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가던 옛길에 놓인 청정 비경 속 發願의 땅
금강산 가던 옛길에 놓인 청정 비경 속 發願의 땅
  •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연구단
  • 승인 2018.05.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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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강화까지 경계에 핀 꽃, DMZ 접경지역을 만나다_ 13-① 두타연

두타연으로 가는 길, 소지섭길?

두타연의 절경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판문점의 좁은 경계선을 손쉽게 건너다녔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 이후 허울뿐이던 ‘비무장지대’가 이제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변모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생명의 공간’이자 자연과 인간이 함께 누릴 ‘평화지역’으로서 DMZ는 어느새 사람들 마음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강원도 DMZ가 품고 있는 천혜의 생태 자원으로 인제에서 ‘용늪’이 꼽힌다면, 양구에는 ‘頭陀淵’이 있다.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 민간인출입통제선 북방에 있는 두타연은 계곡물이 높이 10m의 급류로 떨어지는 폭포와 최대 깊이 12m의 연못 일대를 가리킨다. 두타연은 1954년 민통선이 만들어진 이후 50년만인 2004년에 처음 민간에 개방됐고 지난 2013년 11월부터 당일 출입이 허용됐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천연기념물인 산양과 수달도 서식한다. 

전날 밤에 내린 시원한 봄비가 미세먼지를 씻어준 날, 청정한 環境을 자랑하는 두타연으로 향했다. 두타연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백석산전투전적비’가 서 있는 고방산교차로를 통과하는데, 전적비 앞에는 높다란 녹슨 철벽 조형물이 보인다. 애초부터 붉게 녹슬어 있는 철판으로 만들어진 구멍 숭숭 뚫린 벽엔 채 마르지 않은 빗물이 핏물처럼 어리어 있다.
 
길 반대편에는 ‘소지섭길 51K 두타연갤러리’라는 간판을 단 낮은 건물이 보인다. 소지섭?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천 원짜리 지폐에 담긴 퇴계 선생의 눈매를 닮은 수구 선수 출신의 연기자? 그래, 당신이 아는 그 배우가 맞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한류스타’ 소지섭 씨는 양구를 여행하며 치유 받은 경험과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풍경을 사진에 담았고 2010년에 『소지섭의 길』(살림)이라는 포토 에세이 책을 출간했다. 기념품을 파는 곳 안쪽의 ‘갤러리’에는 배우의 사진과 출연작에서 그가 입었던 의상 등이 전시돼 있다. 여기부터 두타연으로 들어가는 길도 그가 좋아한 숫자를 따라 만들어진 51km의 ‘소지섭길’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 머리 굳은 나그네의 감성으론 ‘두타연’과 ‘소지섭’이라는 고리를 자연스레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소지섭의 열렬한 팬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보고 싶어 할 것은 ‘두타연을 다녀간 소지섭’이 아니라 ‘소지섭이 사진에 담아 더 유명해진 두타연’이 아닐까. 외딴 곳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른바 ‘셀럽 마케팅’이 필요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고대하며 찾아 온 사람들을 반기는 것이 부실하고 조야한 갤러리라면, 이 뜬금없는 기획은 그저 철 지난 상품이 돼 버린다. 
괜한 투정을 부리며 차에 오르는 나그네에게 함께 가는 동료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며 핀잔을 준다. 이렇게라도 두타연을 알리고 양구를 찾아오게 만들려는 주민들의 마음이 읽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곧이어 보이는 창밖의 고요한 민통선 풍경에 창문을 활짝 연다. 


50년 만에 열린 민통선의 두타연, 무기여 잘 있거라

두타연갤러리에서 약 1km를 들어가면 21사단 군부대 옆에 마련된 이목정안내소가 나오고, 거기서 약 2km를 더 들어가면 두타연주차장이다. 두타연 일대를 탐방하는 출입구는 이목정안내소 외에도 동면 월운리의 비득안내소가 있다. 이 두 곳 사이를 도보나 자전거로 오가는 구간을 가려면 사전예약이 필요한데 비득안내소에서는 차량운행이 불가하다. 두타연에서는 음식물 섭취, 반려동물 출입, 어로 및 입수, 식물 채취 등이 금지돼 있다. 방문자들은 출입신청서 작성, 신분증 제시, 입장료 납부를 거쳐 출입증을 겸한 위치추적기를 목에 건다.

철조망으로 만든 국화
철조망으로 만든 국화

이목교를 건널 때 쯤 길가에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이 있어 잠시 차를 세운다. 철책선을 상기시키는 철사 조각에 노랑과 빨강의 색을 입혀 만든 거대한 국화가 철봉 위에 만개해 있다.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이 화합을 염원하는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두타연 조각공원 안에도 있는 이 작품(「헌화」, 배성미 作)에선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모와 역사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손길,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고 했던 함민복 시인의 시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주차장에 내려 올려다보면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수직 절벽의 봉우리들이 두타연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아래엔 지역 특산물을 파는 천막들과 야생동물을 위한 먹이 틀이 놓여 있는데, 그 옆에 오래된 돌탑처럼 보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전쟁 당시 프랑스 참전군 전사자들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장시설이라고 한다. 무심히 지나가기엔 발걸음이 무겁다.

안내소와 매점을 지나 본격적인 두타연 탐방을 시작한다. 오른쪽 ‘조각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맞은편 언덕에는 ‘양구전투위령비’가 서 있다. ‘피의 능선’, ‘斷腸의 능선’ 등 이름만 들어도 전투의 처절함이 전해지는 양구 지역 9곳 주요 전투지에서 희생된 전사들의 영령을 기리는 비석이다. ‘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碑木이여’, 두타연 주변의 참혹했던 전장은 가곡 ‘비목’의 배경이 됐다. 

반대편 조각공원에는 2013년 잔디광장에서 있었던 「DMZ를 말하다」 전시회에 출품된 설치미술 작품들이 야외에 설치돼 있다. 방문자들은 옹기종기 놓여 있는 각 작품 주위를 돌며 나름의 느낌으로 감상을 하고 작품의 제목을 보고 잠깐 멈춰 서서 상념에 빠지곤 한다. 

조각공원엔 오래 전에 퇴역한 거대한 낡은 무기들도 도열해 있다. 미군이 주고 간 M48A2C 전차의 무한궤도는 두타연 계곡을 헤집을 것처럼 육중하고, 뾰족한 탄두를 곤두세운 나이키 미사일은 곧 발사될 듯 북쪽을 겨냥한다. DMZ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포구를 북쪽으로 둔 퇴역한 화포들이 주는 긴장감은 참으로 이질적이다. 굳이 이런 무기들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누구나 아는데 말이다. 멀리서 두타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안보교육부터 시켜야 될 만큼 오늘날의 한반도가 엄혹한 시대일까. 상대에 대한 적대심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는 어떤 강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분단체제의 심리적 산물이리라. 조각공원을 지나면 왼쪽은 생태탐방로이고 오른쪽은 두타연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인 두타정으로 이어진다. 

작은 폭포이자 瀑壺(plunge pool)를 아울러 가리키는 두타연은 수입천의 지류인 사태천이 산간 지형을 굽이쳐 흐르는 과정에서 물굽이가 끊어지며 만들어진 물웅덩이다. 폭호는 폭포 밑에 깊게 파인 연못을 가리키는데, 넓은 폭으로 흐르던 하천이 갑자기 나타난 좁은 수로를 따라 굵고 세찬 물줄기로 떨어지며 형성된다. 급류가 된 물길은 한반도 모양으로 작은 沼를 두 번 이루며 꺾이다가 연못으로 수직낙하 한다. 원래 이 하천은 산을 따라 크게 굽어져 흐르던 물길이었지만 오래 전 구하도는 사라지고 현재는 물길이 직선화되고 구하도의 물살로 침식된 연못의 천연동굴만 남게 됐다. 

위에서 내려다 본 두타연

가속력이 붙은 물기둥은 조용한 산을 깨우며 웅장한 소리로 떨어진다. 관찰 데크에서 내려다보면 두타연의 장쾌한 물보라는 주변의 바람까지도 사정없이 휘몰아치며 떨어지는 것 같다. 비가 온 다음 날, 수량이 더욱 풍부해진 날이면 두타연 폭포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몸이 빨려 들어갈 듯이 아찔해서 현기증이 난다.
 
두타연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와 내려다 본 두타연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 잦은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거의 없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파스텔 톤 파란 하늘을 두타연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하늘빛을 가득 받는 수려한 산세는 우거진 초록빛을 자랑하고, 그 사이로 세차게 떨어지는 급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이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색감의 조화가 일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타교’라는 이름이 붙은 출렁다리를 건너 두타연의 반대편 절벽 위로 올라가면 멋드러지게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 사이로 열목어가 헤엄치고 수달이 뛰어 노는 계곡을 훤히 볼 수 있다.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금강산에 다다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벅차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 후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곳에서도 물길은 쉼 없이 흘러 두타연을 마르지 않는 샘으로 채워왔다. 그 위로 뚫린 하늘 길에는 늘 막힘없이 새들이 자유로이 남북을 오갔다. 인간사에 무심한 채 쉼 없이 곡선을 그리는 자연의 붓질은 분단 70년이 넘어도 우리에게 변함없는 壯觀의 픙경화를 선사한다. 

열목어

3년만에 30cm가 넘고 최대 70cm까지 자라는 대형담수어종인 열목어는 은백색 몸통에 불규칙한 연한 자홍색 무늬가 있다. 산란기인 4~5월에는 짙은 홍색으로 변하고 등과 가슴에 난 지느러미가 무지개 빛깔의 다채로운 광택을 띤다.

그런데 이곳에 비가 온 다음 날 연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있다. 熱目魚는 제 몸 길이의 몇 배나 되는 높이의 작은 폭포도 꼬리를 튕겨 뛰어 올라갈 정도로 생명력이 넘친다. 옛 사람들은 이 물고기가 눈알이 붉어질 만큼 눈에 열이 나서 차가운 물에 식히러 올라간다고 여겨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실제론 심산유곡의 14°c 이하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냉수성 어종이니 냉수 속에서 안구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눈에 열을 낸다고 한다. 열목어는 경상북도 북부 및 강원도 이북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 서식지 두 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로 급류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힘차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열목어는 이 두타연 계곡에서 남쪽 최대의 보금자리를 이뤘다. 사람들이 번잡하게 드나들지 않는 서늘하고 조용한 이 비무장지대가 그들에겐 아늑한 공간이었으리라. 징검다리 중간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물에 손을 담가본다. 간혹 지뢰가 떠내려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염려되진 않았다. 열목어가 좋아하는 쨍하게 차갑고 맑은 물은 땀이 난 몸을 금세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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