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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제시는 정부의 몫, 비판적 문제 제기에 집중할 것”
“대안 제시는 정부의 몫, 비판적 문제 제기에 집중할 것”
  • 이해나
  • 승인 2018.04.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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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회를 찾아서 ⑪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

 

지난달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교수 60여명이 모인 조촐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타 토론회와 특별히 다른 점도 없었고, 대대적으로 예고했던 자리도 아니었지만 주요 언론사는 앞다퉈 이 소식을 다뤘다. 바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이하 에교협)의 창립 토론회였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서강대 화학과)는 “그만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안이 컸다는 뜻”이라고 평하며 “수많은 토론회를 가 봤지만 이번처럼 진지한 자리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이 공동대표를 만나 이모저모를 들었다.

화학자인 이덕환 공동대표가 에교협의 선봉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대선 때 탈원전 이슈가 불거지면서 불안감을 느낀 원자력전문가들이 처음 에교협을 구상했어요. 그러나 원자력전문가로만 구성된 단체는 자칫 親원전 단체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죠. 그분들이 제게 찾아와서 대표직을 맡아달라고 한 게 시작이었어요.” 

이 공동대표는 1990년대 말 유류세 비판을 시작으로 약 20년간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다. 지금껏 쓴 약 2천300편의 칼럼 가운데 5분의 1 정도를 에너지 문제에 할애했을 정도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비판 의견을 개진한 그에게 특정한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표방하지도 않고 특정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계획도 없다는 에교협의 대표직은 퍽 어울린다.

에교협에는 전국 57개 대학 210명의 교수가 가입돼 있다. 원자력 전문가가 약 40명, 이공계열 약 150명, 인문·사회계열 교수가 약 20명 정도다. 에너지 정책과 인문·사회계열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언뜻 보아서는 이해가 어렵다. 이 공동대표는 “에너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윤리 문제와 사회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에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에교협의 주요 직책을 맡은 교수들의 전문 분야를 보면 이 단체가 균형이 잘 잡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공동대표를 포함해 온기운 숭실대 교수(경제학과), 성풍현 KAIST 교수(원자력양자공학과)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경제사회위원장은 손양훈 인천대 교수(경제학과), 기술정책위원회장은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 법사행정위원회장은 정승윤 부산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담당한다. 에너지 전문가와 이공계열, 인문·사회계열이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다.

에교협은 창립 토론회의 주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29일 확정·공고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8차 전기본)을 다뤘다. 이 공동대표는 8차 전기본에 대해 “目不忍見”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전망의 근거가 정직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6일 전력 수요가 사상 최대인 88.2GW를 기록했어요. 최대 수요 전망치 85.2GW에서 3.5%나 빗나갔죠. 8차 전기본이 40여일 만에 무용지물이 된 거예요. 시작부터 전력 수요 전망이 어긋난 이유는 자료가 왜곡됐기 때문이죠. 2016년 자료는 아예 빠져 있어요.”

정부는 지난해 12월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누적 설비용량을 63.8GW까지 끌어올리며, 신규 설비용량의 95% 이상을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공동대표는 섣부른 탈원전 정책과 태양광 확대 정책을 경계했다. 탈원전 정책을 성급히 시도했다가 전력 수급의 비효율을 낳는 것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 현장 인력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또 태양광 발전은 가동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백업 시스템’이 필요한 한계가 있어 아직 확대를 논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이 공동대표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 기술을 버린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며 “개선하고 활용할 방법부터 찾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여년 간 한결같이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해 온 이 공동대표는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한다” “대안을 제시하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공동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대안을 제시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인력이 있어야 해요. 민간에서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연구소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런 연구소도 정부만큼 정보를 가질 순 없어요. 정책을 바로 잡는 건 어디까지나 정부의 역할이고, 민간은 정부가 간과한 부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놓쳤던 부분을 지적해야 해요. 저희는 각자 전문성을 가지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에 몰두하려고 합니다.” 

현재 에교협은 정부가 연내 수립 예정인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이하 3차 계획)을 주시하고 있다. 3차 계획은 2040년까지의 에너지 수급의 큰 방향성을 결정한다. 이 공동대표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이 나오길 바란다”며 “3차 계획의 워킹그룹이 전문성 없는 이익단체들의 볼모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에교협의 설립 목적은 분명합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다듬어줄 것을 촉구하는 것이죠. 순수한 학자적 양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되면 소리 없이 흩어질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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