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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다 놓친 프라이버시 보호
서둘다 놓친 프라이버시 보호
  •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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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계 동향 : 정보화시대, 예견된 NEIS 사태

요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문제로 교육계만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못마땅했던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의 권위를 세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그간 대통령의 행보가 선거 전과 사뭇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의 처리 과정에 따라 이전과는 또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교육부는 ‘나이스’, 전교조는 ‘네이스’라고 부르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전자정부 사업 11대 과제 중 중점과제로 선정된 사업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애초부터 전자정부 구상에 내포됐던 국민 개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일부 학계와 시민운동의 문제제기로만 남겨진 채, 그리고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들은 정보화의 대상으로만 고려된 채 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이렇듯 현재 교육 정보화는, 그 초기부터 반드시 참여해야할 정보주체를 도외시한 채 기술적인 부문만을 완성해 사람들을 만들어진 틀에 맞게 행동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기업 정보화의 경우와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물론 일선 학교의 수많은 정보담당 교사들과 보안관련 회사들이 주장하듯 NEIS는 기존의 교육정보시스템보다 그 기술적 보안성이 뛰어나고, 교육부에서 주장하듯 행정업무의 정보화와 데이터베이스의 관리 면에서 우수한 기능을 자랑하며 인터넷을 통해 학부모들 및 일반 국민들에게 교육관련 민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정보의 중앙집중과 통제

그러나 현재 NEIS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은 그 상대적인 기술적 우수성과 합리성에 있지 않다. 문제는, NEIS가 정보화의 이점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개인정보를 수집, 중앙집중식으로 집적·관리한다는 사실에 있다. 또한 교육공무원들에 대한 인사 영역에 입력해야하는 정보도 불필요한 내용이거나 병역 미필 사유, 구체적인 재산 내역, 신체사항, 종교, 가족 및 사회단체 활동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NEIS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예사롭게 볼 수 없다.

NEIS를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 시민사회 전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보화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끊임없이  지적되는 감시와 통제,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의 중요성을 볼 때, NEIS는 교육계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더구나 학생과 학부모의 정보를 12년간 누적하며, 이것이 현행 법률이 정한 한도 내에서라도 다른 국가기관과 공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단순히 5백20억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NEIS 사업비 낭비 문제 등으로 협애화해서는 안된다.

물론 각 학교의 정보담당교사들이 지적하듯 NEIS에서 과거의 정보시스템으로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학교들도 존재하며, 당장 다가온 입시 때문에라도 적절한 선에서 교육행정을 가동시키는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볼 때 문제의 해결을 낙관할 수 없다. 당장 갈등을 중재할만한 단위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2일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교무 학사, 입·전학, 보건 등 3개 영역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해당 부분을 시스템에서 제외하고 기존의 학교정보종합시스템(CS)을 유지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인권위 결정에 중요하게 반영된 기준은 OECD의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라인이었다.

역기능에 대한 영향평가 필요

개인의 정보수집은 정보주체의 동의 하에 이뤄져야 하고,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은 제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 지침에 따라 NEIS를 수정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될 듯 보였으나 이내 교육부와 대통령은 강력하게 NEIS의 강행 방침을 밝혔고, 전교조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다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무총리 산하의 개인정보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유명무실하고 정보화의 수준은 나날이 높아지는데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조정, 해결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관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전자정부와 같은 거대한 정보화 사업추진과정에서는 환경영향평가와 같이 프라이버시 침해 등과 같은 정보화 역기능에 대한 영향평가가 절실한데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는 상당히 추진되고 있는 기술영향평가 등의 기법이 국내에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관 및 평가체계 보완이 정보화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겠지만 결국 효율성을 위한 정보화 추진에 대해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허용해야 하느냐, 다시 말해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정보화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느냐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인 합의 없이는 이러한 갈등은 또다시 재발할 우려가 크다.

정보의 수집과 중앙집중식 관리는 효율성 및 생산성을 위해 중요하지만 이는 곧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보화를 둘러싼 갈등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swah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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