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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의 정치학
대학입시의 정치학
  • 김영석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4.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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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얼마 전 교육부는 2022년 대학입시개편안을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론화 방식으로 해결할 사안인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일단 공론화 단계까지 상황이 진행된 것은 대학입시가 단순히 객관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절차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 또는 이익집단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점을 인정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의 대학입시 개혁 논의는 표준성취시험에 기반을 둔 입시가 초래한 부작용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 왔다. 가장 바람직한 전형요소라 할 수 있는 내신 역시 표준성취시험을 토대로 산출된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의 SAT와 같은 능력시험을 지향한 수능이 등장했지만 표준성취시험의 성격은 벗지 못한 채 시험 준비의 복잡성을 극대화해 이제는 학교 교육이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 대안으로 도입된 입학사정관(학종) 제도가 확산되면서 보통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어떻게 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을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러한 ‘문제적’ 입시 방식들은 각각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수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능이 그나마 가장 공정한 입시자료라고 주장한다. 학종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기 어려운 ‘깜깜이’ 입시로 이른바 ‘금수저’ 전형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만큼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반면 학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능이야말로 재수생들에게 유리하고 강남의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불공정 입시라고 주장한다. 또 정시 비중이 커질수록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대신 수능 준비에 매진하게 되므로 고교교육은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입시는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지만 입시지옥, 대학서열화, 고교교육황폐화와 같은 사회적 해악을 해소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혹자는 과열된 교육열과 같은 한국적 특수성을 논하며 백약이 무효임을 주장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입시를 진지하게 개선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기존의 입시방식이 가진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대학자율화라는 미명 하에 생경한 입시방식들이 어설프게 추가되면서 현재의 입시는 대학수학능력의 측정이라는 고유의 기능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이른바 수도권 명문 대학들이 ‘무슨’ 이유인지 학종과 수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학종과 수능은 고교교육 일부분만을 반영할 뿐이며 자신이 선택한 전공 영역의 기초 내용 지식조차 준비 안 된 학생들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것은 결국 대학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오래전에 폐기된 학력고사나 예비고사가 더 좋은 시험이었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이유도 지금의 입시가 사교육 억제효과, 교육과정의 다양성, 고교교육 성과의 측정이라는 점에서 구닥다리 시험들만 못 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논의과정을 멀리서 지켜본 필자로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고교내신의 비중을 강화하되 교과별 세부특기사항과 과정형 수행평가와 같은 학종의 ‘긍정적’ 요소를 가미하고, 수능은 내신의 보조적 자료로 활용하는 것으로 정리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능 절대평가 및 상대평가 논의는 그나마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며칠 새 여러 일선 고교 교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듯 대학입시가 산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참담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 데는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유사 전문가들이 어설프게 개입한 탓도 있겠고, 이해관계를 배제해야 할 곳에 선수들이 심판으로 입장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대안적 대입제도가 가져야 할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일단은 공론화가 가진 숙의적 기능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론화 과정에서의 논의가 새로운 대입제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원칙과 교육적 영향보다는 표면적 공정성 논란에 치우쳐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교육계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이다. 적폐적 요소들을 함께 놓아둔 채 현상에서의 조합을 찾는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교육계가 이 정부에 건 기대가 너무 크다. 입시 간소화, 고교 교육 정상화, 계층 간·지역 간 불평등 완화와 같은 상식적 원칙에 충실한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해볼 뿐이다.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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