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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꺼져가는 불길에 부쳐 
‘미투’의 꺼져가는 불길에 부쳐 
  •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5.14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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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법학

활활 타오르던 미투 불길이 요즘 다소 주춤한 느낌이다. 논리학에서 인식근거와 존재근거를 설명할 때 흔히 예로 드는 연기와 불의 관계, 즉 '연기가 있으면 불이 있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연극계, 법조계, 정계, 교육계, 공직사회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새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납득 안 되는 핑계로 불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유감이다. 미투로 스스로 물러났던 국회의원도 의원직 사퇴를 철회하고 돌아오는 형국이고,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온 국민 앞에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서 놓고 뒤로는 부하 여직원에게 미투를 당할 짓을 한 정치인도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월 말, 대통령이 미투운동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적극 수사할 것이라고 했으나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정부도 분야별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말만 앞섰을 뿐 체계도 전문상담원도 관련 대책을 위한 예산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 국민의 관점에서는 힘 있는 인사들이나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다수 연루되었기 때문에 수사가 부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최근에 대법원이 성희롱 소송의 심리의 유의사항과 증거판단의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까지의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일신할만한 태도로써 환영할 만하다. 심리의 유의사항은 법원이 성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즉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피해자들의 열악한 지위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증거판단의 기준은 우리 사회의 일반인(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투가해자들을 포함한다)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투운동의 성공은 곧 사회정의의 회복이자 인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투운동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미투 대상 범죄의 사실관계를 어떠한 시각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성범죄 사실관계판단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우리 법원이 비로소 미투운동의 본질에 대한 혜안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동안 말 못 하고 울분을 삭이며 살아온 성폭행, 성희롱의 피해자들이 오죽하면 여러 가지 위험성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나도 당했다며 ‘미투!’를 외쳤을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그 굴욕감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으며,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거부했을 때, 은밀하게 그러나 반드시, 돌아오는 불이익이나 보복을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는데 혹여 남성들이 성행위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권리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여성이 성행위를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는 여성의 권리이다. 하고 싶지 않을 때의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은 인간으로서 극한적 고통이며 따라서 그러한 고통의 유발은 곧 인권의 침해가 된다.  

형법 제52조에 자수, 자복 규정이 있다. 자수는 가해자가 죄를 범한 후 수사 책임이 있는 관서에 자수하는 것을 말하고 자복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는 죄에 있어서 피해자에게 직접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자수, 자복한다면 형을 감경받을 수도 면제받을 수도 있다.

이쯤 해서 특별히 한국의 중년남성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자면,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피해여성들의 미투캠페인 보다는 언제 어떻게 들통날까 가슴 졸이느니, 가해 남성들이 스스로 나도 잘못을 저질렀다고 미투로 고백하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개저씨(gaejeossi)',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갑질(Gapjil)'을 비롯해 재벌(chaebol) 등의 단어로 이미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일부 중년남성들이 차제에 나도 성희롱 성폭행을 했노라고 ‘역미투운동’을 벌이라는 것이다.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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