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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례, 원시문화, 깨진 가부장제 신화 … 어떤 책이 선택받을까
궁중의례, 원시문화, 깨진 가부장제 신화 … 어떤 책이 선택받을까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4.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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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들은 어떤 책 내놓을까?(2)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활발하게 출판활동을 벌이고 있는 18곳의 출판사로부터 출간 예정 도서 목록을 받았다. 각 출판사가 집중하는 분야가 다르기에 회신 목록으로부터 하나의 공통점을 도출해낼 수는 없었지만, 철학, 문학, 사회과학 등 각자의 고유한 분야에서 그들만의 색깔로 꾸준히 깊이를 더해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호 갈무리부터 서광사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소명출판부터 현실문화연구까지의 출간예정도서를 살펴본다.

동아시아인문학 분야의 저력 있는 출판사인 소명출판의 예정 도서 목록은 올해 역시 역동적이다. 지역적으로는 일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을 넘나들고 시기적으로도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각 시기별 미처 다루지 않았던 주제에 미시적 시각으로 천착한 도서들이 망라해 있다. 상반기 예정 목록만으로도 30여 권에 이른다. 그 중 『궁중의례미술 속의 십이장 도서』(김주연 저),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서동수 저),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방정환연구소 편저), 『지평선-김시종 첫시집』(김시종 저),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야마무로 신이치 저), 『베트남사상사』(베트남 사회과학원 철학원 편저), 『당률신탐』(왕리민 저)이 곧 선보인다. 그 중 재일디아스포라 1세대이자 대표시인 김시종의 첫시집 『지평선』과, 북한의 풍부하게 발달한 SF문학을 탐구 망라한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 베트남 사회과학원에서 발간한 베트남사상사의 결정판 『베트남사상사』, 사상사 연구에 ‘사상연쇄’라는 시각을 설정한 다음, 구미-아시아의 연계 속에서 일본을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근대 세계’의 역사적 위상을 밝혀낸 문제작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는 주목할 만하다. 

윤리학부터 과학기술학까지. 즐거운 고민

아카넷은 5월에는 『군신의 다양한 얼굴: 제1차 세계대전과 영국』(이내주 저), 『다원주의자의 우주』(윌리엄 제임스 저, 김혜련 역)을, 6월에는 『윤리학 원리』(조지 에드워드 무어 저, 김상득 역)을, 8월에는 『과학기술학 편람 1~5권』(에드워드 해케트 외 저, 김명진 역)을, 9월에는 『윤리학의 방법』(헨리 시지윅 저, 강준호 역)과 『파이데이아-그리스적 인간의 조형』(베르너 예거 저, 김진식 역)을, 10월에는 『원시문화 1, 2』(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저, 유기쁨 역)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중 6월에 출간되는 『윤리학 원리』는 윤리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에게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로 윤리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둘째는 분석적인 태도로 연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연구자는 자신이 탐구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명료화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하는데 저자는 바로 이런 의식으로 윤리학의 탐구주제를 찾고, 탐구 대상의 외연을 명료하게 해명하며, 분석적인 태도로 ‘철학하기’를 알려준다. 8월 출간예정인 『과학기술학 편람 1~5』는 다양한 과학 활동 영역 혹은 과학 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STS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5년 초판본과 비교해 볼 때, 새로 출간된 이 책의 특징은 상당히 많은 분량이 과학기술의 정치, 민주주의, 전문성, 윤리, 시민참여 등과 같은 실천적 주제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10월 출간예정인 『원시문화 1, 2』는 문화의 정의, 문화 연구의 방법, 문뫄의 유형과 발달 법칙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제시한 인류학의 고전이다. 타일러는 이 책에서 폭넓은 민족지적 의미에서의 문화 혹은 문명이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및 사회 구성원인 인간이 획득한 다른 모든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라고 정의한 뒤, 인간 문화의 유형과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 진화, 언어학, 신화를 포함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비교 분석했다.

열화당에서는 올 하반기 한국공연예술원이 엮은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 3, 4권인 『궁중의례』, 『전통과 응용』을 발간한다. 『궁중의례』는 『국조오례의』 등의 문헌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서 궁중의례와 연계된 궁중잔치가 어떻게 치러졌는지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전통과 응용』에서는 민족의 정체서이 싹튼 전통문화의 역사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으며, 영화, 연극, 오페라, 무용 등의 각종 공연예술 양식에 융합돼 새롭게 재창조돼 가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이어 우리나라 근대소설의 대표작가인 이태준의 『상허 이태준 전집』(전15권) 중 1차분으로 2~3종을 오는 겨울 출간할 예정이다. 이미 근원 김용준 전집, 우현 고유섭 전집을 발간했던 열화당은 상허의 생질인 김명렬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상허의 장편 및 중단편 소설, 희곡, 수필, 시를 비롯해 새로 발굴한 평문과 일문 등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작품을 망라하고,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생소한 어휘와 내용은 풀이와 주를 달아 현 세대가 읽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학사에서는 5월에 『메타정치론』(알랭 바디우 저, 김병욱, 박성훈, 박영진 역)을 발간한다. 정치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시도하는 이 책에서 바디우는 정치는 사유가 아니며,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일은 철학자의 소관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철학에 반대한다. 7월에 출간되는 『인류학을 넘어』(버나드 맥그레인 저, 안경주 역)는 인류의 고고학을 밝히려고 시도하는 책으로,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20세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들에 나타나는 서구의 자기 이해를 탐구하고자 한다. 9월에 발간되는 『도덕철학사 강의』(존 롤즈 저, 김은희 역)에서 롤즈 하버드대 교수는 30년 동안 도덕·정치철학을 가르치면서 수정·보완해온 강의록 중 마지막 강의록을 출간한 책으로,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도덕적 난제를 다루는 시도들을 위대한 철학 저작들에서 추적한다. 

생물언어학, 언어학의 새로운 지평 열까

푸른길 출판사에서는 4월에 『조선시대 이상기후』(김오진 저), 5월에 『와인의 지리학』(브라이언 소머스 저, 김상빈 역), 6월에 『국가 경계 질서』(가브리엘 포페스쿠 저, 이영민 외 역), 『기후와 식량』(몰리 E. 브라운 저, 이승호 외 역), 『지리수업과 학습자』(강창숙 저)를 출간한다. 『국가 경계 질서』에서는 경계가 국가를 구성하는 그저 단순한 구성요소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수많은 사회적 과정 및 제도와 관련해 발전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적 범주로서 간주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이 책에서는 인문지리학, 국제관계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정체경제학, 안보학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문적 통찰에 기대어 다양한 분석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기후와 식량』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생산 변동성이 농부들의 소득 불확실성의 주요 원인이며, 식량가격이 높거나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각 가구에서는 하루 세 끼의 충분한 식량을 얻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 등 기후나 날씨와 관련된 식량생산 변동성과 식량가격, 식량보장 간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역사 대중화’의 선두주자 도서출판 푸른역사는 『미속습유』(박정양 저), 『만주, 한반도 그리고 러시아』(김용구 저),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최혜영 저),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후나야마 도루 저), 『조선 무인의 초상』(유진박 저)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미속습유』는 조선 왕조의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발로 확인한’ 조선 최초의 미국 견문기다. 『만주, 한반도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19세기 조선을 둘러싼 열강 중 주요 행위자였음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러시아의 독특한 행위자 역할을 규명한다.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그리스 문화의 핵심 가치를 잘 드러내는 분야이자 문학적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결정체로서 ‘그리스 문학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시각과 맥락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는 불전佛典이 어떻게 한문으로 번역됐는지를 탐색한 책으로 성경의 번역보다 방대한 규모로 이뤄지고 한자문화권에서 불교를 탄생시킨 漢譯이라는 지적 영위의 세계를 고찰한다. 『조선 무인의 초상』에서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무과제도가 차지했던 위상을 살피고 무과제도를 통해 등용된 조선 무인의 실상을 섬세하게 살핀다.

교육학과 심리학 분야 전문 출판사인 학지사에서는 『통합영성』(Ken Wilber 저, 김명권 오세준 공역), 『응용 인지심리학』(박창호 외 저), 『학교에서 긍정적 행동지원 시스템 만들기』(Deanne A. Crone, Leanne S. Hawken, Robert H. Horner 저, 최진혁 역), 『한국지방교육자치론』(나민주 외 저)를 출간할 계획이다. 『통합영성』은 통합사상 분야의 최고 석학인 저자가 혼돈의 전근대, 분열의 근대, 방치의 탈근대 너머 ‘통합의 시대’가 있을 것이라 믿고, 거기에 도달하는 배로 종교적 통찰을 이야기한다. 『응용 인지심리학』은 산업 장면에서 인간요인, 산업디자인, 광고와 마케팅, 선거와 투표, 수사와 법정 문제, 학습과 교수, 임상 집단의 행동 분석 등 다양한 부야에 응용돼 온 인지심리학에 대해 여러 저자가 그동안 다뤄 온 응용 연구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한울엠플러스(한울, 한울아카데미)는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사』(손열 외 저), 『은유로 사회읽기』(Daniel Rigney 저, 박형신 역), 『사회과학자가 보는 4차 산업혁명』(조화순 외 저), 『다큐멘터리와 사실의 재현성』(최현주 저), 『중소도시 보통 여성들의 무배우로 살아가기 프로젝트』(김미숙 저), 『여성의 자아- 관계​속 자아』(Judith V. Jordan 외 저, 이주연, 홍상희 역), 『인간, 장소, 지명』(주성재 저), 『동아시아의 ‘근대’ 체감』(박경석 외 저), 『왜 우리들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노엄 촘스키 외 저, 김형엽 역), 『역학의 이론과 맥락』(Nancy Krieger 외 저, 신영전 외 역), 『실험실 생활-과학적 사실의 구성』(Bruno Latour 저, 이상원 역)을 출간한다. 『왜 우리들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는 인간 중심으로 언어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핵심이 되는 저서로 특히 생물학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진화의 개념을 중심으로 언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최근 발전하고 있는 생물언어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실험실 생활-과학적 사실의 구성』은 실험실 과학을 의도적으로 회의적 방식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문헌 비평 내의 최근 연구에 의존하면서 실험실이라는 사회적 세계가 어떻게 논문과 여타의 ‘텍스트’를 산출시키는지를 연구한다. 저자가 소크 연구소에 있는 로제 기유맹의 실험실에서 행한 현장 연구에 기초해 있으며 현대 과학에 관한 사회학과 과학사 내 실험실 연구사이에서 중요한 고리를 제공해준다.

현실문화연구는 5월부터 12월까지 『푸코의 미학』(다케다 히로나리 저, 김상운 역), 『루저 아들』(아비탈 로넬 저, 염인수 역), 『네 겹의 객체』(그레이엄 하먼 저, 주대중 역), 『몰입과 연극성』(마이클 프리드 저, 이홍관 역), 『하이퍼 오브젝트』(티모시 머튼 저, 김지연 역)을 발간할 계획이다. 자크 데리다의 제자인 아비탈 로넬은 『루저 아들』에서 패배한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로넬은 권위, 가부장적 환상, 어린 시절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통째로 거스른다. 프란츠 카프카와 『파우스트』, 벤저민 프랭클린과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한나 아렌트, 알렉상드르 코제브, 임마누엘 칸트를 독보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사유를 엮어내는 로넬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수작이다. 『몰입과 연극성』은 모더니즘 비평의 기수 마이클 프리드의 핵심적인 저작이다. 미술작품이 그 자체의 내재성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예술성을 드러내는 경향을 ‘연극성’이라고 지칭하며 배격하는 프리드는 그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몰입(열중)’을 제시한다. 18세기 회화와 1945년 이후 미국 회화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비평은 ‘관계미학’과 관객의 참여·소통이 미술의 주된 언어가 된 지금, 미학을 새롭게 사유하는 틀을 제공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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