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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시대, 大同 세계로의 꿈
통일 시대, 大同 세계로의 꿈
  • 이강재 서평위원/서울대·중문학과
  • 승인 2018.05.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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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시대는 있었을까? 동서양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나 ‘何有之鄕’은 모두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이상적인 사회는 모두의 꿈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회인지는 모두에게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고통을 받으며 지낸다는 점 때문에,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이상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유가사상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大同의 세계가 있는데, 이는 『예기』 「예운」에서 공자의 언설로 제시돼 있다. 대동사회는 서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재화가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으며 사사로운 욕심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또 비록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관리가 있어서 세상을 다스리고 그 통치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대인관계상의 일정한 상하관계가 있을 뿐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세상이다. 공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동등함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 ‘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실현될 경우가 바로 大同의 사회가 되는 것이며, 이는 또한 ‘관용의 정신’으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톨레랑스(tolerance)’의 정신과도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요순시대가 바로 대동사회였다는 생각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시대 조광조의 至治主義運動이나 이익, 최한기 등에서 대동사회 구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정여립 역시 모든 사람이 평등하면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중국에서는 근대시기 사회적 개혁운동으로 나타난 캉여우웨이(康有爲, 1858~1927)의 『大同書』(이성애 옮김, 2006년)를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캉여우웨이는 먼저 “이 세상의 괴로움을 목격했으며 이것을 구제할 방도를 생각했다. 어리석은 나의 생각으로는 대동태평의 도를 행하는 것만이 구제의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진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괴로움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경 없이 통합된 세계’, ‘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 ‘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 ‘남녀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 ‘가족 중심이 아닌 하늘이 내린 백성(天民)’, ‘산업의 경계를 없애 공평한 생업’, ‘난세를 태평세로’, ‘인간과 짐승의 구별 없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청나라 말기 중국의 변환기에 유학이 서구 사회와의 만남 속에서 경세치용으로의 적극적 변화를 모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서에서 주장한 세계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현재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과격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매우 앞선 것으로 보이는 것도 적지 않다. 가령 ‘남녀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에서 일종의 계약결혼을 통해 부부로의 속박이 아닌 평등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부부의 의리란 오로지 자손을 전하는 데에 있었으니 이는 남자만을 위한 사사로운 의리였다’라거나, ‘귀천을 막론하고 여자가 남편을 따르게 되어 있어 싫어도 억지로 같이 살아야했다. (…) 인도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늘이 부여한 자유로운 인권에 어긋난 일이며 불행한 일이다’라는 언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제이다. 또 ‘여자가 인도에 있어서 가장 공헌이 크다’, ‘여성의 억압은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전하는 데 유해하므로 금법을 변혁해 남자와 평등하게 대우해야 공리에도 맞고 인종에게도 유리하다’ 등의 언급 역시 지금 우리에게 적용해서 돌아볼만한 것들이다. 전통시대의 개혁사상을 주장한 사람 중에서 이처럼 여성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한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여성차별을 개혁해야 한다는 그의 문제인식은 현재 보아도 여전히 선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물론 변죽만 울리다가 여전한 갈등의 상태로 머물 지 혹은 궁극적으로 통일로 나아갈 지 아니면 평화의 정착만으로 끝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가지는 모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하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맹목적인 동일성의 추구나 내 생각을 상대가 따라오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서로의 역사, 현재의 역할과 위치를 인정하고 이해한 바탕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세부적으로는 현재에 맞는 더 한 층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전통시대에 논의된 대동의 세계에 대한 꿈은 여전히 우리가 세상을 보는 기본 전제가 돼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강재 서평위원/서울대·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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