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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사유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검토하는 철학의 기획
주체적 사유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검토하는 철학의 기획
  • 박성훈 ·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 승인 2018.06.04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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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메타정치론』(알랭바디우 지음, 김병욱·박성훈·박영진 옮김, 이학사, 2018.5)

철학은 진리를 탐구한다. 이 진리라는 말이 어떤 주어진 사실이나 실제와의 일치를 의미하건,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된 무엇을 의미하건, 혹은 어떤 판단체계에 따른 내적 정합성을 의미하건, 철학이 추구해온 것은 언제나 진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거의 철학적 진리는 근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빛바래기 시작했고, 특히 철학은 소위 포스트모던이라 지칭되는 여러 담론들에 의해 제기된 진리의 일자적 폭력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 앞에서 철학의 진리는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며, 그저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백일몽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립된 사실들의 체계와 이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의견만이 중시되는 세태일 것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체계는 진리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 ‘사건-이를 선언하는 주체들-이 주체들이 만들어가는 진리’라는 도식을 통해 종래의 진리를 개작함으로써 진리의 범주를 보존하려 하는 동시대적 시도다. 이를 위해 바디우는 종래의 진리로부터 일자의 지위를 제거하고 다수의 진리를, 그것도 결정돼 굳어진 형태가 아닌 일종의 과정과 같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가는 ‘절차’로서의 진리를 제시한다. 바디우가 말하는 네 가지 진리절차에는 유사 이래 언제나 인류의 관심의 중심에 위치했던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치는 그 시작과 끝에 있어 다수로부터 다수로 향하는 가장 보편적이며 類的 성격이 가장 두드러진 진리절차이다. 그리고 『메타정치론』은 철학을 구성하는 조건이 되는 이 네 가지 진리절차 중에서도 특히 정치를 조건으로 삼아 철학적 담론을 펼쳐내는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바디우가 반대하는 정치철학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렇다면 이 책에서 바디우가 펼쳐내는 것이 일종의 정치철학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을 고찰의 대상에 따라 작은 분과들로 나누어 말할 때, 정치에 관해 다루는 철학을 정치철학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디우는 정치철학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정치철학의 무엇이 문제이기에 바디우는 이토록 정치철학에 대한 반대를 선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시 정치철학과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정치철학이 말하는 사유의 대상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독일 철학자이자 한때 나치 독일의 계관철학자이기도 했던 카를 슈미트가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정치의 본질 곧 적과 동지를 나누는 적대를 말한다. 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원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민주주의에 내포된 불안정성을 지적함으로써, 나치스 정당의 독재에 어떤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2차 대전과 나치 독일의 패망을 기점으로 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는 轉機를 맞는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모든 악행은 바로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비인간적 범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전체주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막아야 할 범죄가 된 것이다. 원래 해방의 정치를 위한 기획이었던 러시아의 사회주의 독재 또한 전체주의의 혐의를 받는다. 공산주의 혹은 과도적 정치 단계로서의 사회주의는 그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스탈린주의적 당-국가 연합체의 공포정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처형, 숙청 그리고 이에 이어진 수용소 수감 등에서 드러난 사회주의 독재의 비인간성으로 점철됐던 것이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 진영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선양할 필요가 있었고,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저술로 나치스 정당과 공산주의의 전횡을 비판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이를 위한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메타정치론』 본문을 시작하는 바디우 논의가 한나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 프랑스어 번역판을 전거로 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래 칸트에게는 직접적인 정치 담론이 없다. 그럼에도 아렌트는 칸트의 철학 체계에서 정치철학의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아렌트에 따를 때 칸트에게 있어 정치철학의 가능성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기획으로서 제시된 『판단력 비판』에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칸트의 제3비판은 취미판단을 다루는데, 여기서 취미판단이란 취향, 즉 어떤 예술작품을 볼 때 얻게 되는 감동이나 정서 같은 감성과 관련된 사안이다. 문제는 취향이나 감상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자기 의견이 있기에, 다시 말해 이 사안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의견의 복수성과 다름이 있기에, 어떤 한 가지 의견으로의 수렴을 전제하는 정치적 결정이 어떻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정치의 가능성과 관련해 아렌트는 취미판단에서 ‘공통감’이라는 지점에 주목한다. 공통감이란 어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통으로 갖게 되는 유사한 감성을 지칭한다. 말하자면 공통감은 다양한 취향과 의견들을 통할하여 하나의 정치를 만드는 규범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강조되는 것은 선악을 구별하는 공통의 판단력이다. 특히 현실에서 지각될 수 있는 것은 선보다는 악이므로, 정치철학의 사유는 일종의 국가에 대한 윤리학으로 흐른다. 즉 좋은 국가가 되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하는 담론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해방의 기획으로 등장했던 공산주의가 역사적으로 당-국가의 공포정치로 향했다는 점에서, 아렌트가 제시하는 정치철학의 사유는 최선을 얻으려다가 최악으로 흐르기 보다는 차라리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형태의 정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국가를 위한 윤리적 담론의 핵심이다. 

‘메타정치론’ 그리고 민주주의

문제는 이럴 때 정치는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주체의 실천을 위한 장이 아니라 무한한 논평을 일삼는 구경꾼들의 토론장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견의 자유를 표방하는 국가 윤리적 담론과 ‘정치적인 것’의 대상성에 함몰되는 이상, 철학은 더 이상 정의나 평등 같은 이념을 추구하는 주체적 사유가 되기보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의회주의가 결탁한 현재의 상태를 공고히 할 여러 의견들 중 하나가 될 뿐이다. 바디우가 제시하는 ‘메타정치론’은 이러한 정치철학에 반대하여 정치를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주체적 사유 곧 진리절차로 정립하고, 철학이 정치를 철학 자체의 정립을 위한 조건으로 삼아 미래를 위한 변화의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게 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정치를 국가/상태(?tat)의 강고한 속박에서 풀어내기 위한 철학의 기획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에 관해서도 잠시 이야기해보자.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옹호되는 정치체제는 지구상에서 가능한 단 하나의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제도적 절차에 있어 완성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론과 선거에 의해 지배되는 전문가와 정치인의 과두제적 국가체제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실상은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그리고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각자가 손에 쥔 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경제적 불안의 연대일 뿐이다. 재작년 여름부터 작년 봄까지 지속된 촛불혁명과 조직된 시민의 행동으로 국가의 변화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평등이라는 정치의 이념을 통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는 절실하다. 이를 위해 정치는 그 자체의 주체적 사유 과정을 통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위한 규약과 행동방침을 발명해야 하며, 철학은 그 바탕에서 정치의 이념을 탐색할 것이다. 비록 『메타정치론』의 논의가 추상적이고 어떠한 변화의 실체적 방법론도 제시하지 않지만, 이 기획은 민주주의를 국가체제가 아닌 정치적 이념으로서 되돌아볼 수 있게 할 훌륭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박성훈 · 연구집단 CAIROS 연구원
생물학 전공자였지만 철학과 신학 관련 책들을 번역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의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 『행복의 형이상학』, 피터 홀워드의 『알랭 바디우: 진리를 향한 주체』, 테드 W.제닝스의 『무법적 정의: 바울의 메시아 정치』,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 등을 번역했으며, 알랭 바디우의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 등을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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