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이순신 … 상암사가 끌어당긴 인연의 흔적들
김홍도, 이순신 … 상암사가 끌어당긴 인연의 흔적들
  • 이근우 중원대·상생교양학부
  • 승인 2018.05.08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_ 상암사 터와 신도비를 둘러보고

2018년 戊戌年, 김홍도가 연풍현감에 제수된 지 227년이 되며, 상암사에 오른 지 226년이 된다. 김홍도는 어진도사의 공로로 1791년 12월 22일 충북 괴산군 연풍현감에 제수되었다. 연풍현감 부임이후 기근으로 고통 받는 면민을 위해 백두대간 공정산 해발 1천26m 8부 능선 상암사를 찾아 기우제를 지내며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청렴과 공정, 즉 忠恕思想으로서 백성을 위해 성심을 다했다. 특히 불상의 색이 흐려진 것을 改金해 환하게 드러내고, 眞影과 탱화가 부서지고 벗겨진 것을 비단에 물감을 먹여 그리고 칠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사찰사료』(1911년) ‘연풍군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에 전한다.

상암사 터.
상암사 터.

상암사는 신라나 고려 때 있었던 절로 추정되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상암사 터 입구로 부터 약 100m 전 커다란 바위에 큰 불심을 반영한 듯 大施主 宋文敎 이름이 크고 깊게 각자 돼 있다. 이 분은 상암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사료되며, 지난해 鎭川宋氏로 202년 만에 밝혀졌다. 

상암사 대시주 송문교 부인과 송문교 아버지 송낙휴의 딸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문교의 부인은 충무공 이순신 후손으로 진천송씨대동보에 “配德水李氏一七五四年英祖三十甲戌生一八一四年純祖十四甲戌七月十二日普祥祖贈吏□弘樸曾祖水使光震忠武公舜臣六世孫.”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忠武公諱舜臣派 德水李氏貞靖公派譜 上編에 “女 宋文敎  鎭川宋氏 父參奉樂休 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송문교의 부인은 충무공 이순신 후손인 普祥의 여섯 번째 딸이다. 

송문교의 부친 宋樂休(1732-1799)에 대해 살펴보면 진천송씨대동보에 ‘莊獻世子’ 및 ‘女宗室 恩彦君○○○○第二男子 湛常溪君’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사도세자는 부인 惠慶宮 洪氏 사이에서 정조를 낳고, 淑嬪 林氏 사이에서 은언군을 낳는다. 즉 恩彦君은 정조의 이복동생이며 恩彦君의 부인은 상암사 대시주 송문교 父 송낙휴의 딸이다. 은언군 이름은 '인'이며 10세에 은언군에 봉군되고 13세에 송낙휴의 딸과 혼인했다. 承政院日記, 英祖(43년) 1767년 7월 11일 “恩彦君夫人, 定於幼學宋樂休家, 婚禮, 一依定例擧行” 으로 기록돼 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소재 상암사 터와 대시주 송문교 각자
충북 괴산군 연풍면 소재 상암사 터와 대시주 송문교 각자.

은언군과 송씨부인에 관한 내용은 서울역사박물관 학술조사보고 제4책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Ⅲ」(2006년)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언군 신도비는 구파발에서 통일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진행하다 도로 좌측에 있은 흥창사 경내에 있다. 흥창사 경내에는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물이 없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신도비는 이 연못한가운데 있다. 

은언군의 생몰년은 1755년(영조31)-1801년(순조1)으로 父는 사도세자이며, 母는 淑嬪林氏이다. 1786년(정조10) 맏아들인 常溪君 李湛의 독살사건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함께 연류돼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1801년(순조1) 신유사옥 때 부인 宋氏(송마리아)와 상계군의 부인인 며느리 申氏(1769~1801, 신마리아)가 청나라 신부 周文謨로부터 영세를 받았다는 이유로 송씨와 함께 강화도에서 賜死됐다. 이후 1849년 손자인 德完君이 哲宗으로 즉위해 곧 작위가 복구됐다.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Ⅲ , 2005년.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Ⅲ, 2005년. 
은언군 신도비 위치 1439, 필자 정리.

철종의 父 全溪大院君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산11에 있다. 전계대원군 이광(1785~1841)은 조선 제25대 철종의 아버지이며, 은언군인(사도세자의 삼남)의 아들이다. 1779년(정조3) 아버지 은언군이 벽파로부터 홍국영과 역모를 꾀했다는 무고를 받고 강화도로 쫓겨나 그곳에서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 1849년 헌종이 승하하고 아들 원범이 철종으로 즉위한 후에 전계군에서 대원군으로 추봉됐다. 처음에는 양주군 신혈면 진관에 안장됐는데, 1856년(철종7)에 이곳으로 이장했다. 신도비는 상단에 전자(篆字)로 ‘大院君之碑’라 횡서하고, 비제를 ‘有明朝鮮國全溪大院君神道碑銘□序’라고 음각하였다. 말미에 ‘崇禎紀元後四辛亥 八月 日’이라고 기록돼 있어 1851년(철종2)에 건립됐음을 알 수 있다.

전계대원군 묘
전계대원군 묘.
전계대원군신도비각
전계대원군신도비각.


은언군의 묘는 6.25때 失傳 됐다고 한다. 그에 관한 신도비는 興昌寺사 경내에 있다. 신도비에는 사찰명과 開倉主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면은 원래 신도비의 후면으로 추정되며, 이전에는 아무 글씨도 새겨져 있지 않았던 면이라 한다. 현재의 후면, 즉 원래 신도비의 전면은 검은 콜타르(추정) 같은 것을 두껍게 발라 비문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콜타르가 벗겨진 곳에 몇 몇 글자들을 적어 본다. 

----□鮮國顯祿大夫恩彦君兼五衛都摠----昔我□先祖大王由旁----尊□本生親曰□□□興大院君曰----我□聖----大□□□妃----恩彦君諱□字明興完□李氏□□莊獻世----二----英宗大王之□□正宗大----也----大正----之工已----命----之□□懼不----英宗甲戌生六----四----同----三月而恩----巳----幼學----謫以來恭----曰吾近屬----定----坐外堂只讀小----終日□□一□敬天----饍必進----不求佳品----忠孝----第之----又□□于----友愛之至誠□至□□碎何以----辰九月----殿誕----申----人不忍聞也及辛酉五月三十一卒逝于謫舍享年四十有□葬于楊州津寬神穴面酉坐之原□常山郡夫人以□英宗癸酉----初四日卒葬----子坐之原□□五男一女長常溪君湛二男昌順三男昌德皆早卒四男豊溪君□五男□全溪大院----生三男長元□早卒----男□我□□上殿下也豈非----元顯□德永毓□□綿延□□□又在玆□□王受之起----增高□太母□簡萬姓攸同苟□具----崇禎紀元□四辛亥八月  日立.

위의 비문 내용은 필자가 유관으로 확인한 글자이므로 정확하지가 않다. 콜타르를 벗겨내야 정확한 비문내용 확인이 가능하겠다. 다만 ‘…□鮮國顯祿大夫恩彦君兼五衛都摠…’라 새겨진 글씨가 확인돼 은언군의 신도비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崇禎紀元□四辛亥(1851년, 철종2)’라는 명문도 확인돼 그 입석연도를 알 수 있다. 비신의 규모는 70×40×187cm 이다. 

흥창사 경내에 있는 은언군 신도비, 2018년 2월 19일.
흥창사 경내에 있는 은언군 신도비, 2018년 2월 19일.

어떤 연유에 의해 은언군 신도비 앞면에 콜타르로 추정되는 검은색이 칠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때문에 비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 속히 그 검은색 콜타르를 제거하여 원문내용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은언군의 묘비는 현재 절두산순교성지 聖 金大建 안드레아 동상 뒤쪽 聖 南鍾三 요한 像이 있는 곳에 옮겨져 있는데, 관석은 없고 비신과 비좌만 남아있다.

은언군과 송씨 묘비 앞면, 절두산순교성지 내, 2018년 2월 19일.

연풍현감 김홍도는 상암사를 찾아 기우제를 올리고, 상암사 대시주 송문교는 충무공 이순신 후손 보상의 사위이고, 송문교 父 송낙휴는 정조 이복동생 은언군의 丈人이다. 하지만 상암사는 6.25전쟁 때 소실돼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만 남아 있고, 상암사 대시주 송문교에 대한 자료조사도 미미하다. 상암사와 관련된 인연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片鱗의 흔적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하루속히 이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근우 중원대·상생교양학부
중국 남경예술학원에서 미술학 문학박사를 했다. 역서로 『중· 서회화 구도 비교연구』가 있으며 G20 서울정상회의 개최기념 월드아티스트페스티벌 집행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대만 의난현 예술학회 고문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