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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간 또 다른 경쟁 부추기는 ‘공영형 사립대’ 정책
대학 간 또 다른 경쟁 부추기는 ‘공영형 사립대’ 정책
  • 윤지관 한국대학학회장(덕성여대)
  • 승인 2018.06.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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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형 사립대 정책, 취지와 다르게 변질됐다는데

현 정부가 대학서열구조 해소방법의 일환으로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영형 사립대’ 도입이 애초 취지를 상실하고 대학들 사이에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장(덕성여대·영문과)이 영미문학연구 반년간지 <안과밖>제44호에 기고한 「현정부 대학정책, 제대로 가고 있는가: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경쟁력 사이에서」 중 주요 주장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새 정부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가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이며, 국립대 육성 및 공영형 사립대 도입과 사학비리 근절이 중요한 국정목표로 제시돼 있다. 사학비리 근절은 어느 정부나 내세운 목표지만 공영형 사립대 도입은 이 정부만의 것으로 사립 중심의 한국 대학 편제를 공영성이 강한 형태로 바꿔나가기 위한 핵심 기획으로 제시돼왔다. 새 정부는 거점 국립대 육성과 그것을 토대로 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그리고 사립대 공영화를 서열구조 해소의 해법으로 내세운다.

사실 진보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서열화로 인한 공교육의 왜국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학을 제시해왔다. 역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의 고등교육 정책 제안에서 이 두 기획이 빠지지 않았고, 사회 불평등구조의 한 축인 대학 서열구조에 대한 혁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이념적 지향과 합치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영형 사학은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 대학을 공공적인 편제로 재편하고 지역 대학의 피폐화를 막을 수 있는 필수적인 형태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이 두 기획은 새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축소·변질되거나 거의 유명무실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정부의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돼 있고, 현정부의 교육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진보적인 학자나 단체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재 이 기획과 유관하게 대학정책에서 반영된 것은 국립대의 공적 역할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거점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한 것밖에 없다. 공영형 사립대 또한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면서 그나마 시범사업 정도로 명목만 남아 있다. 이 같은 후퇴는 정부가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시장과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정책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이 현정부정책에서도 ‘장기적 목표’라는 이름으로 현안에서 밀려나 있는 데 비해 대학 공공성 강화의 다른 한 방안으로 제시된 공영형 사학 기획은 현재의 구조조정 국면과 직접적으로 결합돼 있다. 공영형 사학이란 설립형태는 사립이되 공익형 이사가 중심이 되는 거버넌스를 갖추고 일정한 국고 지원으로 운영되는 반사립 반공립 형태의 대학을 말한다. 공영형 사학은 그동안 비리의 온상이었던 문제사학들을 정상화하는 방안이면서 사유물처럼 취급되는 전근대적 관행을 해소하고 대학을 근대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국토 균형 발전의 입장에서 운영난에 처한 지방 사립대들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통해 살려냄으로써 지역 문화와 경제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그러나 정부의 거듭된 추진방침 표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영형 사학 설립 기획은 거의 껍데기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고등교육 정책 추진방향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건전한 사립대에 운영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고 공공적 역할을 부여”하고자 하며 정책연구를 통해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연구를 통해 대학 운영비의 50% 이상을 지원하되 이사회를 공익이사 과반수로 구성하고,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에 인사 및 재정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영형 사립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학계 및 교수단체에서도 공영형 사립대추진협의회를 구성해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예산편성도 없거니와 지난 3월 발표된 대학 재정지원 개편계획에서도 공영형 사학과 관련된 어떤 지원항목도 없다. 연구안대로 사립대학의 운영비를 50% 이상 부담하려면 거의 현행 국립대 수준에 버금가는 지원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책적 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편계획을 보면 거점 국립대에 대한 지원 확대 방안만 정해져 있을 뿐 사립대의 공영화와 유관한 재정지원은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공영형 사학은 대폭 축소된 전국 3~4개 대학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시행하는 정도의 실무 협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예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차후 공영형 사학설립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애초 논의되던 대로 전국 사립대 30%, 나아가 50%까지 공영화를 추진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현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인 대학 기본역량 진단 사업 자체가 공영형 사학의 원취지와는 정반대 방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의 기획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위기에 처한 지방의 대학들 가운데 지역환경으로 보아 필요한 대학들을 정부 지원으로 살리는 방안이 제시됐던 반면, 대학 기본역량 진단 사업은 이 유형의 대학들을 퇴출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즉, 공영형 사학 기획과 대학 구조조정 방식은 서로 상충하는 정책적 목표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번 진단은 최소 3년 동안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하위대학으로 분류된 사립대들은 대체로 도태 과정을 밟게 된다.

공영형 사학의 취지가 변질되는 징후는 이전부터 있었다. 18대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은 임기 중 사립대학의 절반을 공영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19대 선거에서도 이 같은 방향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이 기획에 대한 반대여론 및 내부논의 결과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립대학은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 육성하겠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어서 각 대학 교수협의회의 전국 연합체인 국교련 및 사교련에서도 “건실한 사립대학을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개편”한다고 합의했다. 이 같은 공약이나 합의 자체가 애초의 기획에서 크게 후퇴했을 뿐 아니라 ‘발전 가능성’과 ‘건실함’을 조건으로 함으로써 지방의 하위대학과 전문대 등 경영위기에 처한 대학들을 배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뒀던 셈이다. 결국 현재의 시범사업은 공영형 사학 기획이 한국 대학의 체제를 공공적으로 개편한다는 애초의 의미를 상실하고 ‘건실하고’, ‘가능성 있는’ 대학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부여되는 또 하나의 특전으로 순화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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