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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강의'의 모색
'실험강의'의 모색
  • 이상욱 한양대
  • 승인 2003.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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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현대 한국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과 경험의 도움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생명연구와 관련된 여러 논쟁거리들도 그 주제들에 대한 사회적 수준의 선택을 위해서는 생물학 연구자, 의학 연구자, 정부관련부처 담당자, 윤리학자, 시민단체, 종교계 등의 다양한 견해들이 서로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지적 배경과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하게되면 합의점을 도출하기는커녕 상대방의 관점을 공정하게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양대학교에서 2003년 1학기부터 이공계열 학생들에게 교양필수로 부과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가지는 포괄적 의미를 수강생들에게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졸업후 한국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과학기술이 관련된 다양한 수준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때 인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분석기법을 사용하여 과학기술을 그것을 담고있는 보다 넓은 사회문화적 측면과 함께 '큰 그림'으로 읽어내어 보다 적절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많은 대학에서 이미 이공계열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과목이 많이 개설되어 있고 그 호응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가 갖는 특징은 과학기술에 대해 역사적 혹은 사회학적 측면만을 따로 떼어내어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Studies)의 여러 분야를 되도록 골고루 통합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는 점과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이 과목을 위해 새로 제작한 교재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과학기술학의 여러 이론을 소개한 1부에 비해 여러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특정 면모를 부각시키는 사례연구로 이루어진 2부가 세 배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교과서를 이렇게 구성하게 된 데는 작년 본인이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의 교과목 내용과 효과적인 교수법을 시험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개설한 일종의 '실험강의'에서 얻은 경험의 영향이 컸다. 내 강의에 들어온 학생들은 강의의 통합적 성격을 반영하여 이공계열과 인문사회계열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어려운 과학기술 사례를 들거나 너무 딱딱한 이론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첫 시간에 말리리아를 퍼뜨리는 모기에 대한 인류의 투쟁과정을 다룬 사례를 소개하면서 말라리아를 정복하는 일이 모기의 생태에 대한 곤충학적 지식, 말라리아 기생충의 전염메카니즘에 대한 병리학적 지식, 살충제의 효용성과 경제적 부담에 대한 고려, 말라리아의 확산이 가지는 정치적 부담, 미육군이 특별히 말라리아 퇴치에 큰 관심을 가진 이유, 말라리아 전염경로를 밝힌 로널드 로스가 의사로서의 직업적 '한계'를 넘어서 말라리아 학자로서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선배과학자인 맨슨의 후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이유 등에 대한 다양한 요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말라리아에 대한 사회적으로 적절한 대응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수강생들은 이 사례를 무척 재미있게 들었고, 자연스럽게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기술학의 여러 이론들에 대한 소개나 분자유전학이나 한국천문학 등의 다른 사례 등도 흥미롭게 공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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