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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염원했던, 그 절절한 마음 
통일한국 염원했던, 그 절절한 마음 
  • 김정훈 전남과학대·일본근대문학
  • 승인 2018.05.2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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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가 조선의 어머니들에게 띄운 시 
서재에 있는 마쓰다 도키코
서재에 있는 마쓰다 도키코

조선 휴전
    ―조선의 어머니들에게―
                        
                           마쓰다 도키코

이 날을 이룩하기 위해
당신들은 얼마나 애태우며 번민했던가요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당신들은 소중한 아이를 부둥켜안고
지옥으로 변해버린 당신들의 조국
그 대지와 하늘 아래서
당신들은 얼마를 감내했던가요.

그때 당신들에겐 눈물조차 없었어요.
눈물은 증오로 메말라버렸어요.
하지만 당신들 이웃 나라 基地에 사는
우리 일본의 어머니들과 함께
그 위에 군림하는 공동의 적을 
찾은 것 아닐까요
당신들이 부둥켜안은 아이의
심장 고동소릴 들으며.

조선의 어머니들이여!
일본의 어머니들이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당신들에 대한 미안함에
내쉰 한숨,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염원으로
자그만하게라도 취한 행동을
일본 어머니들은 지금 부끄러움과 기쁨으로 
회상하고 있다오.

소중한 아이와 조국
남편과 조국
당신들 자신과 조국 
그건 당신들에게 하나였어요.
그 하나의 생명과
그 하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당신들은 모든 걸 바쳤어요
당신들의 조국에 흐른 피의 양과
잃어버린 생명의 양으로 
당신들의 조국은 지켜졌어요.

남북 조선이여!
당신들은 조국탈환의 이름으로
당신들 스스로 바친 
모든 걸 회복했어요.
(하지만 증오는 사라지지 않으리)  
(하지만 소중한 사랑의 몸부림은 사라지지 않으리)

조선의 어머니들이여!
우리 일본의 어머니들은
조선 휴전 보도 앞에서
당신들이 이 순간까지 내딛은 발걸음
그리고 이 순간부터 앞으로 내딛을
조국통일 평화건설의 대업을 향한 출발을
존경과 기쁨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우리도 배우자
우리도 투쟁하자
조선 어머니들처럼….
전율하는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일본의 양심적 작가는 남북분단 현실을 어떻게 보았을까?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조선의 통일을 절실히 염원한 시 「조선 휴전-조선의 어머니들에게」를 최근 『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제9권(사와다출판, 2009. 7)에서 찾았다. 이 시를 발표한 작가는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 1905∼2004). 

마쓰다 도키코는 평생을 하나오카 사건을 비롯한 이국인 노동자 문제에 천착, 99세 영면할 때까지 일본제국주의와 전범기업의 폭압적인 만행을 고발했고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피해 해결을 위해 선두에서 투쟁했다. 또한 미국 중심의 한일조약, 베트남전쟁에 반기를 드는 등 반전평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에 필자는 현 남북 관계 상황에 유의미하다고 판단해, 일본 진보적 작가가 남북 통일을 염원한 호소력 짙은 시를 우리말로 번역해 봤다.

한일조약 반대 투쟁에 참여한 마쓰다 도키코(가운데)
한일조약 반대 투쟁에 참여한 마쓰다 도키코. 왼쪽에서 네 번째, 안경 쓴 이가 마쓰다 도키코다.

시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남북분단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조선의 어머니들에게 통일에 대한 열망을 호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일찍이 이국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이념과 국경을 뛰어넘어 반전평화 정신과 인간애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해 한뿌리였던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한 제국주의 일본을 혹독히 비판했고, 해방 후에도 남북으로 갈라져 비극을 겪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이토록 애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97~98세에도 이라크파병 반대집회에 선두에 서서 참석했음은 물론 광산 노동자의 진폐 투쟁에도 앞장섰다. 또한 외국인 징용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중국인 징용자 유골 고국반환 운동과 조선인 징용 희생자 진상규명과 그 진실 알리기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제국주의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 주역이었으며 그들이 조선민족에 가한 수많은 가해적 사실에 대한 자성과 성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쓰다 도키코는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국민국가 강요행위가 결국 외세의 개입을 불러왔으며 일본이 남북분단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
일본 간사이가쿠인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소세키와 조선』, 『소세키 남성의 언사·여성의 처사』, 논문으로 「마쓰다 도키코 ‘하나오카 사건 각서’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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