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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결의’되지 않으려면 교수들과 협의해야
‘반쪽 결의’되지 않으려면 교수들과 협의해야
  • 이해나 기자
  • 승인 2018.06.04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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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협의 교직원 서명 동원, 절차적 정당성 결여됐다는 문제 제기

지난달 23일 오전 9시 42분. 한성대 인트라넷에는 총무처장이 보낸 단체메일이 배포됐다. 지난 4월 6일 열렸던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회장 김인철, 이하 사총협)의 제20회 정기총회 결과 고등교육 재정지원을 정부와 사회에 촉구하기로 결의했으므로, 서명으로 동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메일에는 A4용지 1쪽 분량의 결의문과 서명서가 첨부돼 있었고, 서명 제출 기한은 지난달 25일까지로 사흘간이었다.

학부장에게서 서명을 독촉하는 문자가 두 번 왔고, 조교도 문자를 보냈다. ‘교수의 도장을 학과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으니 조교에게 의사를 전하면 대신 서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성대의 한 교수는 “응당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내놓으라는 듯한 태도였다”고 말했다.

김영록 세한대 교수협의회장은 지난달 16일 다섯 줄짜리 문자를 받았다. ‘대학 재정난 해결을 위한 고등교육교부금제정법 추진 교직원 서명 행사가 본관 앞에서 실시되니 시간이 되는 교수들의 참석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조교가 교수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독려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법안이 어떤 내용인지 안내받지 못해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광수 우석대 교수협의회장 역시 학교 측으로부터 서명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 회장도 “왜 서명을 요청하는지 궁금해 알아보니 ‘학교 재정난 타개’라는 모호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인 재정 보충용이 아니라 학교 발전을 위해 실제로 쓰인다면 재정 지원 요청에 당연히 힘을 보탤 것”이라며 “서명을 받으려면 사용처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안내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사총협이 교수를 포함한 대학 구성원의 서명을 요청한 까닭은 국회 계류 중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의 조속한 통과와 사립대학지원특례법(가칭, 이하 특례법) 마련이 목적이다. 사총협은 결의문에서 특례법이 사립대에 대한 일반 재정 지원 근거와 범위를 명확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속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서명 요청에 왜 몇몇 교수들은 거부감을 느끼게 됐을까. 이들은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고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수에게 행정 부서를 통해 서명하라고 하달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에게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고, 공론화할 여유를 줘야 했다는 설명이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한 가지 문제를 더 지적했다. “사총협이 추진하는 특례법은 정부 재정 지원의 혜택은 누리고 규제는 피하겠다는 악법”이라는 것. 실제로 지난 2016년 9월 사총협이 발간한 「사학의 진흥과 자율성 신장을 위한 사학 정책의 재정립 방안」을 보면 △사립 고등교육기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응투자 요구를 제한함 △정부가 불가피한 규제에 대해 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부담하게 될 비용을 재정적으로 보상하도록 함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총협이 전개한 서명 운동은 지난달 29일 마감됐다. 황인성 사총협 사무국장은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촉박한 일정 탓에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된 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립대 재정난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구성원 모두 공감하는 사안”이라며 “교수를 강제 동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립대의 절실함을 정부에 호소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사총협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과 특례법에 관해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취합한 내용은 오는 이달 말 사총협 임시총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황 사무국장은 “공청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장들만의 견해가 아닌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결의문 도출을 위해서는 교수단체를 포함한 대학 내 구성원 협의체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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