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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 이상 장애인 15.2% … 장애 걱정 없이 교수될 수 있는 날 올까
대졸 이상 장애인 15.2% … 장애 걱정 없이 교수될 수 있는 날 올까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4.30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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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대학가 풍경

“희망은 없다.” 지난 2007년 청강문화산업대로부터 해직된 안태성 전 교수(만화창작과)의 말이다. 그는 “갑질을 하는 사학 재벌과 폐쇄적인 교수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 사회의 장애 인식 변화를 비관했다. 그는 “학교는 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이크조차 사용하지 않고 소곤거리며 ‘점잖게’ 회의하는 바람에 옆 교수의 필기 노트를 훔쳐보며 전달 사항들을 적기 바빴다”며 이어 “동료 교수들은 나를 피해 다녔고 가끔 만나도 내가 귀가 안 들리니 대화가 안 된다면서 손으로 귀를 가리키며 흉내를 내곤 했다. 지식인이라는 교수들이 보통 사람들 보다 차별이나 왕따가 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전 교수는 현재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장에서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장애인-정상인’을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고쳐 부르기로 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전반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대학가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했다. 

헌법 前文은 대한민국 국민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것을 말하고 있다. 장애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장애추정 인구 267만 명(2017년 기준) 중 대학 이상 학력자는 15.2%로 전체 인구 기준 47%(자료 출처 교육부, 2016년 기준)보다 한참 낮다. 이런 상황에서 드물게 장애를 가지고도 교수가 된 이들은 뛰어난 학문적 성취자인 동시에 차별과 불합리를 고스란히 겪어온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교수들은 장애인들이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비장애인과 같은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교수 임용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

장애를 가진 교수들은 가장 큰 차별을 경험하는 때는 교수 임용 과정에서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동영 가톨릭관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어느 대학의 최종면접까지 갔을 때 학교 이사장이 ‘똑바로 쳐다보세요’라고 말했다”며 “건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묻는다거나 하는 차별적인 요소가 임용 과정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조성재 대구대 교수(직업재활학과) 역시 주위에서 장애를 이유로 임용에서 차별 당하는 사례를 목격했다. “다른 대학에서 심사할 때 장애가 있는 지원자의 스펙이 훨씬 나았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뽑히지 않았다”며 “연구실적, 전공 적합도 등이 좋아도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잘 뽑히지 않는 것 같다”고 임용 과정의 불합리를 지적했다.

장애를 언급하거나 그를 이유로 임용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법에서도 차별로 간주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에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한다. 교원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임종일 교육부(사회부총리 겸 장관 김상곤) 주무관은 “원칙적으로 교육기관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신고나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학교에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낮은 정보 접근성 등 교육 기회 제한적

부족한 시설과 시스템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주형 나사렛대 교수(인간재활학과)는 “정보 접근성에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제한적이다”며 “자료를 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정보인프라, 제도가 잘 보장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초등교육부터 교육환경이 황폐화돼 있어서 대부분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장애를 가진 학생이 많지 않으니 교수가 되는 숫자도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33년 전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김종배 연세대 교수(작업치료학과)는 “다친 후로 오랫동안 공부 포기했다”며 “신체적인 기능에 제한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전동휠체어, 컴퓨터 보조기기, 활동 보조를 위해 돕는 사람 등 다치는 바람에 생기는 필요를 사회, 국가, 환경이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그는 “학교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강의실이 있거나 장애 때문에 어려운 받아쓰기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없다면 동등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할 수 없다”며 “교수가 된 이후로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이 없어서 강의나 교수회 자리에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자 꿈꾸는 장애인 위한 저변 확충 절실

장애 교수와 학생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무자들은 예산과 제도적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박성철 국립장애인도서관 과장(자료개발과)은 “논문이나 학술 쪽은 아직  대체 자료 만드는 것이 부족하다”며 “논문이나 학술지 등 PDF로 돼있는 것을 텍스트로 변환하면 깨짐 현상도 있고 변환해도 비교, 수정이 어려워서 만들기 힘들다.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시면 제공해 드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체 자료 하나를 만드는 데 40일이 넘게 걸리고 비용도 40만 원씩 든다”며 “데이지(DAISY,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와 같은 전자책 표준 마련 등 큰 틀에서 국가 정책적, 법적으로 지원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성재 교수는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과정의 공정성과 기회의 평등함이 부족하다”며 “국가교육회의나 최근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장애인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비판하며 “300만에 가까운 장애 인구에 식구를 포함하면 1천만에 가까운 사람이 장애로 삶에 영향을 받는 것인데,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가 필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장애인도 포함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일갈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교수들은 장애를 무조건적인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경계했다. 오히려 특정 전공의 경우 장애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를 자산이라고 말하는 교수도 있었다. 이처럼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적 특징이 오히려 능력을 발휘하는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정책 결정 과정에 세심한 고민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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