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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바라본 동양 … 한·일의 역량차 뚜렷
제국이 바라본 동양 … 한·일의 역량차 뚜렷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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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일그러진 근대』(박지향 지음, 푸른역사 刊)

한국에서 근대성 담론은 탈근대를 외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한국의 탈근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식민지 근대로부터의 탈피를 통한 진정한 근대의 완성이다. 많은 면에서 서양과 일본의 이중 지배를 받는 한국의 파행적 근대가 늘 골칫거리였다.

일본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를 지혜롭게 구분하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 동안 한일 근대성에 대한 비교연구는 주로 영향관계를 따지는 것이었다. 양국의 근대성을 한 손에 올려놓는 비교연구는 좀처럼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영국사를 전공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가 펴낸 ‘일그러진 근대’(푸른역사 刊)는 그 부제 때문에 새삼 눈길을 끈다.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이 그것이다.

이 책은 영국의 식민주의자들과 관광객들이 근대 시기 일본과 한국을 둘러보고 남긴 기록물들을 통해 두 나라의 역사상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가 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조그만 문제의식을 단행본으로 독립시킨 것이라 본격적이란 느낌은 덜하지만, 한일 양국의 근대 풍경을 한 눈에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영국이 본 일본, 일본이 본 영국, 영국이 본 한국 등 시선의 이동에 따라 장을 구성하고 있는데, 본문에는 당시 근대화의 스탠다드를 자부하고 있던 영국민들이 저열한 전근대 주민들을 바라보는 멸시에 찬 발언들로 가득하다. 가령 주한 영국공사로 근무한 존 조든은 고종시대를 두고 “한국 궁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비교하면 로마가 불에 탈 때 네로가 바이올린을 켠 것은 차라리 위엄 있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극에 달한 관료부패, 정치현실을 모르는 식자층, 더럽고 일할 의욕을 잃은 백성들이 총체적으로 얽힌 구덩이였다.

영국에게 한국이 ‘영원히 클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면, 일본은 동맹국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일찍이 탈아입구의 원칙을 세운 일본은 메이지시대부터 꾸준히 서구 따라잡기에 나섰다. 영국과 일본은 메이지 초기에는 굉장히 사이가 좋았는데, 일본에 대한 영국의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영국이 잃어버린 것을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모던을 구현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고 나쁘게 말하면 가지고 놀기 좋은 ‘인형의 집’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감정은 곧 경계와 멸시로 바뀐다. 일본이 물질적인 근대화에 치중한 나머지, 그것과 맞는 독일사상을 많이 차용했으며, 영국의 자유주의에는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은 독일의 철학자들은 전부 근엄한 교수들이었는데, 영국의 사상가들은 모두 얽매이지 않는 개인들이었다는 영국인들의 민족의식이다. 거만한 영국은 일본에 개인주의가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는 근대성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예의범절, 청결, 배우려는 의지 같은 부분에서 이뤄진다. 비숍 여사는 한국의 교양계급인 양반들에게서 무례와 막돼먹음을 본 반면, 일본에서는 산간지방에서도 깍듯한 예의를 경험한다. 청결의 면에서도 서울은 “눈과 코가 다 괴로운 장소”였는데 일본은 몸과 옷이 다 같이 청결했다고 한다. 근면 역시 “처마 밑이나 길모퉁이에 서 있는” 한국은 미개사회이며, 모든 사람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일본은 문명사회였다. 이런 것이 일본에게 근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화를 위한 기본 바탕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앵글로-색슨의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현들을 읽다보면 한편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세계라는 것이 거대한 오해의 제국이란 생각이 든다. 진실은 그 오해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고. 저자는 영국이 風聞의 동양관에서 객관성의 동양관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자료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경계해가며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는 “실패한 근대를 담담히 인정하자는 것”. 한국은 인종적 위계질서에서 하위에 위치한 민족, 죽어가는 나라, 강제로라도 문명화돼야 하는 민족이었다. 조선은 전근대시대의 문화적 번영을 깎아먹으면서도 대책없이 배타적인 퇴행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일본은 영국에게 인정받지 못한 데서 오는 복합적인 근대 콤플렉스가 두드러진다. 그래서 한국과 영국은 서로를 주변화, 타자화시켰다면, 일본은 서구와의 동일시와 타자화를 되풀이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최근 한국의 근대성 연구는 일본의 근대성 연구에 자극받아서 풍부한 관점과 아이디어로 넘쳐나고 있다. 개화기 지식시장의 역동성, 도시자본적 요소들의 충격, 자아의 위생학 같은 주제들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료로 인해 논의가 추상적으로 빠지거나 피상적으로 돌기 일쑤다. 근대시기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근대를 발견하려고 하는 시도가 갖는 한계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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