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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먹어도 키가 크지 않은 이유
우리가 아무리 먹어도 키가 크지 않은 이유
  • 양도웅
  • 승인 2018.06.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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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을 찾아서_①현서강 중앙대 교수

예나 지금이나 ‘연구실의 불’은 밝기만 하다. 하지만 밤낮 매달린 연구의 결과가 과거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연구자들의 좌절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응원하는 ‘연구실을 찾아서’를 기획한 이유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 떠오른 ‘융합’은 ‘소통’에 의해 이뤄진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현서강 중앙대 교수(생명과학과).
현서강 중앙대 교수(생명과학과).

“잘 먹어야 잘 큰다.” 인류의 오랜 통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통설에 반론을 펼칠지 모른다. ‘사춘기 시절, 잘 먹었는데도 키가 많이 크지 않았다’고. 이런 사실은 ‘키와 영양’의 관계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대체 ‘먹는 것’과 ‘크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놓여 있는 걸까. 거기에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달 21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현서강 중앙대 교수 연구팀(생명과학과)의 논문이 실렸다. 현 교수는 이 논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결론으로만 알고 있는 ‘잘 먹어야 잘 큰다’ 혹은 ‘잘 먹었는데도 크지 않았다’의 원리를 초파리 연구로 규명했다. 지난달 29일, 현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우선 초파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했다. 현 교수는 “초파리의 유충에서 번데기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의 유년기부터 성인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초파리 연구는 생명과학 연구에서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연구이기는 하지만, 기초적인 단계인 만큼 많은 성공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초파리 연구에서 성공할 경우, 생쥐, 원숭이, 인간 순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현 교수는 “초기 단계에서 원리를 규명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 교수는 연구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유년기부터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신체성장이 있다가 사춘기 후반, 최고조에 이르는 성호르몬 활성에 의해 성장이 서서히 멈추면서 성적 성숙이 완성된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영양 상태가 이런 성장과정에 어떠한 방식으로 관여하고 조절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현 교수가 이번 연구에서 집중하고자 한 것이 ‘영영과 키 사이의 원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한 원리를 초파리 연구로 밝힌 것이다.

현 교수 연구팀은 인간의 사춘기와 같은 제3령기 초파리 유충 두 마리를 준비해, 한 쪽에는 일반적인 수준의 영양을 공급하고, 다른 쪽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영양을 공급했다. 결과는 우리가 갖고 있는 통설과 같았다. 적은 양의 영양을 공급받은 초파리의 유충은 성체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원리가 발견됐다. 현 교수는 “영양분을 제한적으로 공급했을 때, 성호르몬인 엑다이손이 더 많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에서 중요한 호르몬은 ‘Imp-L2’이다. 이 호르몬은 영양분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했을 때 활발하게 생성되고, 활발하게 생성된 이 ‘Imp-L2’는 생명체의 성장을 억제한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Imp-L2’를 결실시켰을 때는 영양 공급을 제한적으로 하더라도 성장이 크게 둔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에서 중요한 호르몬은 ‘Imp-L2’이다. 이 호르몬은 영양분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했을 때 활발하게 생성되고, 활발하게 생성된 이 ‘Imp-L2’는 생명체의 성장을 억제한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Imp-L2’를 결실시켰을 때는 영양 공급을 제한적으로 하더라도 성장이 크게 둔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호르몬은 신체의 성장과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현 교수는 “이 성호르몬인 엑다이손이 증가하자, 인슐린성장인자를 억제하는 ‘Imp-L2’라는 호르몬의 생성이 활발해지는 것을 발견했다”며 “억제된 인슐린성장인자로 인슐린성장 신호가 낮아져 초파리의 신체 성장 속도가 느려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처럼 원리를 규명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현 교수는 재차 “후속 연구를 통해 보다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면서도 이번 연구결과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았다. “성호르몬의 불균형에 따른 성조숙증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함에도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그에 맞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키가 크지 않는 이유를 ‘부모의 키’나 ‘영양상태’에서 손쉽게 찾는 통설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런데 현 교수가 언급한 치료법 개발은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 학문과의 협업이 필요하다”며 “특히 의학 분야와 협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를 <PNAS>에 발표하는 과정에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다고 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현 교수의 연구결과는 새로운 것임에도 말이다. “<PNAS>의 경우 피어리뷰(동료평가)는 한 번 받는 게 원칙인데, 우린 두 번이나 받았다. 설사 우리처럼 두 번의 피어리뷰를 받더라도, 모두 같은 연구자에게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연구자에게 피어리뷰를 받았다. 매우 이례적이라고 하더라. 논문이 실려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변방의 연구자들의 연구가 평가절하 받는 것 같아 괴로웠다.” 우리의 연구지원 관계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웃픈’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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