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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추억’ 꽃말 가진 우리나라 특산식물
‘슬픈 추억’ 꽃말 가진 우리나라 특산식물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5.28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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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01. 할미꽃
할미꽃. 사진 출처=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할미꽃. 사진 출처=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깊은 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하하하하 우습다 졸고 있는 할미꽃 아지랑이 속에서 무슨 꿈을 꾸실까/(…)/깊은 산에 할미꽃 등이 굽은 할미꽃 어딜 나서 보려고 꽃을 피워 맺었나/겉으로는 할미꽃 속으로는 새빨개 말 못하는 할미꽃 마음 태워 숨겼나/무덤가에 할미꽃 양지쪽에 앉아서 수줍어서 다소곳 머리 하얀 할미꽃”

그리고 홀로 된 어머니가 두 딸에게서 박대를 받고 죽어서 할미꽃이 됐다는 가련한 할미꽃이야기가 있다. 이 설화는 식물의 생김새에 초점을 둔 이야기(由來談)로, 이야기에 따라 ‘딸 셋’ 또는 ‘두 손녀’로 나오지만 줄거리는 대동소이하다.

“한 옛날에 일찍 홀로 된 어머니에게 두 딸이 있었다. 큰 딸은 부잣집에 시집을 갔으나 작은 딸은 가난한 남편을 만났다.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 부쩍 늙어버린 노파는 두 딸집을 찾아 나섰다. 먼저 큰 딸집에 갔으나 어머니를 문전박대하고, 쫓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늙은이는 작은 딸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작은 딸은 산 너머 저 먼 곳에 살았고, 찾아 가는 길에 딸집을

눈앞에 두고 그만 기진맥진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뒤늦게 이 소식에 접한 작은 딸내미는 허겁지겁 달려와 어머니시신을 부둥켜안고 땅을 치며 슬퍼했으며, 뒷동산의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드렸다. 이듬해 어머니무덤에 꽃이 피었는데 영락없이 꼬부랑어머니의 굽은 등을 닮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의 넋이 꽃이 되었으니 이를 할미꽃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할미꽃 꽃말(花詞)은 ‘슬픈 추억’이 됐다한다.

할미꽃(Pulsatilla koreana)은 種名(koreana)에서 보듯 한국이 원산지인 固有植物(endemic plant)로 전국에  자생한다. 유사한 종으로는 잎이 가늘고 뾰족한 제주도에 자생하는‘가는잎할미꽃’, 백두산에 자생하는 분홍색인 ‘분홍할미꽃’, 강원도영월 동강의 바위틈에 사는‘동강할미꽃’, 희거나 분홍색인 도입된 종인 ‘유럽할미꽃’ 등이 있다.

할미꽃(Korean pasque flower)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에 들고, 산과 들판의 양지쪽에서 잘 자란다. 할미꽃은 특히 무덤가에서 잘 자라는데 이는 주위에 큰 나무가 없어 햇볕을 잘 받기 때문으로 응달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한마디로 할미꽃은 거친 땅이나 추위에는 무척 강한 편이지만 그늘이나 습기에는 매우 약하다.

키는 30~40cm정도이고, 뿌리는 굵고 흑갈색이며, 곧게 뻗어 있어 옮겨 심으면 잘 살지 않는다. “야생화는 제 자리에 둬야지 옮겨 심으면 죽고 만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지. 그러나 대신 씨앗을 받아 싹을 틔울 수 있다. 뿌리 윗부분에서 무더기로 나오는데 잎잎이 5개의 잔잎(小葉, leaflet)으로 된 깃꼴겹잎(羽狀複葉)으로 잔잎(꼬마잎)길이는 3∼4cm이고, 3개로 깊게 갈라지며, 잎자루가 긴 편이다. 꽃이나 잎줄기에 보드라운 흰 솜털이 더부룩하게 나서 전체가 흰빛이 돈다. 

4월경에 30∼40cm 길이의 꽃대(꽃줄기) 끝에 말간 자주색 종(초롱꽃)모양의 소담스런 꽃망울이 달리고, 밑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난다. 꽃은 암수술이 같이 든 양성화로 잎이 변한 꽃잎은 6장이고, 가운데 암술이 빽빽이 뭉쳐나고, 암술머리에는 많은 털이 생기며, 암술둘레에는 수술이 한 가득 싸고, 원통 모양의 수술대에 노란색 꽃밥(꽃가루주머니)이 잔뜩 들러붙는다. 온갖 곤충들이 꽃가루받이(受粉)하고, 열매씨앗은 6~7월에 익으며, 긴 달걀 모양으로 씨앗에 4cm안팎의 암술대가 붙어있다.

할미꽃을 늙은 할미를 뜻하는 老姑草, 머리털이 모조리 허옇게 센 늙은 할아비를 의미하는 白頭翁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흰 깃털로 덮인 열매모양이 할머니의 새하얗게 센, 반짝거리는 은발 같다하여 할미꽃이라 부르는가하면 구부러진 꽃이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사실 할미꽃이란 이름은 꽃대가 꼬부랑 할머니허리처럼 굽어서가 아니라 꽃이 진 다음 열매에 달린 은발의 털이 풀어헤친 할머니머리카락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알고 보면 수북한 털은 종자에 붙은 암술대(花柱)로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털 하나에 씨앗 한 개씩이 달려있다. 옥수수수염이 암술대이듯 말이지. 음력 8월경에 할미꽃뿌리를 캐어 가을햇빛에 말려 한약재로 써왔다. 유독식물이긴 하지만 해열·소염·살균·지사제로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학질과 신경통에도 썼으며, 내출혈·피임·코피·여성냉증 등에 썼다. 또 근래 연구에서는 할미꽃추출물에 든 사포닌(saponin)과 아네모닌(anemonin)은 항암에, 또 제초제성분과 피부보호물질이 든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끝으로 동강할미꽃(P. tongkangensis)은 강원도 동강유역, 석회질이 많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생초본으로 역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키는 작아서 15㎝남짓이고, 꽃은 연분홍․적자색․청보라 등 색색이며, 처음에는 위를 향해 피었다가 꽃자루가 길어지면서 옆을 향한다. 다시 말해서 특이하게도 꽃이 내려다보지 않고, 하늘을 향해 피는 것이 일반할미꽃과 다르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고유의 식물이기에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하기야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 어디 이 꽃식물만일까 마는….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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