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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철학을 물을 때
교육의 철학을 물을 때
  • 교수신문
  • 승인 2018.04.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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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지난 12일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될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초안’을 발표하며, 앞으로 4개월 안에 국가교육회의에서 최종안을 결정해달라고 했다. 이에 국가교육회의는 학생·학부모·교사 등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이 직접 참여해 신중하게 숙의·결정하는 공론 절차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 추진과정의 특징은 교육부의 초안 자체가 단일안이 아니고 100여개의 대입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이고, 이 중에 국가교육회의가 선택해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중심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공론화’는 갈등관리, 조사통계 분야 등 공론화 전문가를 중심으로 7명 내외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먼저 대입제도 개편의 기본 철학이나 원칙,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00가지가 넘는 케이스를 4개월 안에 어떻게 깊이 검토할 수 있는가, 또한 다양한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내용들을 공론화로 풀어가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이다. 특히 대입 개편안을 결정하는 위원 구성이 ‘통합적’이지 않으며 교육과 입학정책의 전문가도 적다는 것이다.  

대입제도 개편 마다 항상 우려되는 것은 매 정권마다 교육 정책을 바꾸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지 않을 것인가이다. 주목할 것은 이번 대입제도 추진과정에는 ‘관련 당사자’보다는 ‘국민의 의견’, ‘사회적 합의’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학생을 대학에 보내는 학부모·교사의 입장이나, 학생을 받아들이는 대학의 입장보다는, 사회적 관점에서 풀어가겠다는 것인데,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학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학의 ‘학생 선발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들리지 않으며, 공론화 흐름으로 대학의 자율성은 갈수록 퇴색돼가는 느낌이다. 더 큰 염려는 대학들 자신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느냐다. 이는 대학의 본질, 존재 이유에 대한 의식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대학의 정신, 사회적 영향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국 교육의 근본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개인의 특성을 살리며 다양한 트랙으로 성장토록 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학생부, 수능시험을 비롯한 점수라는 하나의 틀 안에 갇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고3, 고2, 고1, 중3의 대입전형방법이 다 다를 정도로 대입제도가 자주 변한다. 더 심각한 것은 유초중등교육의 본질과 대입전형 내용이 제대로 연계돼 있지 않다. 

교육현장이 혼란스러울수록 교육의 본질을 더욱 더 생각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대입제도를 통해 중등교육에 절대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육에 대해무한책임을 가져야 한다. 즉 대입제도와 유초중등교육의 본질이 잘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평가방식을 대학이 먼저 스스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어 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역량 있는 인재를 제대로 배출해야 한다. 

대학은 여기에서 그 위상과 역할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이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전화 한 통에 깊은 고민 없이 대입정책을 바꾸는 시늉을 하거나, 재정지원사업 평가 때문에 ‘자율성’을 거론조차 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를 비쳐서는 안 된다. 대학은 대학답게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대정신, 역사의식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를 선도하며 국민들의 신뢰와 기대를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 대학은 학생선발권 주장에 앞서,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며, 유초중등학교 학생, 학부모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대학은 우수학생유치에 앞서 유초중등교육의 질을 깊이 헤아리며 대학교육의 질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대학이 개별 대학을 넘어 국가의 대학으로 먼저 배려와 관용의 정신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이는 일이다. 대학이 교육생태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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