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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용인대 박물관 '문화재의 또 다른 보존, 복제와 모사' 展
예술계 풍경: 용인대 박물관 '문화재의 또 다른 보존, 복제와 모사' 展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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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원형을 찾아서

모든 예술품은 영원할 수 없다. 억겁의 흔적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하면 모든 생명체들에게 필수적인 공기조차도 예술작품에게 있어서는 위협으로 다가선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공주 박물관 문화재 강탈 사고처럼 불의의 사고로 인해 유물이 약탈될 때는 작품은 물론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까지 도난 당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용인대 박물관(관장 박선경)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재의 또 다른 보존, 복제와 모사' 展(6월 2일∼13일)은 문화재의 복제와 모사를 이러한 문제들을 보완하는 '보존'의 차원으로 바라보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수월관음도, 금동선각열반변상판, 석조 나한상 등 문화재 20여점이 복제·모사한 작품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쌍둥이같은 작품들을 두고 어느 것이 진품인지 눈짐작해보는 것도 재미다. 이외에도 복원된 칠기, 문갑 등이 전시돼 있으며, 유물을 복원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학문화재단 소장의 '감로탱화'와 그 모사작. 보물 제1239호로 지정된 불화로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며, 세계적으로는 네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옆 이태승 용인대 교수(회화)가 모사해낸 감로탱화에는 세월이 지워버린 등장인물들의 턱선과 콧날, 표정 등이 선명하게 살아나고 있다.

석조나한상 역시 영월 창원리사지에서 발견됐을 당시에는 여러 조각으로 파손돼 있었다. 하지만 복원과 복제의 과정을 통해 차가운 돌 속에 새겨져 있던 인자함을 다시 살려냈다.

사실 유물의 모습을 본 따는 행위는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낯설지 않었다. 창조력을 키우고 공부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오던 것이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겪은 전통예술의 단절은 문화재를 복제하는 행위를 '僞作'으로만 보는 부정적인 시각만을 남겼다.

이번 전시회는 문화재를 모사·복제하는 행위가 문화재 보존과 진품이 가지고 있는 오롯한 향기를 되살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점쳐보는 자리였다. 복제와 모사가 단순한 모방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창작열과 예술혼을 깃들게 할 수 있을지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은정 기자 iris79@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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