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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살궂고 눈물겨운 母情 가진 곤충
곰살궂고 눈물겨운 母情 가진 곤충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8.05.08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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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99. 집게벌레
집게벌레. 사진 출처=두산백과사전
집게벌레. 사진 출처=두산백과사전

올 들어 이른 봄에 밭두둑을 만드느라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여겨보니 전갈 닮은 벌레가 검부러기 사이에서 꼼작거리고 있었으니 엄동설한을 용케도 견뎌낸 집게벌레였다. 집게벌레는 남극지방만 빼고 온 세상에 12과 2천여 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민집게벌레, 꼬마집게벌레, 좀집게벌레 등 5과 21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게벌레는 2쌍의 날개가 있지만 날개가 턱없이 퇴화해 마치 반 날개처럼 가슴부에 흔적만 있고, 배를 덮지 않은 꼴이다. 앞날개는 짧은 것이 날개 맥(翅脈)이 없는 딱딱한 가죽질의 딱지날개로 얇은 뒷날개를 보호한다. 뒷날개는 보드라운 막질로 둥근 방사상시맥을 갖추고 있고, 앞날개 밑에 차곡차곡 접혀져 있다가 날 때 좍 펼친다. 그러나 날개가 하도 부실해서 거의 날지 못한다.

집게벌레는 무엇보다 꼬집는 집게 한 쌍을 배 끝에 지니는 것이 가장 특징이다. 집게(forceps)란 배 끝에 핀셋(pincette) 꼴을 한 부속지(尾角)를 이른다. 집게가 붙은 배(腹部)는 수축성이 있는 근육질이라 마음대로, 또 날쌔게 구부려서 미각을 가위처럼 오므렸다 폈다하게한다. 집게는 먹이를 잡고, 공격을 막으며, 상대를 꼬드기고, 짝짓기에 도움을 주며, 날개를 펴고 닫는 것을 돕는다. 사실 벌레공포증(혐오증) 탓에 좀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잡아보면 몸을 구부려 집게로 깨무는 것이 꽤 따끔 한다. 

그리고 집게벌레들은 위험하다 싶으면 집게를 전갈처럼 빳빳이 곧추세워 날뛸뿐더러 일부 종은 복부 제 3, 4번 째 마디 등 쪽에 있는 분비샘에서 고약(썩는)한 냄새 나는, 황갈색의 액체를 마치 스컹크처럼 뿜어내어 적을 물리친다. 그러나 다행히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 병을 옮기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

집게벌레를 서양말로 ‘ear wig’라 부르게 된 것은, 서양에서 이 곤충이 귀에 들어가 뇌를 파먹는다는 미신에 따라, 또 옛날에 사람들이 집게벌레의 집게로 귀지를 파는 데에 썼던 탓에, 또한 활짝 편 뒷날개가 귀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여러 설이 있다. 

여러 집게벌레 중에서 큰집게벌레(Labidura riparia japonica)는 집게벌레목, 큰집게벌레과에 속한다. 놈들은 몸에 반드르르한 윤기가 흐르는, 껍질이 딱딱한 곤충으로 집게는 굵고 큰 것이 끝자락이 검다. 몸은 적갈색이고, 딱지날개(겉날개) 양쪽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옅은 광택을 낸다. 보통  논밭가나 숲, 호수나 연못가에 살고, 가끔 집안 화장실이나 부엌 개수대(싱크대)에 나타나는 수도 있다. 본 종은 한국·일본·대만에만 서식한다. 

큰집게벌레는 몸길이 16~30mm이고, 배마디(腹節)는 10마디며, 실 같이 가는 더듬이는 10마디다. 암수의 미각(집게) 모양이 서로 다르다. 수컷집게가 훨씬 크면서 강하고, 많이 굽은데 비해 암컷 것은 작으면서 약하고, 쪽 곧으면서 끝만 살짝 고부라졌다. 
야행성으로 주로 쓰레기더미를 뒤져 죽은 동물이나 찌꺼기를 먹지만(scavenger) 곤충이나 부패중인 식물, 과일들도 먹는 잡식성이다. 특히 나비나방이(鱗翅類)의 유충이나 다른 곤충의 알을 즐긴다. 다른 말로 곤충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집게벌레가 있다는 말인데 잡아먹을 곤충이 없으면 제 새끼(애벌레)나 알도 먹어치운다. 그리고 곡식이나 과일의 꽃 따위를 먹어 해론벌레(害蟲)지만 곡식에 옥시글거리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이론벌레(益蟲)인 셈이다. 한편 지네·거미·개구리·도마뱀·새들의 먹잇감이다.

큰집게벌레는 다른 곤충들이 다 그렇듯이 어둡고 습한(陰濕) 곳에 사는데, 보통 암컷이 돌이나 죽은 통나무 밑을 파서 집(피신처)을 짓거나 나무껍질의 틈새에 숨어 살지만 땅강아지가 쓰다버린 굴속에다 알을 낳기도 한다. 또한 몸이 납작해 좁은 틈새도 잘 비집고 다니기에 알맞게 됐다. 

집게벌레의 애벌레는 4~5번 허물벗기(脫皮)를 하고, 번데기시기가 없는 불완전변태하기에 유충은 어미보다 작을 뿐 쏙 어미티를 낸다. 그러나 첫 탈피를 한 약충은 성충과는 달리 색이 연하고, 배 끝도 둥글둥글하며, 특징 중 하나인 집게도 없다. 그런데 완전변태하는 무리의 애벌레를 유충(幼蟲, larva)이라 하고, 집게벌레 따위의 불완전변태를 하는 것을 若蟲(nymphs)이라 구분해 부른다. 

짝짓기는 가을에 하고, 암수가 가을겨울을 같이 지내지만 알을 낳을 때면, 수컷은 알 주워 먹거나 훼방을 놓는 등 내키는 대로 행악질을 하는 통에 내쫓긴다. 그리고 집게벌레수놈생식기(음경)가 두 개로 그것을 교대로 사용하는데 90%가 오른쪽 것을 더 자주 쓴다. 

그런데 암놈 몸속 난자, 정자는 다음 해 봄이 돼서야 수정한다. 이윽고 암컷이 1mm 크기의 진주색 알을 60~100개를 낳아 암탉이 알을 품듯 얼싸안고 1주일간 알이 까일 때까지 곰팡이(fungi)따위를 일일이 닦아주면서(26종의 기생곰팡이가 발견 됨)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집게벌레는 곤충에서 보기 드물게 모성애가 강해서 알과 새끼가 어미보살핌(maternal care)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2번째 탈피직전까지 어미가 먹이를 토해 먹이면서 건사하는데 만일 그동안에 어미가 죽으면 가시고기가 그렇듯 어미를 뜯어먹고 자란다. 아무튼 이 미물곤충집게벌레도 본능이라 하기엔 걸맞지 않게 곰살궂고 눈물겨운 모정이 있었더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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