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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시나리오, “평화를 ‘먼저’ 말해야 비핵화 온다”
한반도 평화 시나리오, “평화를 ‘먼저’ 말해야 비핵화 온다”
  • 양도웅
  • 승인 2018.05.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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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2018 KU 통일연구네트워크’ 학술대회 개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가운데)은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타이트하게 연결시키지 말고 남북관계가 반 발짝 정도 앞서가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2부와 3부에는 정 전 장관 외에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원장(왼쪽),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오른쪽)도 참여했다. 사진 제공=건국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가운데)은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타이트하게 연결시키지 말고 남북관계가 반 발짝 정도 앞서가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왼쪽은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오른쪽은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사진 제공=건국대

지난 11일, 전 세계가 궁금해 하던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 발표됐다. 특히 판문점, 평양, 싱가포르 등이 거론되던 회담 장소는 싱가포르로 낙점됐다. 회담 일자는 다음달 12일. 같은 달 8~9일에 진행될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이후로 결정됐다. 공교롭게도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된 이 날은,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원장 김성민)이 ‘남북한 범학문적 공동연구 본격화 방안’을 주제로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한 날이기도 했다.

학술대회는 총 4부로 구성돼 진행됐다. 1부에서는 총 3개의 분과에서 19개의 발표가 진행됐고, 2부에서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기조 발제, 3부에서는 김성민 원장의 사회로 정 전 장관과 조 위원의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마지막 4부는 모든 참석자들이 모여 ‘만찬’을 즐겼다. 이번 학술대회는 대북관계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신뢰받는 ‘해설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 전 장관의 발언을 들을 수 있어 개최 전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기조 발제 키워드 ①: 북핵의 목적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진행된 2부 기조 발제에서 정세현 전 장관과 조성렬 위원 모두 공통적으로 ‘북핵의 목적’에 주목했다. 

첫 번째 발제에 앞서 “지난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서 특별히 더 달라해 평양냉면을 두 그릇 먹었다”며 대회장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든 정 전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관계」에서 지난 남북 정상회담 일정 가운데 최고의 이벤트였다고 찬사를 받은 ‘도보다리 대화’를 언급했다. 정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 위에서 문 대통령에게 건넨 말 “미국이 종전 선언과 불가침 조약을 해주고 북미 수교를 해준다면, 왜 저희가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습니까”를 인용한 뒤,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 값만 쳐준다면 북한의 핵 시설, 핵 물질을 모두 폐기하고 파기하겠다는 뜻이다”고 덧붙였다. 북핵 목적이 ‘공격용’이 아닌 ‘협상용’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일정 중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담’이었다. 사진 출처=http://www.koreasummit.kr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일정 중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담’이었다. 사진 출처=http://www.koreasummit.kr

정 전 장관에 이어 「남북관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를 기조발제한 조성렬 위원도 “미국측 관계자를 만난 북한의 싱크탱크 연구원이 ‘우리는 핵을 포기하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는 말을 한 바 있다”며 북핵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북한 연구원의 말은 북한의 대화 제의를 뜻한다. 북한의 핵 능력이 약했을 때, 미국은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2월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개발에 북한이 성공하자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대북제재와 압박이 현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지난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남북 공동번영’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의 연결·현대화 사업이 언급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것이 교환되고 어떤 것을 양보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조 발제 키워드 ②: 일본과 미국 관료 변수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 재팬 패싱’에 대해 “일본이 평화를 가져다주진 못해도 평화를 방해할 힘은 있다”고 답했다. 좋든 싫든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가 정착 혹은 지속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정세현 전 장관과 조성렬 위원 또한 ‘북핵의 목적’과 함께 ‘일본 변수’에 주목했다. 

‘일본 변수’로 언제든 분위기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세현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 회담을 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과 같은 입장에 있는 트럼프 참모들이 트럼프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있기 전 한미 정상회담을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정 장관은 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한반도 평화의 방향으로 성공시킬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잘 리드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타이트하게 연결시키지 말고 남북관계가 반 발짝 정도 앞서가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 개선(평화)과 북핵 문제 해결을 병행하기보다는, 개선된 남북관계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 

조성렬 위원 또한 “미국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중국이 굴기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적극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은 5월 안에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변수’가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by may’라고 말한 것과 달리 (미국) 관료들은 늦추려고 했다. 내가 취재한 바로는 회담장소도 80% 이상 판문점으로 결정됐다가 관료들이 싱가포르로 바꿨다 한다. 관료들, 참모들은 일본과 함께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변수가 곧 ‘미국 관료 변수’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과 미국 관료들의 의심은 구체적으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숨겨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다. 이에 대해 조성렬 위원은 “북한이 핵을 최대 30개 정도 갖고 있다고 했을 때, 이론적으로 대략 20% 정도 숨겨놓을 수는 있다”며 “하지만 북한이 핵을 대내외적으로 없다고 공표한 이상, 미국이나 일본을 상대로 ‘핵 억제력’을 가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내가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상대가 나를 공격하지 않는데, 북한이 핵이 없다고 말하면 이 도식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만약 관계 정상화 이후에 핵을 숨겨놓은 것이 발견되면, 김정은 위원장의 체제는 존속될 수가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12일 새벽,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이날 폼페이오는 “북한이 조속한 비핵화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할 경우, 미국은 북한의 번영을 위해 한국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사진 캡쳐=외교부 홈페이지 영상
한국 시간으로 지난 12일 새벽,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이날 폼페이오는 “북한이 조속한 비핵화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할 경우, 미국은 북한의 번영을 위해 한국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영상 캡쳐=외교부 홈페이지 

라운드 테이블 키워드: 핵기술자들의 미래

그럼 북핵 폐기 후 핵기술자들은 어떻게 될까? 이어 진행된 3부 라운드 테이블에서 다뤄진 주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 질문이었다. ‘완전한 비핵화’에는 핵기술자들이 갖고 있는 핵기술 또한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핵 폐기 이후, 핵기술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핵기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어떤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앞으로 북미 대화의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는 핵기술자들을 미국으로 이주시켰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성렬 위원은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를 선언하자 미국 등은 현재 기준으로 약 20조원을 우크라이나 정부에 줬지만, 핵기술자들에게 돌아간 돈은 거의 없었다”며 “우크라이나 사례보다는 일본 사례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야마토 전투함 등을 만들었는데, 이걸 만든 기술자들은 이후 도요타나 미쓰비시 중공업 등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방위산업 기반이 모두 해체됐지만, 군수분야 기술자에서 민수분야 기술자로 변신한 이들이 일본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며 “국제사회가 핵기술자나 과학자들의 명단을 확보해, 이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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