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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기원으로 반주변부
혁신의 기원으로 반주변부
  • 이택광 영국통신원
  • 승인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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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통신원리포트 : ‘뉴레프트 리뷰’에 실린 모레티의 세계문학론 解明

그 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전개돼 왔던 프랑코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에 대한 중간 결산이 ‘뉴레프트리뷰’지에서 이뤄져 흥미를 끌고 있다. 올해 ‘뉴레프트리뷰’ 20호에 게재된 프랑코 모레티 본인의 논문 ‘더 많은 구상들’이 바로 그것. 현대 소설의 발생을 통해서 문학적 세계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평가를 받은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하는 세계 학계에 하나의 중요한 이슈를 제기했던 것이기도 하다.

세계의 이목 집중시킨 논쟁의 향연

2000년에 ‘뉴레프트리뷰’가 새롭게 단장하면서 내놓은 첫 호에 선보였던 모레티의 논문 ‘세계문학에 대한 구상’이 던진 여파는 놀라운 것이었다. 내노라하는 문학과 문화연구자들이 가세해서 펼쳐 보인 논쟁의 향연은 가히 전지구적 차원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할 만하다. 크리스토퍼 프렌더개스트, 프란체스카 오어시니, 에프랭 크리스탈, 조내선 애럭, 에밀리 애프터, 그리고 제일 팔라가 이들에 해당한다. 찬사 못지 않게 논란도 몰고 왔던 자신의 세계문학론에 대해 모레티는 담담한 어조로 당시의 논점에 내포된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쟁점별로 제기된 비판의 맹점들을 하나씩 짚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세계문학에 대한 구상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협소한 유럽 교양소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일반적 비판에 대해 모레티는 자신에게 소설은 “모델이 아니라 일종의 예증”이라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응수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이론이 유럽 소설을 토대로 한 것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근거한 특수한 소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물론 이런 모레티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에 영감을 제공한 루카치 소설이론에 대한 선이해다. 모레티 자신도 선선히 밝혔듯, 그의 세계문학론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을 이해하려면 루카치 문학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형식은 내용의 논리’라는 명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레티가 자신의 세계문학론에서 소설을 보편적 모델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바로 루카치가 말한 ‘세계의 거울로서 존재하는 소설’이라는 모티프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달리 말하자면, 이런 모레티의 루카치 원용은 소설이라는 ‘작은 거울’이 어떻게 온전하게 전체 세계를 비출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야 그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모레티는 추상적 사고 이전에 세계적 차원에서 문학적 사실의 종합과 공유를 선행함으로써 세계문학의 모호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다소 상식적인 의견만을 내놓고 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모레티는 자신의 세계문학에 대한 구상을 지나친 서구 중심주의로 보는 관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특히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이 서구를 독점적 중심문화로 보고, 모든 문학형식의 창조가 이 중심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듯 전제하고 있다는 크리스탈의 비판에 대해 모레티 자신은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전개되는 문화이동은 역사적으로 아주 드문 사례라고 되받아쳤다. 물론 이 순간 모레티는 소설을 세계의 거울이라고 말했던 루카치의 헤겔 변증법을 내다 버리고, 문학사적 사실이라는 실증적 데이터를 이용해서 크리스탈의 주장을 무효화시키려고 한다.

복잡성 이론과 비교문학 상상하기

그러나 데이터가 있으면 언제나 그 데이터에 대한 해석의 역할이 개입하게 마련. 이와 같은 문학사적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해 모레티가 의존하는 이론적 틀거리는 바로 이타마르 이븐-조하르의 ‘복합체제 연구’라는 논문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심과 주변에 대한 복잡성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문화의 혁신은 일방적으로 중심이나 주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半주변부라고 일컬어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중심이라고 상징적으로 재현되는 지점들은 실제로 모호한 반주변성과 겹쳐져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모레티는 자신의 세계문학론이 차이의 불균등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이 자리에서 모레티는 다시 루카치의 표정으로 돌아가서 진지하게 “이론은 단지 그 중심과 주변의 불균등성을 설명할 뿐”이라고 말한다. 모레티는 루카치의 말을 바꿔서 이렇게 말한다. “비교문학을 상상하는 그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읽는가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모레티의 응수가 어떤 논쟁으로 발전하게 될 지 지금 수많은 문학연구가와 문화사가들은 다시 한번 궁금한 눈길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택광 / 영국 통신원·셰필드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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