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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품은 대학출판문화 전진기지 … ‘독자 팬덤’ 만들기 나섰다
지리산이 품은 대학출판문화 전진기지 … ‘독자 팬덤’ 만들기 나섰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8.05.1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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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가다-2. 경상대출판부
왼쪽에서부터 김종길 편집장, 박현곤 출판부장, 이가람 편집자, 이희은 북디지이너.  사진제공=경상대출판부
왼쪽에서부터 김종길 편집장, 박현곤 출판부장, 이가람 편집자, 이희은 북디지이너. 사진제공=경상대출판부

진주에서 산청군 시천면을 향해 올라가면 거대한 어머니품 같은 산, 지리산이 웅장하게 서있다. 진주시 진주대로에 위치한 국립 경상대는 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대학인 셈이다. 지난해 8월, 경상대출판부(출판부장 박현곤)가 조선의 3대 山誌이자 지리산에 관한 조선 시대의 유일한 산지인 『두류전지』를 번역해 내놓은 것은 이런 지리문화적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 책 제1장의 제목은 ‘두류산 조상 산들의 계보[頭流祖宗譜]’라고 했으니, 그 의미가 사뭇 깊다.

경상대출판부는 1988년 12월 1일 개관(출판부장 김인호)했으니 올해로 30년이 된다. 30년이라면 꽤나 묵직한 시간의 나이테인데도 출판부의 식구는 단촐하다. 박현곤 출판부장(미술교육과), 김종길 편집장, 이희은 북디자이너, 이가람 편집보조가 전부다. 이들은 붙박이다. 다른 행정부서로 ‘로테이션’하지 않는다.

김종길 편집장은 편집 경력 15년차다. 애초부터 출판부 편집 인력으로 채용됐다. 두 번 정도 본부 교무인사팀과 인재개발원 교육팀 등 다른 부서에 잠시 근무했다가 다시 출판부로 돌아왔다. 이희은 북디자이너는 4년 동안 근무했던 전임자가 개인 사정으로 퇴사한 후 2018년 4월에 새로 합류했다. 일반 출판사에서 3년 정도 일한 경력을 지녔다. 편집보조를 하고 있는 이가람 씨는 다른 직장(학회)에서 정규직으로 다니다가 편집 일을 배우고 싶어 과감하게 직장을 버리고 출판부를 택했다. 2017년 7월에 입사해서 계약직으로 있다가 다행히 지난 3월에 정규직으로 발령받았다.

연간 출간하는 신간은 20여 종이지만, 추쇄 등을 합치면 40여종에 이른다. 전체 발행부수는 3만부 정도. 현재 대학 조직상 대학의 부속기관으로 돼 있지만, 독립채산제로 2017년 4월부터 회계가 분리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느 대학출판부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재와 학술서를 출판하지만, ‘지앤유’라는 교양브랜드를 빼놓고 경상대출판부를 잘 드러낼 수는 없다.

교양브랜드 ‘지앤유’의 가능성과 시사점

김종길 편집장은 “교양 분야 브랜드 사업은 제가 기획했으며 브랜드 명은 당시 출판부장이셨던 이명신 교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학교 영문 이니셜이 GNU인데, 한자의 ‘知’와 영어의 ‘You’를 넣어 ‘당신을 위한 지식’ 등의 의미로 새로이 도안한 것”이라고 말한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지앤유’는 2010년 기획한 ‘생태, 웰빙, 환경’ 시리즈 총 6종으로 출판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공모를 통해 원고를 확보했으며, 첫 책은 『건강의 비밀』이었다. 이 책은 2012년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지앤유’로 출간된 도서는 모두 20여 종, ‘지앤유’ 브랜드로 출간하는 교양서들을 주력으로 꼽고 있다고 말하는 김 편집장은 경남 지역을 소재로 한 ‘지앤유 로컬북스’를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 『나는 대한민국 경남여성』,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신우해이어보』가 출간돼 있다. 경남 지역의 역사, 문화, 인물 등을 소재로 하되 보편적인 주제로 길어 올린 원고들이란 평에서 알 수 있듯 ‘경상대출판부’의 정체성과 철학을 읽을 수 있는 기획이다.

‘지앤유 로컬북스’ 외에도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기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하는 김 편집장은 “원래 지식교양서라 큰 수익은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2쇄 정도의 출간으로 외부 예산 지원 없이 계속해서 출간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고 있고요. 의미 있는 출판을 하면서도 열악한 출판시장, 그것도 지역의 대학출판부에서 2쇄를 찍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3종이 우수도서로 선정돼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됐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비쳤다.

책을 내다보면 희비가 엇갈릴 때가 자주 찾아온다. 기획에 공들였고 크게 기대했는데 반응이 낮아서 아쉬웠던 책이 있는가 하면,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호응이 좋았던 책이 있게 마련. 김종길 편집장은 『나는 대한민국 경남여성』을 가장 아쉽게 여긴다. 사회학자인 이혜숙·강인순 교수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남지역 여성의 삶 70년을 다룬 책이었는데, 당시의 방대한 사진과 자료 등을 일일이 찾아 선별해 저작권을 협의한 후 편집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내놓은 야심찬 결과물이었다. “논문 위주의 글을 써 온 저자들의 이력으로 대중적인 글쓰기가 쉽지 않았고, 경남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전국적인 공감을 얻는 데는 다소 힘들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은 기대 밖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한지희 교수(영어영문학과)가 2015년 출판신청도서지원사업에 신청한 원고였다. 김 편집장은 “소녀에 대한 여성주의 입장의 연구들과 대중문화이론에 관한 책들은 더러 있었으나 이 둘을 융합한 연구는 부족한 시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소녀의 존재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통해 글을 전개하고 있어서 반응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풀이했다.

경상대출판부는 2003년이 분기점이었다. 한국출판협동조합에 가입했고, 제10대 출판부장에 권영인 교수가 취임했던 시점이다. 김종길 편집장 역시 이 즈음 ‘출판부’에 몸을 담았다. 원래 출판부 직원은 6~7명 정도였는데, IMF 이후 대폭 감축이 있었다. 대개의 대학들이 그렇듯, 경상대 역시 출판부는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다. 당시 1년 예산도 2천8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계약직 직원이었던 김 편집장 1인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였다.

“출판을 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을 학교 측에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번번이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어서 결국 수익을 먼저 올리기로 하고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부탁드려서 출간을 유도했었죠. 3년이 지나자 매출이 1억 원을 넘기 시작했고, 몇 년 뒤에는 2억 원, 이런 식으로 해서 수익을 쌓은 후 북디자이너를 2012년에 1명, 편집보조를 2015년에 1명 등 채용해 출판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을 구축했습니다. 지금은 저희 출판부를 아시는 분들이 많아 무척이나 보람을 느낍니다. 그 외에도 지역의 북카페, 공연장 등에 출판부 책을 비치해 지역민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편집 보조자로 일한 지 10개월 차인 이가람 씨는 “처음으로 출판에 참여해 책(『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신우해이어보』)에 제 이름이 실린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고 있다. 이희은 북디자이너도 가능성을 경험했다. “저희가 펴낸 책 중에 『노거수와 마을숲』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무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이 책을 보시고 ‘이런 책도 나오네?’ 하면서 관심을 보였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관심사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독자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중의 장애물을 넘어 ‘지역’과 함께하기

그렇다면 이들이 제일 안타까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도권 대학출판부에서도 겪고 있는 문제인데 ‘출판에 대한 지역사회와 대학의 인식’이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출판(과정)의 전문성을 다양한 경로로 호소하면서 인식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서울에 집중돼 있는 유통구조와 전문 인력의 부재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복잡한 속앓이다. 북디자이너와 편집자를 경력자로 채용하고 싶어도 누구도 진주까지 오려고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출판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직원을 채용해서 편집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 하나 해법이 필요한 게 ‘10%의 공적부담금’ 문제다. 일부 국립대출판부가 겪고 있는 공통 애로점이기도 하다. 김 편집장은 “상업출판사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야 대개 1천부 내외로 출간하는 도서의 경우 다 팔려도 출판사 수익은 10~20%에 불과한데 그중 10%를 내면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죠. 물론 현재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측면도 있어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좋은 책을 출간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호소한다.

지금 경상대출판부는 그간 숙원사업으로 진행해왔던 지역민과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 ‘북카페 지앤유’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점과 전시, 공연이 있는 문화공간이다. 북카페 내부 공간의 중심인 서점에서는 시중에서 보기 힘든 책들, 지역 출판사의 보석 같은 책들, 1인출판사, 독립출판물의 희귀한 책들을 전시하고 판매할 계획이다. 일본대학출판부의 책들도 비치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강연회나 공연이 가능한 공간 구성, 북아트 등 책이나 출판과 연관된 전시 계획 등도 잡혀있다. 이 모든 게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집약된다. 65평 규모에 경상대박물관 1층에 위치해 있다. 

‘북카페 지앤유’에서 알 수 있듯, 경상대출판부는 ‘지역 콘텐츠’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보편성을 띤 지역 콘텐츠를 꾸준하게 발굴해 지역과 함께하면서 지역을 넘어서는 출판을 하겠다는 발상이다. 김종길 편집장은 “단순히 책의 출판이 아닌 콘텐츠의 양산과 함께 지역의 작가들을 육성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기행, 강연회, 답사, 음악회, 전시회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확산시킬 것입니다. 또한, 대학을 넘어 지역의 저자를 발굴하고 육성해서 지역 인문학 아카데미를 만들 것입니다. 그 거점 공간이 북카페 지앤유가 될 것입니다”라고 미래비전을 말한다.

“대학출판부는 대학을 넘어 지역민과 함께하는, 독자와 함께하는 동적인 활동으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서점에 대학출판부 책이 없는 현실에서 이제 대학출판부는 독자를 찾아 대학 밖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대학출판부의 독자 팬덤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경상대출판부의 새로운 시도는 어쩌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도전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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