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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평 : 『트랜스포밍 테크놀로지(Transforming Technology)』(앤드류 핀버그 지음, 옥스퍼드대출판부
해외서평 : 『트랜스포밍 테크놀로지(Transforming Technology)』(앤드류 핀버그 지음, 옥스퍼드대출판부
  • 박소연 미국통신원
  • 승인 2003.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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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이되 비관적이지 않은 대안적 사회이론

 

기술에 대한 기술 외적 개입은 종종 반문명주의, 반기술주의와 같은 혐의를 받곤 한다. 확실히 과거의 철학적, 인문학적 접근들은 대부분 충분히 비판적이었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이기도 했다.

技術에 대한 記述적 관심

그러나 최근 기술학 연구자들의 관심은 핵폭탄과 같은 살상무기, 환경 오염의 주범, 인간성을 왜소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계에 같은 거대한 의미의, 필연적으로 파국을 예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삶의 구석구석에 관계하는 기술'들'이다. 가령 사회구성주의 류의 기술 연구는, '기술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나 비관적 태도를 피한다. 동시에 다양한 사례의 기술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택되며, 어떻게 작동하고 또 변화하는가에 대한 경험적 모델 연구에 치중한다. 어떤 의미에서 기술에 대한 기술적인(descriptive) 관심이 기술에 대한 기술외적 접근의 대세가 된 듯하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은 너무나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하며 그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데다가, 무엇보다도 현대인들은 기술에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에 비관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비판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까지 함축할까.
십여 년 전 출판된 '테크놀로지의 비평적 이론(Critical Theory of Technology)'(1991)에서 앤드류 핀버그는, 기술을 둘러싼 진정한 이슈는 기술 옹호의 유토피아적 시각과 디스토피아적인 반-기술적 입장의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핀버그가 자신의 기술 철학적 입장으로 비판이론을 선택한 것은 엘뤼나 하이데거 식의 비관주의와 동시에(심지어 하버마스에게서도 발견되는) 도구주의적 기술중립성을 동시에 거부하는 '기술의 변증법', '사회주의적 기술론'을 제안하기 위한 급진적 기술철학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맑스, 마르쿠제, 엘뤼, 푸코, 하버마스 등을 넘나드는 방대한 개념적·이론적 작업은 다소 추상적이라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개정판인 '트랜스포밍 테크놀로지'(2002)는 앞 책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불과 지난 십 년 동안, 기술도 사회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이후의 이념적 공황과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이뤄지는 시기였고, 컴퓨터가 하나의 일상적이고 지배적인 기술로 자리잡아온 시기였다. 개정판에서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맥락 위에서, 비판적이되 비관적이지 않은, 대안 사회 이론을 논의할 근거를 탐색한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점은 컴퓨터 분야에서 인간의 주도성과 기술시스템 간의 관계를 논한 2장 '컴퓨터의 양면가치'에서 감지된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지만 인간은 기술을 선택과 디자인한다는 뫼비우스적 상황이 핀버그에게 있어서는, 현재의 기술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기술이 사회적으로 전개되는 방식 혹은 기술관료적 시스템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넘어선다. 핀버그는 컴퓨터 기술이 단순노동과 자동화와 같이 개인들을 단순한 기계적 부속물로 환원시키는 듯한, 하여 하이데거가 바라봤던 비관적 결론을 함축하는 듯한 측면을 보여주지만, 좀더 중요하게 컴퓨터화가 소통의 기술(communicative skills)과 지식 공유(collective intelligence)의 가능성을 함축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령 정치적 힘을 행사함에 있어 컴퓨터 기술이 점점 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컴퓨터라는 기술의 디자인이 정치의 디자인과 관계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의 선택의 문제는 '기술적 논리'를 넘어서는 문제며, 정치처럼 기술이 매개된 각종 제도들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담론의 장에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기술의 변혁임과 동시에 변혁의 기술인 셈.

정치 개념 도입한 변혁의 기술

마찬가지로 온라인 교육이 한 방향으로 지배담론을 주입하는 '공장'이 아닌 세계주의적 시각의 상호작용과 보다 강화된 쌍방향 소통에 기반하는 '도시'의 모델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기술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도시모델의 온라인 교육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제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사회를 변혁하는 작업과 기술을 변혁한다는 것은 동떨어질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핀버그는 자본주의에 대안적인 거대담론이 붕괴한 듯한 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고삐를 놓지 말아야 할 근거를 찾는 듯하다.
기술의 미래가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방식으로 결정돼 있지 않고, 기술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정치와 사회와 문화에서 핵심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들로부터 얻어지는 핀버그의 결론은, 가능한 다수의 기술'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 지, 그 진보의 경로는 어떤 것이'어야' 할 지의 문제들이 핵심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것. 정치적·철학적 담론의 장에서 기술의 시민권이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한 이유가 이곳에 있다.

박소연 미국통신원/버지니아텍 박사과정

미국 샌 디에이고주립대의 철학교수인 앤드류 핀버그는 북미의 기술철학자들 중에서도 비판적·좌파적인 전통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학자로 꼽힌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정치 철학자들 중에서 컴퓨터 기술 특히 네트웍이나 오픈소스 같은 '독특한' 연구주제를 가진 학자로 볼 수도 있겠다. 기술의 합리성, 기술 민주화, 대안적 근대성 등을 모색하는 핀버그는 'Transforming Technology' 외에도 'Lukacs, Marx and the Sources of Critical Theory'(1986), 'Alternative Modernity'(1995), 'Questioning Technology'(1999) 등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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