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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우리 시대의 불안 치유법
기본소득, 우리 시대의 불안 치유법
  • 윤상민
  • 승인 2018.05.14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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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일정 소득 없이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어느 정도가 과연 인간다운 삶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 있으나 최소한의 안전과 평화와 자유가 보장되는 삶이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1인 최저 주거기준인 네 평짜리 원룸조차 비싸서 그보다 더 협소한 고시원으로 내몰리지 않는 삶을 말한다. 그것은 노동 계약서 한번 못 써보고 평생을 임시직, 일용직으로만 전전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아무리 일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물가, 공공요금, 월세, 전세, 임대료로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 쏟지 않는 삶을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 정도의 예우는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이 지금까지 이런 기본권을 무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안전과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그런 권리를 뒷받침해줄 기본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스탠딩은 일찍이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라는 비영리시민단체를 조직하여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라는 개념을 전파하였다. 그런 스탠딩이 최근에 『기본소득,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Basic Income: How to Make it Happen)라는 저서를 내고 인터뷰를 하였다. 일찍이 스탠딩은 『자본주의의 부패』(박종철 출판사)라는 저서에서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지대, 임대료, 배당금, 이자, 등의 다양한 종류의 금리로 부를 축적하는 ‘불로소득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라고 비판하며, 이런 체제는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돈을 버는 금리생활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고 보았다. 요즘 흔히 말하는 ‘조물주’ 위에 계신다는 ‘건물주’를 위한 자본주의인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부를 축적하는 불로소득자의 정 반대편에 소위 말하는 불안소득 계층이 있다는 점이다. 흔히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불리는 이들은 불안정한 노동과 불안정한 소득에 시달리는 계층으로 일을 아무리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민(working poor)들이다. 실직이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런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탠딩은 분노, 아노미, 걱정, 소외를 이들 프레카리아트들의 공통된 심성으로 보았다. 문제는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소득 계층이 점점 늘면서 불안감이 우리사회의 내면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탠딩은 기본소득에 관한 최근 저서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기본소득이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불안정뿐 아니라 이런 내면의 불안감을 치유할 수 있는 실제로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자동화와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으로 노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던 전통적인 소득방식이 빠르게 사라질 경우 사람들은 더욱 불안감에 시달리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의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지능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지능이 퇴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다가올 자동화와 로봇의 시대를 맞아 어떻게 지능저하와 불안감으로부터 인간을 인간답게 지켜줄 의학적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 궁금하다면 스탠딩의 책을 권하고 싶다.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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