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무릎 높이만 돼도 여성은 걷질 못해요"
"물이 무릎 높이만 돼도 여성은 걷질 못해요"
  • 양도웅
  • 승인 2018.05.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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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총, 2018 젠더혁신연구포럼 「남녀 모두를 위한 기술혁신」 개최

“여성은 보호의 대상(약자)인가?” 이 질문은 페미니즘에서 매우 논쟁적인 질문 중 하나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수능을 일주일 연기시켰던 포항 지진의 경우를 전제한다면. 

지난 10일 여성과총(회장 유명희) 산하 젠더혁신연구센터(센터장 백희영)는 ‘남녀 모두를 위한 기술혁신’을 주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18젠더혁신연구포럼을 개최했다. 기조강연, 정책개발 주제발표, 연구사례 주제발표 순서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명시된 ‘안전취약계층’에 여성을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현재 안전취약계층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으로 표현돼 있다. 이 분야의 국제적 표준을 제시 및 권고하고 있는 UNDP(유엔개발계획)는 재난취약계층을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성, 빈곤층, 노인, 어린이 및 장애인을 포함한다”라고 정의해놓고 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다름’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와 ‘다름’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릎 이상 침수 시, 보행 불가능한 여성

많은 이들이 헷갈려 하는 ‘성(sex)’과 ‘젠더(gender)’에 대한 설명이 기조강연에서 다뤄졌다. 조옥라 서강대 명예교수는 「젠더 혁신의 단계적 접근」에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젠더(gender)’라는 개념을 고안한 것”이라며 “기존의 ‘성(sex)’ 개념 대신 젠더 개념을 도입하면서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부각되고, 남성들에게도 다양한 태도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성과 달리, 남녀의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역할과 규범에서의 차이를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게 젠더다. 성으로 분류할 때는 남자/여자로, 젠더로 분류할 때는 남성/여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모습을 조 명예교수는 ‘이미지’로 부른 뒤, “특정 상황에서 남녀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 ‘이미지’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이 이미지에 맞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상대를 판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젠더 혁신은 이 이미지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졌고, 다양한 관점에서 남녀의 차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석해 연구 및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어 「재난안전관리의 젠더 혁신 도입 방안」을 발표한 정건희 호서대 교수(건축토목환경공학부)는 거대한 자연재해 발생 시, 여성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여러 사례로 설명했다. “1991년 방글라데시에서 사이클론으로 홍수가 발생했을 때 사망한 14만명 가운데 여성이 90%였다. 또한 2004년에 인도양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여성 사망자의 수는 남성 사망자의 수보다 약 3배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2008년 미얀마를 강타했던 사이클론의 경우, 사망자 중 61%가 여성이었으며 여성 희생자는 대부분 18~60세였다.”  

재난 상황에서 여성 사망자 수가 남성 사망자 수보다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성의 물리적인 힘이 남성보다 현저히 약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소개한 연구를 보면, 저지대 및 반지하 주택 등이 몰려 있는 도심지에서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침수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은 남성보다 대피 속도가 현격하게 느렸다. 발목 높이와 정강이 높이 정도로 침수가 됐을 때, 여성은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무릎 높이로 물이 차오르자 여성은 보행이 불가능했다. 대피에 도움이 되는 구조물인 난간을 설치하더라도 여성은 보행이 불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하공간에서 홍수가 발생해 출입문을 열고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여성은 정강이 높이 정도로 물이 차오르자 출입문을 혼자 열기 어려워했다. 반면 남성은 무릎 높이 정도로 물이 차오르자 문을 열기 어려워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정 교수는 “현재 재난 관련 가장 상위법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명시된 ‘안전취약계층’에 여성이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고려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무척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유승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안전취약계층’에 여성을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한편 재난 상황 시, 남성과 여성은 인지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이를테면 남성은 대피명령에 순종적이지 않은 반면에 여성은 대피 명령에 순종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변에 빠르게 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성은 재난 발생 후 즉각적인 사회 재건에 참여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여성은 재난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며 장기적인 사회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교수는 “이런 모습을 지난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옥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젠더적 관점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조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조옥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젠더적 관점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조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닮아가는 남녀의 몸

이어 진행된 연구사례 주제발표에서는 흥미로운 연구들이 주목을 끌었다. 「열령 및 젠더요소를 고려한 체형 및 인체기능 분석」을 발표한 남윤자 서울대 교수(의류학과)는 “인간의 체형은 거시적으로는 시대와 지역, 사회환경에 따라 다르고,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성장 과정과 연령에 따라 다르다”면서 “여기서 성·젠더에서의 차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참조하면, 20대의 경우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이즈가 키, 몸무게, 목둘레, 가슴둘레, 가슴둘레, 비만도 등 11가지 항목에서 모두 작은 경향을 보였다. 반면 고령자의 경우 키, 몸무게, 목둘레, 가슴둘레를 제외한 나머지 7가지 항목에서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신체 면에서 남성과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점차 닮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남성이 여성에 가깝게, 혹은 여성이 남성에 가깝게 변화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키의 경우,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감소폭이 남성보다 컸다. 또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허리둘레가 상당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유사한 몸무게의 경우, 남성은 고령에 이를수록 몸무게가 감소하는 반면에 여성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의 몸무게가 감소하는 주원인은 근육량이 현격하게 감소한다는 데 있다. 

남 교수는 “여성 군인들은 오랫동안 치수가 작은 남성 군인들의 군복을 입어왔다”며 “군복 제작만 봐도 남녀의 신체 치수와 비율이 다른 점을 전혀 고려해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제품을 설계하든지, 연령과 젠더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부대와 함께 ‘남초’ 사회로 유명한 건설현장은 어떨까? 「한국 건설현장의 젠더혁신 도입방안」을 발표한 박성신 군산대 교수(건축해양건설융합공학부)는 “건설현장의 여성 근로자들은 여전히 작은 치수의 남성 근로자들의 옷을 입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안전시설 미비로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건설현장에서 여성 근로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한 복장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어느 산업 현장보다 남성중심적인 곳이 건설 현장”이라며 “양로원에서는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의 방을 불쑥불쑥 찾아들어가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남성 근로자의 수가 많기 때문에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2016년 7월부터 8월까지 27개 아파트건설 현장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근로자의 80%가 남성이었다. 박 교수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설시설물이라도 여성의 특성을 고려해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글·사진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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