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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연구는 언제 하나요?"
"교수님, 연구는 언제 하나요?"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4.2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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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苦衷을 토로하다

"매일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한 달 식비로도 부족한 돈을 받습니다“, ”연구과제 인건비는 연구과제 노동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것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지도교수가 관여 혹은 간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오죽하면 대학원생은 노예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대학원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열악한 환경에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발표한 ‘대학원생의 연구환경 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대학원생들은 ‘장학금 및 연구수행 등 수입이 없으면 학업수행이 어렵다’(65.7%)고 응답했다. 게다가 대학원생이 의존하는 장학금마저도 그 규모가 크지 않다. 1년 동안 납부해야 하는 대학원 등록금은 841만8천원(대학알리미, 2017년 기준)이다. 반면 국가 장학금 포함 교내외 장학금은 1인당 534만9천원(대학알리미, 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지난 2월 24일에는 대학원생노조(위원장 구슬아)가 출범됐다. 구슬아 대학원생노조 위원장은 “대학원에 와서 연구하면 잘될 학부생 친구들도 대학원의 현실을 아니까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부모의 지원이 없으면 대학원 진학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자성 여부로 갈등 빚는 근로 장학금

대학원생들은 학업과 생계를 지탱할 두 축인 장학금과 인건비가 정당하게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은 장학금을 학업의 연장선으로 보고 노동에 따른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은 근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업무의 강도가 교직원에 준한다며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고 반발한다. 학업과 관련된 수업 조교들에게 행정, 사무 일을 맡기면서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우창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은 “근로장학금은 장학금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이런 이유로 별도의 계약서도 체결하지 않고 업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명확한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대학원생 조교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 내몰린다. 지난해 1월 중앙대에서 발표한 ‘2016년도 중앙대학교 대학원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37.4%가 ‘주말과 공휴일까지의 장시간 근무’에 시달렸으며 18.5%가 ‘적절한 인건비를 받지 못’했고 15.4%가 ‘조교 초과근무’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재홍 중앙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생들이 시험 조교로 들어가는데 그 업무에 대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도교수 권력으로 작용하는 연구 인건비

이공계의 경우 인건비 지급에 따른 지도교수 종속 문제가 제기된다.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연구 용역에 따른 인건비 지급을 지도교수가 관리한다. 이를 인건비 풀링(pooling) 제도라고 부르는데 연구 용역을 따지 못했을 경우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건비 관리를 교수가 맡고 그를 감독할 수 있는 주체도 없어 교수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한 청원자는 이 돈이 “사실상 지도교수의 차명계좌나 다름없다. 지도교수가 다른 학생 계좌로 얼마 옮기라고 하면 그냥 옮겨야한다”고 주장했다.

인건비의 교수 종속이 더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교수와 학생 간의 권력 관계가 강화되는 데 있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에 참여한 전준하 박사과정생(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은 “현재 장학금이나 인건비는 지도교수, 대학의 손아귀에 있다 보니 대학원생의 지도교수, 학과, 대학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정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는 학문적으로도 도움이 안 될뿐더러 더 나아가서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쉽게 고발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식 공감하지만 학문적 관계 잊지 말아야

교수들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는 “1810년 생긴 독일 훔볼트 대학의 설립이념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였다”며 “그러나 현재 대학원 사회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자율권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미시 담론에 함몰돼 있는 학생들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교수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학원생의 처우개선에는 근본적으로 공감하지만 노동자성이 강조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토론회에 참여했던 정우성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는 “대학원생들이 주장하는 권리 강화 등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지지한다”며 “다만 노동자 지위를 확보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공계 교수 역시 “대학원생들이 겪는 문제를 특정 교수가 나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며 “연구 용역으로 받을 수 있는 재원이 한정돼 있는데 근로기준법을 이야기하면서 최저시급 이상을 달라고 하면 실험에 필요한 재료비 등을 구매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 규모가 확대되지 않으면 대학원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대학원생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에는 대학, 교수, 학생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인식 차가 존재했다. 

<교수신문>은 이러한 인식 차를 좁히고 보다 건설적인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이번 호부터 10회분의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은 대학원생의 △인권(성폭력, 언어적 폭력) △노동(대학원생 권리, 학회 간사 과잉 노동) △학문(지적 재산권 침해, 학문적 다양성)을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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