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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호 새로 나온 책
923호 새로 나온 책
  • 윤상민
  • 승인 2018.05.28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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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체성 | 제임스 빌링턴 지음 | 박선영 옮김 | 그린비출판사 | 320쪽
이 책은 러시아인들이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자국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오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이자, 자유라는 새로운 조건들 알애서 러시아 정체성이라는 고전적인 물음과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지를 연대순으로 기록하려는 시도다. 28년간 미 의회도서관장을 역임한 러시아학의 거장인 저자는 혁명 이전 러시아의 지적 전통과 민중적 습성, 소비에트 해체 이후 벌어진 여러 사건과 학계의 담론, 대중매체의 반응 등을 폭넓은 시야로 분석함으로써 현대 러시아를 구성하는 이념과 정서의 총체를 찬찬히 살핀다. 이 책은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가 어떻게 국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지, 그리고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널찍한 국경 내의 권력 행사를 다시금 합법화하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폭넓고 방대한 양의 푸블리치스티카를 살펴보려는 시도이며, 그린비출판사 슬라비카 총서 여덟 번째 책이다.

 

미래과학 | 정하웅, 정석, 이준호, 조성배, 엄상일, 박문정, 국종성, 이정은, 임명신, 이관수 지음 | 카오스재단 기획 | 반니 | 308쪽
이 책에서는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인공지능과 로봇, 화성 이주의 이야기까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예측을 실었다. 1장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는 빅데이터의 명과 암을, 2장 「팬텀, 아바타 그리고 페르소나」에서는 장기 칩과 오가노이드로 과학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살피고, 3장 「뇌 커넥톰, 마음을 볼 수 있을까?」에서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연결된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꼬마선충의 커넥톰을 분석한다. 이외에 인공지능, 수학 연구, 로봇, 기후변화, 화성 이주, 천문학의 새로운 시도, 미래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까지 현재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과학 이슈들에 대한 정보가 꼼곰히 정리돼 있다. 과학, 지식, 나눔을 모토로 과학의 대중화에 주력하고 있는 카오스재단이 지난해 진행한 10개의 강의를 정리했다. 책에는 패널 토의와 질의 응답까지 실어 생생한 현장성을 살렸다.

박탄고프 연출수업 | H.M.고르차코프 지음 | 김영선 옮김 | 동인 | 342쪽
러시아의 교육자이자 천재적 연출가였던 박탄고프의 열정이 생생히 전해지는 책이 번역됐다. 이 책의 저자 고르차코프는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새로운 창조의 힘으로 움트던 당시 박탄코프를 만나서, 미숙한 연기지망생에서 연기자로, 이후 연출가로 성장해가는데, 스승 박탄코프의 바로 옆에서 그의 연출수업을 기록했다. 매 공연이 일회성임을 상기시키며 제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박단코프의 연기지도방식을 읽으면,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무대의 떨림과 긴장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연기지망생, 연출지망생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도발적인 박탄코프의 교수법은 100여년 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며 전복적이기에 연극, 영화를 비롯한 현대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문제가 된 연극인들의 허상의 카리스마와 잘못된 권위가 예술계에서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현상인지, 또 어떤 만남을 통해 예술의 창조성이 발현되는지 간접체험 할 수 있는 책이다.

 

4차 산업혁명론의 국제정치학 | 김상배 책임편집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편 | 324쪽
4차 산업혁명의 단순한 기술공학적 현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사회과학적 현상, 그것도 국제정치학적 현상으로 본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물리적 생산요소에서 기술, 정보, 지식, 사이버네틱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생성, 활용하는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독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의 4차 산업혁명 담론과 전략 및 제도가 국가별로 초점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초창기부터 정보화를 주도해온 미국이 민간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경쟁력으로 인공지능 패권을 추구하는데 비해, 독일과 일본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조업 분야 경쟁력 강화로 대응한다는 점, 이어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이 제조업과 정보화 모두를 추진하는 양면적 담론 및 전략을 모색하는 점 등을 면밀히 살폈다. 저자들은 세계 주요국들이 벌이는 프레임 경쟁 속에서 한국형 4차 산업혁명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 | 김경휘 외 지음 | 방정환연구소 편 | 소명출판 | 510쪽
방정환은 1921년 2월 발행된 <천도교회월보>에서 “귀여운 어린 시인에게 돈 주지 말고 과자 주지 말고 겨를 있는 대로 기회 있는 대로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 때때로 자주 자주”라고 말했다. 방정환연구소는 2014년부터 3년간 축적된 방정환 관련 연구 논문을 묶어 책으로 펴내며 방정환이 소망했던 바람을 제목으로 삼았다. 방정환 원문을 문학으로 읽는 연구 결과를 담은 이 책은 1장에서 방정환의 소설, 번역동화, 동화극의 심층을 드러내는 연구를, 2장에서 근대 아동문학의 문예사적 의미를 더하는 『어린이』 연구를, 3장에서 방정환의 어린이운동과 교육철학, 문학 사상의 원류 동학과 천도교 연구를, 마지막 4장에서는 방정환의 세계동화집 『사랑의 선물』의 원작과 일본어 저본과의 상관성을 탐색하는 연구를 촘촘히 담아냈다.

 

 

유학과 동아시아 | 나종석, 조경란, 신주백, 강경현 엮음 | 도서출판b | 607쪽
이 책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사상’팀의 지난 4년간 수행해 온 연구를 총괄하는 것으로 유학과 동아시아 근대성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동아시아, 전통 근대성을, 2부에서는 유학 전통과 한국의 근대성을, 3부에서는 유학전통과 중국의 근대성을, 4분에서는 유학전통과 일본의 근대성을, 마지막 5부에서는 동아시아 유학 전통과의 새로운 대화를 살폈다. 이 책은 유학의 전통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근대성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유학의 영향 속에서 전개된 동아시아 근대성의 특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동아시아 근대가 걸어온 길이 서구적 근대와 어떻게 또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성찰하려 한 데 이 연구서가 갖는 의의가 있다.

 

 

중관이취육론 | 용수 지음 | 신상환 옮김 | 도서출판b | 1208쪽
이 책은 대승불교의 기틀인 공사상을 연구, 중관사상의 기초를 확립해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용수의 6대 저작들을 간추린 티벳어본 『중간이취육론』의 완역본이다. 타고르대 교수이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대승불교, 중관사장, 팔불중도의 집필자이기도 한 저자는 10년의 작업 끝에 이 책을 완역했으며, 한 개인에 의한 용수 6대 저작 완역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또한 6대 저작 중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중론』은 이미 산스크리트어와 한역, 영역 등이 우리말로 옮겨진 적은 있으나, 티벡 원문을 직접 우리말로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티벳어 게송 수만 약 1천500개, 4천여 개의 주석과 더불어 풍부한 부록과 해제는 중관사상의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저자의 말말말
‘인간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마코 화산 기슭에 있는 사냥 캠프의 초가지붕 아래서 엎드려 누워 있는데, 후아니쿠가 내게 다가와 경고했다. “반 듯이 누워 자! 그래야 재규어가 왔을 때 그 녀석을 마주 볼 수 있어. 재규어는 그걸 알아보고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엎드려 자면 재규어는 너를 아이차(먹잇감)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후아니쿠의 이 말은 재규어가 우리를 마주 응시할 능력이 있는 존재-재규어 자신과 같은 하나의 자기, 즉 ‘너’-로 본다면, 우리를 가만히 놓아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규어가 우리를 먹잇감-‘그것’-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죽은 고기나 다름없다.

다른 부류의 존재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이 문제는 중요하다. 다른 부류의 존재들이 우리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변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규어 또한 우리를 표상한다면-그것이 우리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면-인류학은 다양한 사회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부류의 존재들을 그처럼 표상하게 됐는지를 탐구하는 것에만 머무를 수 없다. 이와 같이 다른 부류의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는 것과 표상하는 것, 그리고 아는 것과 사고하는 것까지도 인간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깨달음을 받아들일 때 사회와 문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은 얼마나 달라질까? 그것은 인류학의 방법과 시야, 실천과 전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나아가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오로지 우리 자신만의 특성이라고 여겨온 것들이 인간적인 것 너머에 있는 저 세계에서도 나타난다면, 인류학의 대상-‘인간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떻게 바뀔까?

재규어가 세계를 표상한다고 할 때 이 말은 재규어가 반드시 우리처럼 세계를 표상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 또한 바꾸어 놓는다. 인간적인 것 너머에 있는 저 영역에서는 표상과 같이, 우리가 한때 아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거나 지극히 익숙한 것으로 보였던 과정들이 불현 듯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에두아르도 콘 캐나다 맥길대 교수(인류학)의 『숲은 생각한다』(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2018.5) 「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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