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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로 영문학의 성취 이뤄낸 존 밀턴과의 20년
모국어로 영문학의 성취 이뤄낸 존 밀턴과의 20년
  • 박상익 우석대·서양사
  • 승인 2018.04.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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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왜 번역청을 설립해야 하는가

올해 초 『번역청을 설립하라』(유유. 2018.1)를 출간하면서, 출판사 측의 제안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넣었다. 1월 8일 국민청원을 넣었는데 한 달 만에 9천417명이 동의해줬다.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말 번역이 안 된 책이 많아 아쉬움을 느끼거나, 번역된 책이라 해도 완성도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독서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고 청원에 동의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동의해준 인구는 5천만 국민 가운데 1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제약 등으로 그랬으리라 짐작하면서도, 이 나라에 독서 인구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암담한 생각도 들었다. 

밀턴 산문의 白眉

하지만 몇몇 언론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고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동아>와도 인터뷰를 했는데(2018. 3월호), 인터뷰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취재 기자가 내게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뭐냐고 질문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 언론자유의 경전』이라고 답했다. 이 책은 1999년 도서출판 소나무에서 처음 나왔고, 2016년 인간사랑에서 전면개정판이 출간됐다. 밀턴의 산문을 대표하는 글로 꼽힌다. 『실낙원』이 밀턴 시의 금자탑이라면, 『아레오파기티카』는 밀턴 산문의 백미다.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언론사상사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문헌에 속한다.

이 책의 1부는 원문의 ‘번역과 주석’이고, 2부는 ‘연구’다. 2부는 독립된 한권의 연구서라 봐도 된다. 80년대 초 김용옥 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고 언젠가 나도 번역·주석·연구를 아우른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밀턴의 영어 문장은 장엄체(grand style)라고 해서 라틴어풍이 많이 가미된 훌륭한 문장이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한문에 조예 깊은 한학자가 쓴 한국어문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그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고, 외국어로 접근하는 나 같은 연구자에겐 ‘난해함’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온종일 한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 씨름하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분투의 연속이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의 ‘위대성’을 절감했다. 단어 하나하나의 탄생과 의미변화 과정을 추적한 세계 유일의 사전, 항목 하나하나가 그대로 개념사(Begriffsgeschichte)인 사전이다. 밀턴은 라틴어에 조예가 깊어서 새로운 영어단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원래 고전어가 조어력이 강하다), 수많은 다른 사전을 찾아도 없던 단어가 OED에는 떡하니 나와 있곤 했다. 밀턴이 그 단어를 사용한 ‘예문’까지 적시 되면서! 숱한 영어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낯선 단어들의 숲속에서 지쳐가던 내게 그 감격이란 목마른 자가 사막에서 물 한 모금 마실 때의 감격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한 자만이 그 기쁨을 알리라! 

‘inquisiturient’가 그런 경우다. 사전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단어다. 그런데 『옥스퍼드영어사전』에 표제어로 떡하니 올라가 있다. 단어 옆에는 ‘Desirous of making inquisition; eager to play the inquisitor(종교재판을 행하고자 하는, 종교재판관 역할을 하고자 하는)’란 뜻풀이가 나온다. 잉글랜드 국교회 주교들이 받아들인 종교재판소(inquisition)의 사악한 유산과 그들의 호색(prurient)을 아우르는 뜻으로 밀턴이 만들어 쓴 단어다. 

고전 연구번역의 가장 큰 효용

20년 가까이 『아레오파기티카』를 끼고 있다 보니 밀턴의 사상이 내 사상으로 체화된 느낌이다.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밀턴의 맥락에서 깊이 공감하고 지지하게 되니 어느덧 밀턴은 나의 멘토가 돼 있었다. 고전 공부의 가외 소득이라고 하겠다. 가외라고 했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닐까. 나도 모르게 밀턴을 私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레오파기티카』 원문은 1644년 출간되었으니 4세기 전 영어다. 대학 교육받은 미국인도 쉽게 읽지 못하는 영어다. 그런데 번역본을 읽는 한국 독자는 적어도 미국 독자들이 영어로 읽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왜? 번역본은 ‘21세기 한국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영미권 독자들이 ‘4세기 전 영어’라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고전 텍스트를, 한국 독자들은 현대 한국어로 훨씬 쉽게 읽을 수 있다. 이것이 고전 번역의 순기능이다. 언어학자 유진 나이다(Eugene A. Nida)는, 무릇 번역어란 25세부터 30세 사이의 청년이 쓰는 언어이어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서양 독자가 외면하는 서양 고전을 한국 독자가 손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고전 연구번역의 가장 큰 효용 아닐까. 우리가 세계에 우뚝 서는 문화국민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닐까. 연구번역에 뜻을 두고 일생을 걸고자 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생계 걱정 없이 이 일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레오파기티카』에는 밀턴의 ‘책’에 대한 유명한 오마주가 나온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형상인 이성적 창조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말하자면 눈앞에 있는 신의 형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에 짐이 되어 삽니다. 그러나 좋은 책은 위대한 영혼의 고귀한 생혈입니다. 책은 한 생명이 죽은 뒤에도 그 영혼을 불멸의 보물로 고이 간직합니다.” 

책을 ‘이성 그 자체’, ‘신의 형상’, ‘위대한 영혼의 고귀한 생혈’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밀턴이 책에 바친 오마주가 논문 위주로 흘러가는 우리 인문학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본다. 인문학 연구 결과물의 최고 형태는 논문이 아니라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레오파기티카』는 출판의 자유도 주장한다.) 일생 책 한권 못 쓰고 사라지는 인문학자의 삶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겠는가. 

밀턴은 젊은 날 1년 3개월 동안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는 유럽의 변방이었고, 영어 또한 (한국어처럼) 변방 언어에 지나지 않았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야말로 유럽 최고의 문화를 뽐내는 선진국이었다. 밀턴은 사실상 선진국 ‘유학’을 다녀 온 것이다. 이 여행에서 가택연금 상태의 갈릴레이를 만나 교분을 쌓기도 했다. 

밀턴이 모국어로 작품을 쓴 이유

선진국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밀턴은 이렇게 다짐했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 후세를 위해 글로 쓰게 된다면 내 조국을 명예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라틴어로 글을 쓰면 해외에서 더 큰 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나는 모든 근면과 기예를 다 발휘해 나의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사용하겠다.” 

마지막 문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밀턴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위해 라틴어로 저술하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영어 아닌 라틴어로 쓰면 전 유럽의 지식인을 독자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턴은 이 모든 가능성을 접고 모국어로 작품을 쓰겠노라 결심했고, 그의 야심은 훗날 『실낙원』 등으로 구체됐었다. 밀턴이 영어로 작품을 쓰겠다고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였을 것이다. 밀턴 같은 문인들이 모국어를 포기하고 라틴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면 영문학은 얼마나 초라해졌을까.

 

박상익 우석대·서양사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밀턴평전』, 『나의 서양사편력』, 『번역은 반역인가』 등의 저서와 『아레오파기티카: 언론자유의 경전』, 『의상철학』 등의 연구번역서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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