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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집대성한 『연세실학강좌』(전4권, 혜안 刊)
책산책 :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집대성한 『연세실학강좌』(전4권, 혜안 刊)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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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학 연구의 큰 기둥... 외부 연구 성과엔 인색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해방 이후 연세대에서 진행된 실학연구를 집대성한 '연세실학강좌' 시리즈 4권을 펴냈다. 1권과 2권은 지난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0년간 국내 실학관련 연구자들을 초빙해 강의하고, 공개 토론한 '실학공개강좌'의 발표문과 토론요지를 편집했고, 3권과 4권은 최근까지 '동방학지'에 실린 실학 관련 정치경제학 논문들을 모았다. 이로써 정인보, 민영규, 백낙준, 김용섭의 맥을 잇는 연세대 실학연구의 특성과 역사가 그 웅자를 드러내게 됐다. 연세대가 국내 실학연구의 메카라는 점은 공공연히 인정되는 지라 이 시리즈는 공신력 있는 학술자료로서의 빛깔을 뚜렷하게 띠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실학연구는 조선 후기 양명학의 학문적 계통을 이어받은 국학자 위당 정인보가 개척한 이념과 연구방법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조선학의 핵심을 조선 후기의 실학에서 찾고, 실학자의 저술을 정리, 편찬, 해제하는 작업이었다. 해방후 위당의 실학연구는 그 제자들인 홍이섭 교수의 정다산 연구, 민영규 교수의 양명학 연구로 계승됐고, 백낙준 총장의 지속적인 지원에 힘입어 1948년 동방학연구소 설립과 '동방학지' 간행이 이뤄졌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김용섭 교수가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사학과를 중심으로 주변학문과 연계하는 실학연구의 총제적 심화작업이 이뤄져 왔다. 실사구시, 이용후생 등 실학을 개념적으로 정리한 이우성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작업도 국학연구원과의 연계 하에서 진행됐으며, 경제학의 김영호 교수, 정치학의 박충석 교수, 사회학의 김영모 교수 등 연구자들을 흡수해 실학의 외연을 넓혀나갔다.

이 책에는 실학연구의 이런 역사적 전개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 모종의 소회에 젖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특히 1권과 2권은 실학연구의 정점이었던 1980년대 중반까지의 연구성과를 담고 있어 실학연구의 발전사를 조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가령 실학의 개념을 논한 부분은 '법고창신', '실심향학' 등 영정조대 유학자들의 핵심사상으로 실학의 테두리를 만들어나가던 초기연구가 나오고, 1세대 학자들의 입장을 비교 검토하는 논문이 뒤를 이으며, 실학의 내부원리를 수립하는 모습들이 뒤따라, 마치 성장하는 콩나무를 보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이 시리즈는 실학의 개념과 성격, 사상 기반, 실학파의 역사 연구, 실학의 정치경제학, 어문학, 한말 일제하 사상계와 실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걸 하나로 꿰뚫는 공통된 관심이라면, 일제의 식민사학을 극복, 민족사·민족문화의 내적 발전 논리를 확립해야 했던 당대의 학계를 향해 한국사 체계 수립을 위한 새로운 논리와 연구방법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시리즈에서 주목할 점은 강단의 실학연구라는 점이다. 스승이 마련한 방법론을 제자가 가다듬는 실학연구의 계승적 발전논리를 볼 수 있다. 방법론의 심화와 확장이라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파의 연구성과에는 다소 인색할 수 있다는 뜻. 연세대 외부에서 조선 후기 유학에 대해 연구된 성과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외면하는 측면도 있다. 요즘 많은 학자들이 실학을 관통하는 민족주의 원리에 비판적이고, 이질적인 개인들을 한 동아리로 묶는 폭력적 은유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실학이라는 학문범주는 이를테면 그 이름부터 전면 재검토가 주장되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식만 있을 뿐 별다른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뛰어온 것처럼 낯설고 퇴색한 느낌도 준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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