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7 02:35 (수)
식물의 일생 한눈에…“모든 가정에 꽂혀 있어야 할 필독서”
식물의 일생 한눈에…“모든 가정에 꽂혀 있어야 할 필독서”
  • 이해나
  • 승인 2018.04.30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인터뷰_ 34년간 연구한 ‘약과 먹거리’ 식물 한데 모은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누군가 34년에 걸쳐 4천732일간 산으로 들로 누비며 연구한 내용을 700쪽에 담았다면, 긴 것일까 짧은 것일까? 강병화(71세·사진) 고려대 명예교수(환경생태공학부)가 쓴 『약과 먹거리 식물도감』(한국학술정보, 2018.2) 이야기다. 추억 속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비슷한 크기와 익숙한 무게의 이 책은 옛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처럼 모든 집의 서가에 꽂혀 있어야할 책임에 틀림없다. 정년퇴임 후 오히려 더 왕성하게 활동 중인 강 명예교수를 안암동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약과 먹거리 식물도감』은 강 명예교수가 평생 연구하고 수집한 내용의 소위 ‘엑기스’다. 34년간 그는 현장과 문헌에서 조사한 식물 3천360종 가운데 2천270종이 약으로 쓰이고, 1천647종이 먹거리로 쓰이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 중에서도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산야초와 문헌상 약으로 쓰인다고 알려진 풀과 나무 613종을 추려 담은 것이 『약과 먹거리 식물도감』이다.

강 명예교수는 “나무와 달리 풀은 흙의 상태, 핀 장소, 계절, 시기, 영양과 수분 상태 등 환경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라 아무리 전문가라도 同定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가 『약과 먹거리 식물도감』에 생육 시기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식물별 평균 10장씩 총 5천842장의 사진을 수록한 이유다.

책을 펼치면 종자부터 시작해 식물의 연대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생육 과정이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생생히 펼쳐지고, 과명·학명·북한명·지방명·영어명·중국명 등 다채로운 명칭 또한 빠짐없이 나열돼 있다. 식물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형태와 용도(식용·약용)도 병기했다. 약용으로 쓰일 경우를 위해 증상과 효과도 부록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산나물과 들나물의 통상적인 조리법까지 쓰여 있다. 도감이자 어학사전이고, 의학서이며 요리책인 셈이다. 쉽고 빠른 검색에 최적화된 포털사이트에서도 이렇게 구조화된 정보를 습득하기란 쉽지 않다.

흔히 약용과 식용으로 쓰이는 식물은 노년층의 관심사로만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강 명예교수는 “아직 어린 손녀가 앵초를 특히 좋아하는데, 이 책을 엄청나게 집중해서 보더라”며 “책을 보며 다른 식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약과 먹거리 식물도감』은 모든 집의 서가마다 꽂혀있어야 한다”는 강 명예교수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강 명예교수는 1965년 고려대 농학과에 진학해 대학원에서 작물재배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부임해 재배환경, 잡초방제, 야생식물, 자원식물 등을 강의했다. 그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전공 학생까지 자원식물에 관해 잘 모르는 점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물의 형태나 용어는 책마다 제각각이었다. 식물의 생육 시기별 사진이 갖춰진 도감의 필요성을 절감한 강 명예교수는 직접 자료 수집에 나섰다. 그는 일흔이 넘은 지금도 전국을 누비며 야외조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 11년간 탄 차의 주행거리는 21만km에 이른다.

34년간 야외조사 결과 찍은 사진만 50만장, 모은 종자만 7천점에 이른다. 정년퇴임 후 강 명예교수는 평생 모아온 종자를 고려대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에 기증했다. 그는 “50만장의 자료 사진을 생육 시기별로 정리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무이할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도 강 명예교수는 매일 새벽 세시 반이면 일어나 연구실로 출근한다. 아직 남은 필생의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사 시공미디어와 손잡고 『한국자원식물총람』을 준비 중이다. 평생 찍어온 50만장의 사진을 토대로 한국 자원 식물을 총망라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이다. “2004년쯤에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주치의한테 혼도 많이 났죠. 그때 염라대왕한테 빌었어요.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내가 평생 모은 자료를 정리 못 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 말이에요. 다시 살아났으니 끝마쳐야죠.”

강 명예교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얼마나 좋으냐며 주변에서 다들 나를 부러워한다”며 “매일 연구실로 출근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노라면 정년퇴임했다는 실감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소망을 물었다. “식물에 흥미가 생기면 자연히 환경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어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식물에 흥미를 갖게 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존하자는 마음이 싹텄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드는 책을 만드는 게 내 사명 같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