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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사회와 형식적 공정성의 비극
병목사회와 형식적 공정성의 비극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4.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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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프로그램을 이렇게 잘 만들고도 결론은 엉망일 수 있을까! EBS의 6부작 다큐멘터리 <대학입시의 진실>에 대한 나의 평가다. 이 방대한 기획은 전국의 고등학생, 학부모,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등 수많은 사람의 ‘심층 인터뷰,’ ‘3만8천명의 서베이,’ ‘전문가적 식견’을 종합해 대학입시의 잘못을 파헤친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대한 온갖 비리와 문제를 폭로하고 입시의 계급화와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마지막 6부에서 이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에게 정시(수능), 학종, 학생부내신, 학력고사, 본고사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공정한 입시제도인지를 묻고 각 전문가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서 6부작을 끝마친다.

최근에 읽은 최고의 책이다. 분석적이고 철학적 깊이가 있고 무엇보다 경험적으로 타당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교육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느니 차라리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낫다. 교육에 대한 인식의 혁명뿐만 아니라 인간 발달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저자는 미국대학 교수지만 마치 한국사회를 보고 이 책을 쓴 듯하다.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에 대한 나의 평가다. 피시킨이 병목사회라고 명명하는 ‘중요한 시험사회’의 대표적인 예는 한국사회이며 이는 온 가족과 학생이 이 시험이라는 병목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판돈을 걸고 경쟁하는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체제이다. ‘병목’은 ‘사회적 지위’가 되며 이를 위한 극단적 투쟁은 인간 발달 기회를 오히려 제약하고 사회적 자원은 낭비된다. 예를 들어 사교육비처럼.  

『병목사회』라는 책으로 <대학입시의 진실>을 평가한다면 간단하다. 학종이든 정시든 학력고사든 본고사든 3% 내외의 엘리트 대학을 들어가려는 병목현상은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 공정성’이 아니라 대학 구조 자체를 바꿈으로써 대학을 탈계급화·탈지위화하고 인간 발달의 다원적 기회를 대학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만 ‘실질적 공정성’이 확보된다. 기회의 범위를 그대로 두고 형식적 공정성에 매달리는 것은 피시킨이 지적하듯 대단히 보수적이다. 곧 형식적 공정성을 성취하려는 노력이 겉으로는 진보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보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병목사회를 그대로 두면서 병목을 통과하기 위한 공정한 방법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보 지식인들의 보수성과 답답함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학입시에 대한 보수적 접근은 <대학입시의 진실>과 같다. 문제 제기는 훌륭했으나 결론이 어긋난다.

진보 엘리트 지식인들과 교육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 봤다. 검찰과 국정원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헌법을 바꾸겠다는데 대학은 못 바꾸겠단다. 바꾸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라고 했더니 서울의 몇몇 엘리트 대학들이 반대해서란다. “그게 되겠어”라는 패배주의적 답변이 들려온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이유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변혁이라는 것은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것을 극복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닌가.

대학을 바꾸라고 했더니 교육부 차관은 서울의 10개 대학에 전화를 걸어 정시를 확대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실질적 공정성은 내버려 두고 형식적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말이다.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전화를 받지 않은 나머지 390개 대학은 뭔가? ‘미안하다, 너희 대학들은 3%에 들지 않는 대학들이다.’ 이것이 교육부의 솔직한 답이다. 엘리트 대학 내에서의 공정성 확보, 이것이 형식적 공정성의 비극이다. 또한 이것이 교육부가 적폐인 이유이고 진보 엘리트들이 겉으로는 진보, 속으로는 보수인 이유다.  

숨겨진 진실은 몇 가지 더 있다. 교육부 차관이 전화를 건 서울의 10개 대학도 점점 더 허름해지고 있다. 지난 9년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위기로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다른 아시아권 대학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로 인해 수준이 급상승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들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4대강에 22조, 세종시 건설에 22조를 쏟아부었고 앞으로 도시재생사업에 50조의 돈을 투자하지만 대학에 투자할 예산은 없단다. 교육부도 문제지만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문제다.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알려진 김동연 장관은 아주대 전 총장이다. 누구보다 대학을 잘 아는 사람이 대학에 투자할 생각은 없고 대학의 몰락을 방치하고 있다. 모든 것을 투자하고 너무나 힘겹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수준 낮은 한국의 대학들이다. 이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대학입시의 진실이며 형식적 공정성이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비극이다.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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