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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실망
기대와 실망
  • 정지혜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4.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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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정지혜 편집기획위원/건국대·신경생물학

중간고사 기간이다. 학교에 있다 보니 학사 일정이 계절이 된다. 새순이 돋는 봄 학기 개강, 봄꽃이 만발하는 중간고사 기간, 더위가 시작되는 축제철, 캠퍼스에 녹음이 가득해지면 다시 종강. 캠퍼스가 한산한 걸 보니 시험 기간이라 학생들은 다들 도서관이나 카페에 있는 모양이다. 칼럼이 나갈 때쯤에는 채점이 끝난 중간고사 결과에 따라 학생도 교강사들도 만족감을 느끼며 흡족해하거나 실망해 의기소침해질지도 모르겠다.

흡족함을 느낄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뇌의 보상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부위들은 활성화되면 온 뇌 구석구석으로 도파민을 분비하여 만족감이나 보상감을 느끼게 한다. 보상 중추는 그 원인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동기 부여 영역이기도 하고,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도전을 장려하는, 그래서 도박이나 게임 등 중독과 관련된 영역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혹은 나쁜 결과를 예상할 때 뇌의 보상 중추 활성은 억제되고 도파민의 분비는 제한된다. 이때, 그러니까 도파민의 분비가 제한되기 직전에, 측유상핵 혹은 외측고삐핵이라고 불리는 시상상부 내 아주 작은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그래서 보상 중추의 활성을 막는다는 연구가 몇 년 전 발표됐다. 측유상핵이라는 작은 뇌부위는 말하자면 실망했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인 것이다. 우리 연구진은 그래서 측유상핵을 실망 중추라고 부른다. 짐작건대 실망 중추의 활성은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증가하고 감소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연구해보니 이 실망 중추의 활성은 그 자체로 증가할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증가시키는 것은 꽤 어려웠다. 웬만해서는 실망 중추의 활성이 이전보다 강화되기가 쉽지는 않다는 얘기다. 반면에 실망 중추의 활성을 낮추기는 상당히 쉬웠다. 어지간한 패턴의 자극을 주면 실망 중추의 활성은 쉽게 낮아지고 (그래서 아마 행복해지고) 또 그 상태로 오래 유지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뇌는 일단 웬만해서는 실망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임상적 의미의 우울함에 빠지지 않도록 진화적으로 보호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우울증에 걸린 경우에는 실망 중추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어쩌면 항상 만성적으로 실망해 있는 상태, 기대하고 예상했던 보상이 내내 오지 않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우울한 실망 중추는 평상시와는 반대로 더 쉽게 활성이 증가하는 대신 아무리 애를 써도 낮아지지는 않았다. 일단 우울해진 실망 중추는 웬만한 자극에는 행복해지지 않도록, 그 활성 조절의 원리마저도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실망 중추가 하는 일은 바꿔 말하자면 예상한 보상과 실제로 받은 보상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작은 보상을 받으면 보상 중추의 활성이 감소하고, 예상했던 만큼의 보상이 와도 보상 중추의 활성은 변하지 않는다. 오직 예상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때 보상 중추는 활성화된다. 말하자면 뇌가 처리하는 보상의 가치는 기대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실망 중추는 경우의 수 중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쁜 결과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셈이다. 그래서 실망 중추는 더욱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독려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보상은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오지만, 공부나 학문의 경우는 노력과 보상 사이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연구자로 지낸 시간이 짧지 않은데도 즉각적인 보상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때 나는 여전히 실망한다. 어떤 보상은 시간과 축적된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학생들도 당장 성적이 혹시 예상보다 나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않기를. 시간을 두고 축적된 노력이 또 다른 보상으로 올 수도 있으니.

 

정지혜 편집기획위원/건국대·신경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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