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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사람들
박제된 사람들
  • 정용길 논설위원
  • 승인 2018.05.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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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정치와 언론은 면밀하게 역사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적 소명과 과제, 미래의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존재의 기반이 되는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며, 역사발전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 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세기적 대전환의 물결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과거에 갇혀 있는 일부 정치집단과 보수언론이 한심스럽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을 맞이한 우리 민족은 70여년 동안 적대적 관계 속에서 남과 북이 갈등과 반목을 지속해 왔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은 겉으로 통일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분단을 고착해 왔으며,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유지를 위해 상대를 악마로 설정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민족화해와 평화, 그리고 민족공영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다시 분단과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무기와 ICBM 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르자 위협을 느낀 미국의 강경한 대응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명시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 이번에 개최된 정상회담은 양국의 정상이 만남에서부터 헤어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TV로 실시간 중계돼 온 국민들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였다. 양국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간혹 새 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도보다리에서 두 정상의 대화 장면은 평화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평화와 화해의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논리와 냉전적 사고에 갇혀 판문점 선언을 폄훼하고 냉소적 평가를 서슴지 않는 정치집단과 일부 언론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고 싶다. 이들은 보수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이 냉전체제 하에서 부와 권력을 누려온 기득권 세력이다. 민족의 평화와 공존, 그리고 통일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한 수구집단이다. 이들에게는 보수가 갖춰야 할 보편적 가치와 규범, 그리고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미 계절은 봄의 한 가운데에 와 있건만 아직도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거의 모든 국가들이 ‘판문점 선언’을 지지했고,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도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우리의 외교사에서 이처럼 주도적 역할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한반도 운전자를 넘어 남북관계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을 하고, 북미관계에서 촉진자 역할을 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민족적 자존심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분단시대를 끝내고 민족이 함께 평화롭게 잘 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당장 통일로 가지는 못하더라도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민족적 소명이다. 분단 이후 우리는 한국전쟁을 비롯해 너무 큰 희생과 비용을 치렀다. 

만일 곧 개최될 북미정상 회담이 결렬되면 ‘판문점 선언’은 사문화될 것이며, 한반도에는 다시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울 수 있다.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지만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모든 국민이 지혜를 모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국면에 힘을 보태야 한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이다. 치졸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함몰하여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과거 속에 갇힌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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