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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사에 드러난 ‘영국 예외주의’ 접근법의 허점
산업혁명사에 드러난 ‘영국 예외주의’ 접근법의 허점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04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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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의 「산업혁명의 역사와 근대화」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_ 문화의 안과 밖’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올해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의 「산업혁명의 역사와 근대화」 강연 중 주요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산업혁명과 관련해 역사가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영국이 산업혁명에서 세계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 이유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의 경쟁국들, 그리고 중국 양쯔강 델타 지역이나 일본과 인도의 대도시와 같은 타 대륙의 선진 지역들을 누르고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에 성공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요인들을 지적해왔다.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난 이후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잘 갖추어졌다는 점, 석탄과 각종 천연자원이 영국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었다는 점, 조세제도와 금융제도가 상공업자 층에게 유리한 형태로 운영됐다는 점, 국제무역에 적극적 태도를 지닌 상인층이 두텁게 존재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중상주의 기간에 영국이 해군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국제 해상 교역로를 장악했다는 점, 지구 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확보해 항해법과 같은 보호주의 정책의 이익을 크게 누릴 수 있었다는 점, 투자율이 주변 경쟁국에 비해 높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또한 사회 활동에 종교적 장벽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 전통적 도제제도가 발달해 숙련 기술자가 원활하게 재공급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장자 상속제가 장남 이외의 상류층 자제들을 금융과 교육에 뛰어들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한 학자들도 있다.

이런 접근법은 공통적인 약점을 지닌다. 지적된 요인들 가운데 어떤 것도 기술 진보를 통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되기 어렵다. 각 요인들이 기술 진보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는가? 기술 진보가 산업혁명의 궁극적 추동력이라면 왜 그 요인들은 특별히 산업혁명 시기에 힘을 발휘했는가?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위의 접근법은 영국이 이룬 성취의 열쇠를 ‘영국 예외주의’의 관점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영국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났던 역사적 및 제도적 특이 사항들을 추출해내고 이들을 기술 진보의 성공 요인으로 연결 짓는 작업은 해석이 편향될 위험을 안고 있다.

과연 이 특이 사항들이 없었더라면 기술 진보가 심각하게 지연되거나 아예 불발됐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런 요인들이 영국과 달랐던 국가들은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길이 막혀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예외주의 접근법은 대답이 궁색하다.

예외주의 접근법에 대한 논의를 경제 발전의 경로에 관한 논의로 확대할 수도 있다.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필수적인 선행조건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행조건이 불비해도 부족한 요건을 대체하는 방안을 찾음으로써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예외주의 접근법으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다.

생산요소의 상대가격

예외주의의 한계점을 인정하는 학자들은 거시적 이론화 혹은 국제적 비교가 가능한 방식의 분석과 일반화를 선호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연구 방법은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을 분석하는 것이다. 거시발명-미시개량의 분석 틀을 염두에 두고서 이 접근법을 검토해보자. 로버트 앨런은 경제학적 분석법을 이용하여 거시발명과 미시개량을 설명했다. 그는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에 주목하여 거시발명과 미시개량이 작동하는 기제를 분석했다. 이 설명을 통해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핵심 기술 혁신을 이루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앨런의 분석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 영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과 낮은 석탄 가격이 특징인 경제구조를 보유하고 있었다. 1425~1825년의 기간을 대상으로 런던의 임금수준을 암스테르담, 빈, 피렌체 등 유럽 도시들 및 델리, 베이징 등 아시아 도시들의 임금수준과 비교해 보면, 15세기에는 대부분의 도시가 비슷한 임금수준을 보였지만, 16세기 중반부터 임금격차가 확대됐고, 런던은 암스테르담과 더불어 다른 도시들을 크게 앞지르는 양상을 보였다. 17세기부터 영국은 임금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됐고, 특히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임금수준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자면 영국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고임금 경제의 특징이 가장 뚜렷했다.

앨런은 에너지원의 가격 추이도 분석했다. 잉글랜드 중부의 에너지 가격 데이터를 이용해 석탄 가격을 목탄 가격과 비교했다. 16세기 이래 석탄이 목탄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했지만, 주목할 점은 17세기 후반부터 목탄 가격이 지속적 상승세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석탄 가격은 계속해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17세기 후반부터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삼림 자원의 부족이 현실화됐다. 그런데 낮은 비용으로 채굴할 수 있는 석탄이 다량 매장돼 있다는 지질학적 장점을 영국이 보유하였던 것이 고임금과 낮은 석탄 가격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가 추구할 발전 방향은 노동절약적인 기술 진보였다. 특히 저가의 석탄을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개발이 일찍부터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도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저임금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은 이런 유인을 갖지 않았다. 노동절약적 기계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적고 개발이 이뤄져도 기술이 널리 확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앨런은 영국이 산업혁명 시기에 비약적 기술 진보를 이루게 된 결정적 요인이 생산요소의 상대가격 조건이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을 중시하는 설명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영국 예외주의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국제적 비교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그렇지만 앨런의 주장에는 해결하기 힘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큰 시차를 두지 않고 공업화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후발 공업국들에서는 단기간에 임금이 급상승하지 않았으며, 석탄과 같은 부존자원의 대규모 무역도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가격에 대폭적인 변화가 단기간에 발생했을 것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따라서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에 기초한 설명으로는 후발 공업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동일한 이유로 포메란츠가 『대분기』에서 제시한 주장에 대해서도 재론이 필요하다. 그는 영국이 최초로 산업혁명에성공한 이유로 석탄 매장이 풍부했다는 점과 국제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맬서스 트랩을 벗어나려면 생태계에 압력을 적게 미치는 새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문제의 해결책이 석탄 사용과 원료 수입에 있었다는 것이 포메란츠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도 영국이 중국의 선진 지역에 앞서 산업혁명을 주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후발 공업국들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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