보개, 깃발 보자기까지 141개의 십이지 도상 그림을 총망라해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게 구성돼 있다. 그동안 면복에 시문된 문양만 주목받으며, 복식의 틀에서만 연구됐던 십이장을 저자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유교사회가 추구하는 이념과 지표로 살폈으며, 문자 이상으로 직접적인 매체가 되는 시각 이미지들의 상징체계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려 했다. 

 

러시아의 만주·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 | 김용구 지음 | 푸른역사 | 408쪽
이 책은 17세기에서 20세기 초 러일전쟁 직전까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 청, 조선 및 일본, 구미가 얽혀 치열하게 다투고 외교전과 통상을 벌였던 자취를 국제정치학의 시각해서 조명했다. 러시아의 동진 과정과 청·조선과의 만남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독특한 국제정치적 행동 양태를 ‘슬라브적’이라고 표현한 저자는, 서유럽에 대한 열등의식,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 세계를 구제한다는 구원의식의 3가지가 러시아의 특징적인 대외인식이라고 읽어냈다. 『세계외교사』의 저자이자 19세기 한국외교사 5부작의 마지막 책인 이 책에서 저자는 방글라데시-광둥-링딩으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아편의 길’에 입각해 한국외교사를 서술하는 것이 유럽중심주의에 치우친 것이라는 의문점을 갖고, 한반도-만주-러시아, 특히 러시아의 독특한 행위자 역할을 규명해내 서양 중심에 경도된 기존 세계외교사를 보완하려 했다. 

 

만주족 이야기 | 이훈 지음 | 너머북스 | 460쪽
이 책은 14세기 부족 시기부터 18세기 청 제국 극성기까지 만주족의 역사를 주제별로 나눠 5개의 장으로 서술했다. 1부에서는 건주여진의 전신인 오도리부의 역사를 조명하고, 해서여진 4부가 형성되고 멸망하기까지 그들의 이동과 충돌과 융합의 과정을 그렸다. 2장에서는 만주족이 국가를 형성하고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서술했고, 3장에서는 만주족을 만주족답게 만들었던 특질과 더불어 만주어, 전투력, 샤머니즘의 문제와 함께 그간 잘 언급되지 않았던 씨족과 성명, 가추하놀이까지 서술했다. 4장에서는 만주족이 청 제국의 다른 민족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제도와 문화가 발생하고 그것이 변화한 현상을 그렸고, 5장에서는 청 제국의 변경을 구성한 민족 가운데 토르구트, 시버, 허저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추적한다. 만주어를 한국어로 대역하고 뜻풀이를 더한 국내 최초 『만한사전』의 편찬자이기도 한 저자는 현재 중국은 청제국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며,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한국인이 만주족과 청에 대해 아는 것은 이웃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 이전에 자국과 자민족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360쪽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모두 입을 모았지만 트럼프는 당선됐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진실의 샘은 어디 있을까? 저자의 연구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박사과정에서 특정검색어의 추세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를 연구한 경제학 전공자인 저자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당시 일부 주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보다 ‘깜둥이 대통령’이 더 많이 검색된 점,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 검색과 가입이 열배 늘었다는 점을 발견해 논문을 발표했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데이터과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 책은 검색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들의 숨겨진 진짜 욕망과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종주의뿐 아니라 정신질환, 성생활, 아동학대, 낙태, 광고, 종교 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충격적인 인간 본성을 거침없이 폭로한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식이 대부분 거짓말로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 오민석 지음 | 살림 | 164쪽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 새로운 시적 표현들을 창조해왔기 때문.” 스웨덴 아카데미가 지난 2016년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면서 밝힌 이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딜런의 세계 안에는 먼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무수한 철학적, 사상적, 예술적 유산들로 가득하며, 딜런은 이 거대한 창고를 뒤지고 뒤져 수많은 장비들을 끄집어내, 그것들을 마침내 자신의 언어로 뜨개질한다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딜런을 저항가수로만 보려는 시각, 가스펠 가수 시절은 악몽이라는 지적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딜런의 모든 사유 끝이 신에 대한 성찰임을 말하고 있다. 이미 미 본토에서 딜런에 대한 연구가 저널리즘의 차원을 넘어 ‘딜런학’(Dylanology)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대중문화 연구’가 일천한 한국의 상황에서 딜런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대중문화 연구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한 책이다.

 

신들의 시간 | 정혜주 지음 | 틀을깨는생각 | 392쪽
고고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라틴아메리카로 명명되는 중부아메리카를 지리적으로 ‘중앙’이라는 뜻을 지닌 메소아메리카로 표현한다.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시기는 고작 500여년에 불과하기에 실제 원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세계관과 문화의 뿌리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3천5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시간대에서 저자는 그간 지나치게 신비롭게 묘사돼왔거나 이해하기 힘든 풍습으로 과장했던 서구의 시각을 걷어내고, 원주민들의 고유한 문화 속에 고대 문명의 질서와 규칙이 녹아 있음을 2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와 세세한 삽화,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책에서 소개된 각 문명의 이름인 마야, 떼우띠우아깐, 아스떼까는 각 지역의 명칭과 대체로 일치한다. 저자는 각 문명의 최대 발전기를 중심으로 문명을 대표할 수 있는 유적과 사건을 선택해 중점적으로 기술했고, 풍부한 주해, 설명을 곁들여 3천 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로서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도록 독자들을 인도한다.

 

우리 몸 연대기 | 대니얼 리버먼 지음 | 김명주 옮김 | 최재천 추천 및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592쪽
이 책은 600만 년 전 아프리카 숲속 나무에서 내려와 걷기 시작한 유인원들 중에서 다른 인간 종들과의 경쟁을 이기고 살아남은 최후 승자 호모 사피엔스의 몸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몸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전염병, 기아, 영양실조는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사라졌지만, 알레르기, 근시, 불면증 등 비감염성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건강 문제를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 본다. 혹독한 환경 아래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 몸이 풍ㅇ요롭고 안락한 현대 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직접 고인류의 뼈를 만지며 인간 몸의 구조와 기능이 왜,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화려한 수사와 현학적 개념 대신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연구에서 얻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데이터와 과학적이고 치밀한 논증을 바탕으로 인간 몸과 문명의 공진화를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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