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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나타나야 할 반듯한 우리 말글
헌법에 나타나야 할 반듯한 우리 말글
  •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국어교육과)
  • 승인 2018.04.30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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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육자가 본 대통령 개헌안 全文  

나는 최근에 공개된 개헌안 全文을, 아무런 정치적인 고려도 없이 국어교육자의 입장에서, 읽어 보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헌안이란, 대통령이 최근에 제출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말한다. 우리의 말글을 사랑하면서 또 이를 가르치고 있는 나로선 그 전문에서 무언가 미흡함이 전해 느껴오고 있음을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우리 말글의 반듯함과 자존심이 흠씬 묻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누구나 가장 알기 쉽게 읽기 위해선, 그것은 가장 평이하게 쓰여야 한다. 

우선 기본 용어가 문제를 지닌다. 헌법을 말할 때 전문(前文)은 전문(全文)과 늘 충돌을 일으킨다. 앞의 전문은 머리글, 첫머리의 글, 들머리의 글 등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總綱은 또 뭔가? 생활 현장에서 멀어진 외계의 언어 같다.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방대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낱말이다. 이 오래되고 거슬리는 말을 두고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 만든 말 모둠벼리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보다 중심 내용이나 주된 부분이라고 바꾸면, 뜻밖에도 문제가 쉬 해결된다.

생활 현장에서 멀어진 헌법 언어

헌법을 나타낸 글은 반듯하고 이치에 맞고 흠결이 없어야 한다. 가장 먼저 되살펴 보아야 할 문장은 제3조 ①에 관해서다. 이 문장은 매우 익숙하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附屬島嶼)로 한다.’ 우리 국토에 관한 헌법적 규정이다. 너무 당연한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문장 표현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틈입할 여지가 없었다. 이 표현은 제헌헌법에서부터 지금까지 70년 동안에 걸쳐 사용돼 왔다. 부속도서를 정확히 아는 국민은 몇 퍼센트나 될까? 무비판적인 관행의 오류랄까? 부속은 딸려 있음을 뜻하는 말이며, 도서는 큰 섬과 작은 섬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속도서라는 말은 우리에게 헌법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열도이기 때문에 네 개의 큰 섬마다 많은 작은 섬들이 딸려 있다. 비교적 작은 오키나와만 해도 무수한 부속도서로 이뤄져 있다. 일본적인 표현 관습이라는 의구심이 매우 짙은 용어를, 우리가 굳이 써야만 하나? 다음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이에 딸린 크고 작은 섬들로 정한다.

이번의 개헌안 중에서 단연 핵심적인 사안은 제74조이다. 이렇게 쓰여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만 한 번 중임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사안의 중대성이 내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문장 구조의 不具性을 지니고 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 불완전한 문장, 즉 반편 같은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문장은 의미와 논리의 완결성을 지향해야 한다. 내가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대통령으로서 잇달아 뽑힌 이는 다시 한 번 그 職을 맡을 수 있다. 문장이 완결성을 지니려면, 주어인 ‘이는’과 목적어인 ‘직을’을 동시에 꼭 드러내야 한다.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

내가 이 제40조 ①을 읽을 때, 나 같은 언어의 전문가도 문맥을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몇 차례 되풀이해 읽어보니 겨우 말귀를 알아들었다. 쉽고도 적확한 문장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꼬여든 실타래 같은 말이 되고 말았던 거다. 내가 수정해본 글틀이다.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일일이 (혹은 하나하나) 열거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준수하는 것과 지키는 것의 차이

대통령 개헌안의 전문을 보니, 표현의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국군은 준수해야 하고, 공무원은 지켜야 한다? 준수하는 것과 지키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草案 작성의 실무자에게 묻고 싶다. 개헌안 전문에는 서로 같거나 비슷한 낱말인 ‘국민’과 ‘사람’이 함께 혼용돼 있다. 헌법에 있어서의 사람 개념의 새로운 도입.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생각의 기틀도 이처럼 한 단계 성숙했음을 반영한 것일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배타적인 명분에만 사로잡혀 넓게 사람 귀한 줄 모른다면, 그 국가는 종당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 국민만이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 살림에 보탬이 되는 다문화적인 이방인들도 적잖이 있다. 높은 차원의 ‘사람됨의 뜻’이라는 보편적인 인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가 사람이며, 또 어떤 경우가 국민인가를 잘 나누어야 한다. 

헌법의 전문(全文)에 전문(前文)이란 게 무척 중요한데, 새로 신설된 내용 중에는 이런 게 있다.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굳이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싶다. 한자어의 남용은 질식감을 느끼게 한다.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살이의 향상과 지역 간의 발전을 (골)고루 꾀하고…’처럼 말이다. 균등과 균형을 ‘(골)고루’라는 고유어에다 한껍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경제적이기도 하다. 

대조나 대구의 표현에 있어서 짝이 잘 맞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 한 예를 든다면 제128조이다. 여기에 두 차례에 걸쳐 ‘…필요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제한과 의무는 짝이 맞지만, ‘하다’와 ‘부과하다’는 뭔가 서로 어긋나 있다. 문장이 논리적이어야 한다면, ‘…필요하면 제한을 두거나 의무를 부과한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좀 사소한 얘깃거리지만 내친 김에 할 말이 또 남아있다. 개헌안 전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어구는 ‘법률로 정하다’ 유의 표현이다. 법률로 정하는 것인지, 법률이 정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법학자들과 국어학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할 필요가 있다. ‘권리를 가진다’와 ‘의무를 진다’라는 영어식의 표현에 관해서도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영어식 표현에 대한 발상의 전환 필요

다음의 문장들을 함께 읽어보자.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회의원은 청렴해야 할 의무를 진다. 국회의원은 청렴해야 한다. 각자의 판단에 맡겨둔다. 

지금의 헌법 정신이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국가라는 낱말에서 ‘나라’로 대체하는 것도 하나의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헌법의 머리글에 우리 말글의 결 고운 꾸밈과 가없는 아름다움을, 우리 겨레붙이가 오래오래 살아온 가슴 벅찬 내력을 이끌어냄으로써, 이 땅의 성장하는 세대가 새로 고친 헌법의 머리글을 스스로 외울 수 있게 유도해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 소견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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