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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최근 출간된 지식백과사전식 저작들
논쟁서평 : 최근 출간된 지식백과사전식 저작들
  • 구승회 동국대
  • 승인 2003.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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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나는 지식 퍼즐들... 갈증 더하는 다이제스트

요즘 독서계에 지식을 재가공해서 파는 백과사전식 출판물이 주목받고 있다. ‘지식의 최전선’(김호기 외 지음, 한길사 刊)과 최근에 출간된 ‘21세기 지식 키워드’(강수택 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刊)도 그런 류다. 두 책을 합하면 분량은 1천2백60여쪽이나 되고, 115명의 필자가 170개의 표제어와 논쟁적인 테마, 그리고 약 3천권의 ‘더 읽어야할 책’을 소개하고 있다. 두 책이 권하는 더 읽으라는 충고를 따르지 않고 여기에 나오는 키워드와 현대적 논쟁만 이해해도, 그는 가히 걸어 다니는 ‘최신 백과사전’일 것이다.

 

새로운 지식의 계보학 필요하다

20세기 문명은 우리에게 이처럼 엄청난 지식을 요구한다. 인구와 에너지 소비의 증가, 과학기술적 지식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20세기 백년은 그 이전 1천9백년간의 진보의 수십 배에 달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은 사실 거의 전부가 20세기의 산물이고 보면, 저런 엄청난 지식의 요구는 문명적 삶에 대한 반대급부라 할 수 있다. 지식의 확장과 급속한 융합은 새로운 ‘지식의 계보학’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런 현대 지식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이런 시도는 필요하며 유익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시대를 위기시대, 대전환의 시대로 평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지식의 최전선’의 “지금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 한가운데에 있다”는 진단은 2백5O년전 ‘백과전서’를 편찬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튀르고,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케네, 콩도르세 등 계몽의 전도사들을 포함해 1백84명이 집필에 참여했고, 디드로, 달랑베르 등이 감수한 백과전서는 1751년부터 1780년까지 장장 30년 동안 보충판과 색인집을 포함해 35권을 출간한 대규모 출판사업으로 과학, 기술, 학문, 직업에 대한 60,000만 어휘를 집대성했다. 백과전서 집필자들은 ‘가톨릭교회와 절대왕정에 반대한다’는 대원칙에 입각해 앙시앵레짐을 비판함으로써, 대혁명을 이끌어 내는 ‘사상적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어떠한가. ‘지식의 최전선’은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들이라는 점, 그리고 다양한 주장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자의 입장을 한데 섞어 보여줌으로써 상반된 주장들이 있는가 하면, 각 꼭지에 곁들인 그림, 개념설명, 문헌정보, 웹 사이트 소개 등 친절한 정보는 오히려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21세기 지식 키워드’는 1백개의 키워드가 어떤 기준에서 선정됐는지 모호하다. 1백개 중에 3개가 책과 관련된 항목이고, 특히 ‘독서’와 ‘책’ 항목은 내용도 중첩된다. ‘출판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가 만든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술 방식 또한 필자마다 다른데, 엄밀한 사전적 서술, 표제어에 대한 주관적·반성적 평가, 혹은 관찰자적·역사적 평가 등 다양하다. 사전의 모든 항목에 대해 사상적 통일성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긴 하지만, 일관된 서술 방식이 좋은 사전의 필수 요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 역시 ‘훌륭한 개념사전’이 되기에 불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일관된 서술 방식 아쉬워

‘지식의 최전선’은 “현대 세계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퍼즐 조각의 집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70꼭지의 퍼즐을 다 맞춘 ‘상식적인 독자’에게 현대 세계에 대한 완성된 그림을 보여줄 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편집자는 “학자, 건축가, 광고기획자, 게임산업종사자, 영화산업종사자, 음악가, 한마디로 일반 교양인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 신기술 관련 글은 물론이고, 인지과학, 심리학, 현대음악, 미술에 관한 꼭지도 평균 이상의 국어 해독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솔직히 말해 요령부득이었다.

일반 교양인들을 더욱 현기증 나게 하는 것은 완성된 그림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경우 ‘더 읽어야 할 책’ 8백여권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거기에는 대부분 한글 문헌이긴 하지만 영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독어, 불어로 된 책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일반 교양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나 제2외국어 문헌을 불편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수의 지식인들을 위한 교양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왜 바보같이 다 읽으려고 하는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 책이 백과사전이 아니라 현대 지식의 퍼즐이고, 다 읽어야 대전환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이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하기 때문이고, 골라서 읽으려면 3만원(정가)을 투자할 필요 없이, 값싼 입문서 한 권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사고의 최전선은 어디인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열쇠가 될만한 어휘나 개념을 선별해 잘 가공하는 일, 그리고 우리 시대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시시각각의 논쟁과 신사고를 후방에 있는 일반 교양인들에게 전하는 일은 중요하며, 지식인의 책무이기도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비춰 보면 지식의 다이제스트는 다이제스티브하지만 쉬이 허기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요약된 지식은 비판적 사고의 무기가 되지 못하고, 무기를 비판하는 사전적 기능만 갖는다. 사전은 사태에 대한 설명과 이해라는 본래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며, 언제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크게 양보해서 두 권의 책이 좋은 지식백과사전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독자들이 올바른 해석을 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사전은 그냥 사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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