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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융·복합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 김영관 전남대·체육교육과
  • 승인 2018.04.2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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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의 광풍이 불고 있는 지금, 그리고 그 이전부터 교육과 인재 육성에서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융·복합이다. 유명한 포털 사이트 영어사전에서 ‘융복합 교육’을 검색하면 fusion education, convergence education란 어구가 먼저 나오고, 세 번째로 multidisciplinary education가 나온다. 이 결과를 보자마자 갖는 첫 느낌은 “헐”이다. 융·복합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융·복합이란 ‘다양한 것들이 섞어 녹아들게 해(fuse) 한 방향으로 모으는(converge) 것’으로 각인돼 있는데 말이다. 

나는 융·복합이란 converge보다는 diverse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방향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융·복합이란 fuse하고 converge하는 것보다 interdisciplinary를 통해 diverge하는 것이다. 즉, 서로 다른 학제 또는 이질적인 학문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창의적인 제3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융·복합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또 다른 선입견을 수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융·복합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많은 대학들은 10년 넘게 융·복합 교육의 개념과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융·복합 교육의 인재상과 목적, 목표 등을 설정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확실한 개념 정립이나 성과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이과 통합으로 융·복합은 달성 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공고한 문·이과 구분은 짧은 역사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50대 중반 이하의 모든 국민은, 학문을 문·이과로 구분해 보는 패러다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틀을 깨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문·이과 통합 과정 교육’을 미래 교육 방향으로 삼은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예·체능을 포함한 인간의 다양한 지능과 가치를 고르게 인정해주는 사회의식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과거의 패러다임에 기초해 만들어진 지금의 학생 평가나 선발 제도도 변해야 한다.   

암기 위주의 지필 고사를 지양하고, 예·체능의 재능도 다른 분야의 재능과 차별 없이 인정해 줘야 한다. 인간이 가진 다중지능이론(가드너, 1993)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로 평가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학생들이 넘쳐 선별해서 뽑던 시기에는 논리-수학적 지능, 언어적 지능, 공간적 지능 등을 판단하는 학력고사나 수능이 학생들을 줄 세워 선발하는 데 편리했다. 컴퓨터 채점으로 효율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선별해 관리하는 조직에서는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분야가 바로 수리와 언어 영역이며, 인공지능의 능력은 소위 말해 인간의 그것과 게임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강조하던 능력만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우선시 하는 것이 정확한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지금까지 학생평가에서 등한시 해왔던 음악적 능력, 신체-운동적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이해 지능 등을 평가항목으로 포함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위에 언급한 지능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주는 영역이며, 인간이 현재까지 기계보다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영역이다. 미래에도 계속해서 기계가 잘하는 것을 인간이 쫓아가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장점을 강점으로 전화시키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명확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력을 짤막하게 읊어볼까 한다. KAIST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한국항공연구소에서 T-50 고등훈련기 개발 업무를 4년간 맡았었다. 이후 미국에 가 체육(스포츠 과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체육교육과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나를 주위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혹은 독특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처럼 이상하거나 독특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 꿈을 좇아 선택했고, 그 길을 갔을 뿐이다. 뜬금없는 결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 시절 김포공항 옆에서 살면서 오르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자랐고, 6살 때부터 25년 넘게 태권도를 수련했었다. 예·체능 능력이 국·영·수 능력보다 저평가 받던 시절을 보냈지만, 신체-운동적 지능을 놓지 않고 계속 유지했던 것이 지금과 같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유명 지도자들은, 가령 오바마나 푸틴, 아소 등과 같이 한때 운동선수였거나 전문적으로 체육을 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왜 우리 지도자 중에는 그런 인물들을 찾기 힘든 것일까?  아마 ‘예·체능의 가치는 국·영·수의 가치보다 낮다’라는 패러다임에 오랫동안 갇혀 지냈을 뿐만 아니라 ‘diverge’하는 것을 이상하고 독특한 것으로 간주하는 선입견에 지배됐기 때문은 아닐까? 문·이과 통합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지닌 예·체능 지능을 이끌어 내는 것도 더 없이 중요하다.

 

김영관 전남대·체육교육과
KAIST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학부·석사를 마치고 한국항공(구, 삼성항공)우주연구소에서 6년간 근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Kinesiology’(신체운동학)라는 전공으로 애리조나주립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공학을 운동에 접목한 ‘생체역학’과 ‘운동역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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