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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정체성 표방·실제 ‘자유전공’ 보장한 대학만 제도 유지 중
명확한 정체성 표방·실제 ‘자유전공’ 보장한 대학만 제도 유지 중
  • 이해나
  • 승인 2018.05.21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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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학 자유전공학부 도입 10년차

지난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폐지된 법대 정원을 활용해 주요 대학에는 자유전공학부가 속속 들어섰다. 대개 09학번이 초대 입학생인 자유전공학부는 1학년 때는 기초교양 수업 위주로 자유롭게 전공을 탐색하고 2학년에 진학하며 전공을 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어느덧 도입 10년차를 맞은 자유전공학부의 운영 실태는 대학별로 각양각색이다. 

유지派, “최고 학부 계승·설계 전공으로 만족도↑”

이준일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장은 “국내 최고 법률 교육기관 고려대 법과대학의 전통은 법학전문대학원과 자유전공학부가 계승했다”고 공언한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생은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제1전공에 더해 ‘공공 거버넌스와 리더십’이라는 융합 전공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데, 이 전공은 법학이 중심이다.

정형렬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과장은 “실제로 재학생의 20% 이상이 로스쿨로 진학한다”고 말했다. 법대 계승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이 오히려 10년간 고려대 자유전공학부가 성공적으로 운영된 비결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는 현재 성공에 안주하는 대신 미래 대비책도 마련해 두고 있다. 정 과장은 “그간 자유전공학부의 제1전공은 인문사회계열에서만 선택 가능했는데, 자연계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10년간 ‘자유전공학부 실험’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다. 김청택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장은 “자유전공학부의 취업률·전공 다양성·만족도가 모두 높아 내부에서도 성공적인 운영이라 자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학부장은 비결로 △전임교수 7명 배치 △재학생을 밀착 지도하는 전문위원제도 △학생이 자유롭게 설계 가능한 전공 등을 꼽았다. 그는 “자유전공학부는 손이 많이 가는 제도”라며 “학교 차원에서 투자를 많이 하고,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폐지派, “성공 불투명한 ‘자전’ 대신 특성화학과에 주력”

중앙대는 도입 이듬해인 2010년 주요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다. 자유전공학부 09학번 신입생 132명 가운데 22%인 29명이 첫 학기만에 학교를 이탈하는 등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이탈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자유전공학부에 할당됐던 정원은 2010년 신설된 공공인재학부에 흡수됐다. 고시 준비를 위한 특성화학과가 아니냐는 질문에 중앙대 측은 “공공인재학부 전공 특성상 고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만이 목적인 학과는 아니다”라며 “기존 행정학과와 유사한 전공”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는 소위 ‘SKY’라 불리는 최상위권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지난 2014년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다. 자유전공학부의 정원은 언더우드국제대학에 신설된 융합학부로 흡수됐다. 당시 정인권 연세대 교무처장은 “자유전공학부생 대부분이 상경계열로 전공 진입을 하는 등 ‘쏠림현상’이 발생했다”며 “자유전공의 본래 취지를 살려 융·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전공학부는 공부의 ‘맛’ 알려주는 곳”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과)는 자유전공학부의 기초 개념을 마련한 학자다. 그가 처음 자유전공학부 개념을 제안했을 때는 아직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백 명예교수는 “서울대의 옛 문리대, 그러니까 인문대·사회대·자연대가 분리되기 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기초3대학 재학생이 모여 공부하던 것이 시너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자유전공학부 개설을 위해 옛 문리대 소속 단과대학에 정원의 10분의 1 정도를 할애하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다 법학전문대학원 신설로 법대가 폐지되며 생긴 정원을 활용한 것이 자유전공학부의 시작이었다.

백 명예교수는 “서울대를 제외하고는 자유전공학부가 도입 취지와 달리 운영되거나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교수가 학생을 자신의 소속 학과로 붙잡으려 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대학생이 학문후속세대가 되지는 않는다”며 “학부 과정에서는 공부의 맛만 알게 하면 되므로 학생을 학과에 얽매이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소속 학과가 없으면 목적의식 없이 시간만 낭비하게 되진 않을까. 백 명예교수는 “‘자유’전공학부이므로 필연적으로 책임이 따른다”며 “다양한 커리큘럼을 교수와 학생이 모두 창출하고 실행에 옮겨 시행착오를 직접 겪으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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