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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에는 우리가 있다 … 교양에서 문고본 총서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 
‘마로니에’에는 우리가 있다 … 교양에서 문고본 총서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8.04.30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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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가다_ ①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다들 출판이 어렵다고 말한다. 출판산업 사양론도 제법 들려온다. 대학출판부라고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래도 대학출판부는 출판문화에서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일반 출판사들이 수익성을 먼저 따져 손대지 못하는 영역에서 ‘좋은 결과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문 학술의 세계에서 형성된 지식을 좀더 유연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가능한 곳이다. <교수신문>은 (사)한국대학출판협회 회원교 가운데 활력 있게 출판문화를 가꿔나가는 대학출판부를 찾아, 각 출판부의 특성, 성과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보는 기획 연재 ‘지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가다’를 격주로 선보인다. 첫 회에서는 (사)한국대학출판협회 이사장교를 맡고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을 찾았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편 길(서울시 종로구 이화장길)을 따라 걷다가 서울의대 국제관 맞은편 동숭동교회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원(원장 장종수, 이하 방송대출판문화원)을 만날 수 있다. 독립법인답게 방송대출판문화원은 7층짜리 독립 건물에 위치해 있다. 24명의 직원들이 연간 150여종, 120만부를 출판하고 있다. 현재 방송대출판문화원은 (사)한국대학출판협회 이사장교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만들어준 명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명패에는 “(사)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나눔을 실천합니다”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1948년 문을 연 구호기관으로, 1950년 한국전쟁 고아 구호사업에 집중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아동복지사업, 애드보커시, 모금사업, 연구조사 등을 폭넓게 실시하고 있는 글로벌 아동복지전문기관이다. 방송대출판문화원은 2004년 5월 교양도서 브랜드 ‘지식의날개’를 시작하면서 판매수익의 1%를 기부하는 것으로 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당시 출판부장이었던 백삼균 교수(경영학과)가 제안했다. 이들이 ‘출판’을 통해 사회적 실천을 깊이 일궈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방송대출판문화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 상반기 직원연수 중. 앞줄 가운데 선글라스 쓴 이가 장종수 원장, 앞줄 오른쪽 끝이 김정규 팀장이다. 사진제공=방송대출판문화원
방송대출판문화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8년 상반기 직원연수 중. 앞줄 가운데 선글라스 쓴 이가 장종수 원장, 앞줄 오른쪽 끝이 김정규 팀장이다. 사진제공=방송대출판문화원

2013년 ‘출판문화원’으로 확대 개편 … 연간 150여종 출간

방송대출판문화원은 1982년 7월 여느 대학출판부처럼 작은 걸음을 시작했다. 초대 출판부장은 박인근 교수였다. 이후 1992년에 법인화, 2013년에는 조직을 개편해 출판부에서 출판문화원으로 확대했다. 이 사이 교재 출판을 근간으로 하면서 교양도서 브랜드  ‘지식의날개’(2004), 학술도서 브랜드 ‘에피스테메’(2006), 교양문고 ‘아로리 총서’(2008)를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김정규 팀장은 “원래 2003년 비전을 설정하면서 대학교재 부문과 함께 세 가지 방향으로 단행본 브랜드를 계획했다. 교양(지식의날개), 학술(에피스테메), 아동 부문의 세 가지인데, 아직 어린이 부문은 론칭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대학출판부 변신의 역사 축소판이랄 수 있다. 

7층짜리 빌딩 전체가 방송대출판문화원 법인 건물로 돼 있어서, 밖에서 보면 ‘돈 많은 거 아니냐’ 하는 시선도 있지만, 여력이 생길 때마다 대학발전기금 기부, 학생 장학금 지원, 콘텐츠 개발, 전자책과 같은 미래 사업 등에 대부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방송대출판문화원은 이 건물 두 개층(4, 5층)을 사용한다. 나머지 층은 수입원 다각화 정책에 입각해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대출판문화원의 힘은 이 외형적인 ‘빌딩’에 있지 않다. 연간 150여종을 기획 출간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편집기획자 부분이 강세다. 전체 24명 가운데 11명이 출판기획자일 정도다. 일반 사무행정직원이 아니라, 아예 출판종사 경험을 지닌 ‘경력자’가 핵심에 서있다. 이들이 대학교재 브랜드 KNOUPRESS, 교양서 브랜드 ‘지식의 날개’와 학술서 브랜드 ‘에피스테메’를 이끌고 있다. 대개 편집자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어서, 담당자들이 기획에서 편집까지 출판 최전선을 누빌 수 있게 한 시스템이 돋보인다. 역시 주력 부문은 ‘교육’ 부문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知의 경계를 확대할 수 있게 안내한다는 자부심이 이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된다. 『배움의 조건』, 『대학의 미래』,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교수는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등의 손꼽히는 저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게 있다. 기획공모전을 통해 우수 국내 저작물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방송대출판문화원의 역량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는 10월 마감되는 ‘제4회 방송대 출판문화원 도서원고 공모’전은 최우수상에 상금 1천만원(총상금 규모는 2천500만원)을 지급한다. “오늘날 시간에 종속되고 급기야 인간이 소외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책은 현대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 역사, 사회적 맥락을 짚은 동시에 여러 철학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탐구했다”라는 심사평을 받은 『시간적 인간』(제1회)이 기획공모의 첫 수확이었다.

기획공모전의 힘 … 우수 교양서 발굴에 주력

당시 공모전을 진행해 결과물을 출간해낸 이근호 출판기획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시간적 인간』은 많은 에너지를 쏟은 책이 분명합니다. 유력 일간지에 한 면 분량으로 서평이 크게 실렸고, 책이 지닌 문제의식, 시의성이 시사적이어 내심 기대도 많이 했었죠. 하지만 독서시장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들인 공력에 비해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할 수 있는 교양도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홍보’ 업무까지 떠맡고 있는 이근호 출판기획자는 일반 출판사에서 5년 경력을 쌓고 방송대에서 만4년을 채워가고 있다. 의욕도 넘친다. 그는 방송대출판문화의 ‘기획공모전’이 좀더 강화됐으면 한다. 그런 그에게 아쉬움을 묻자 “기획공모전 예산이 많이 줄었어요. 그러다보니 좋은 원고를 찾는 홍보도 제한받고요. 상금규모만도 절반가량 줄었거든요.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은 기획자만의 일이 아님을 구성원이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로 출판경력 15년차가 되는 박혜원 출판기획자도 ‘불만’보다 ‘보람’이 더 많다고 한다. 방송대에서 11년을 온축한 그는 대학출판부만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학의 미래』(원제는 The End of College)는 다른 출판사들에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책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열린교육, 온라인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이 책을 만났을 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관계자들이 함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매달렸는데, 출간 이후 많은 곳에서 인용되고, 반응도 꾸준해 보람을 느낍니다. 상업 출판사가 아닌 대학출판부만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발견한 책이죠.”

그런 박혜원 출판기획자에겐 좀더 흥미로운 체험이 있었다. 출판 편집기획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잘 만든 책이 더 많은 독자의 손에서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어느날 그에게 그런 소망이 현실로 다가왔다. 2009년 출간한 번역서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였다. 인디애나주립대 교육학과 교수인 토드 휘태커의 책이었다. 출판계약을 마친 뒤 어느 교사가 이미 책을 번역해서 스터디클럽 같은 곳에서 원고를 돌려보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인터넷상에서 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용기를 내 그 번역자에게 연락했다. 원저작권 출판 계약 내용을 알리고 문제의 번역 텍스트 공유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번역 당사자를 찾았더니 그가 교사들 사이에서 ‘교사들의 교사’로 불릴 정도로 교육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송형호 교사였다. 박혜원씨는 그에게 공식 번역자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도 송 교사는 이 책을 신입교사연수 자리에서 강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첫해 1만부 가까이 판매된 이 책은 저자가 개정판을 냄에 따라 2015년 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돼 누적판매 3만부 고지를 넘었다. 역시 출판기획자가 ‘교육’에 우선적인 관심을 둔 게 결정적이었다.

직원이 전무이사 맡는 도쿄대출판부의 시사점

과거 대학출판부가 앞다퉈 ‘문고본’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시내 대형 서점마다 어김없이 대학출판부 코너를 비치했고, 그 중심에 이들이 출판한 ‘문고본’이 서 있었다. 이제 이런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국 출판문화사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방송대출판문화원은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2008년 ‘아로리 총서’를 기획하면서 문고판 교양서 발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등 22권을 내놨다. 200자 원고지 500매 분량으로 역사문화, 철학, 교육, 정치경제, 문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知의 경계로 가는 길을, 특히 학생들에게 제시하겠다는 기획이다. 박혜원 출판기획자는 “아로리총서 간행한지 10년째다. 이제는 이 총서를 보고 원고를 들고 찾아오는 교수들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교양의 차원에서 지식의 더 깊은 길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문고로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기대한다. 

독립법인에, 120억원을 웃도는 연매출을 기록하는, 그래서 수익 상당 부분을 대학발전기금으로 내놓고 있는 방송대출판문화원. 이들 구성원들에게 미래를 물었다. 조심스럽게 돌아온 대답은 지배구조의 문제. 일본 도쿄대출판부처럼 출판전문가가 출판에 관한 결정권을 갖는 시스템으로 전환해갔으면 좋겠다는 것. 도쿄대의 경우 대학출판부 직원이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출판부 조직의 안정성, 정책 일관성 등에서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는 의사결정구조다. 

방송대출판문화원은 올해 서울과 지방 대도시에 있는 지역대학 건물을 활용해 두 곳 정도에서 ‘북카페’를 시작할 예정이다. 책과 독자, 지식에 목마른 학생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좀더 젊은 공간을 모색하고 있다. 연륜 깊은 대학로에 자리 잡은 한국방송대출판문화원이 지혜와 시간의 균형 위에서 학술교양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내길 기대해본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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