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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숨은 잠재력을 얼마만큼 끌어냈나?
학생들의 숨은 잠재력을 얼마만큼 끌어냈나?
  •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도시계획
  • 승인 2018.04.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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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도시계획

19세기 초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다비드에게 수제자 그로가 있었고, 19세기 후반 상징주의 화가이자 교육자 모로에게 수제자 마티스가 있었다. 그로는 신고전주의의 경직된 구도를 벗어나려 했고, 색채의 명암이 뚜렷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했다. 마티스 또한 전통적인 회화 개념을 부정하고 작가의 본능적 주관을 바탕으로 색채 자체를 강조했고 형태의 단순화를 추구했다. 다비드는 튀는 제자에게 엄격한 비판을 가하고 끊임없이 고전적 기법을 요구한 반면, 모로는 튀는 제자에게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시키고 말 거야’라며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모로 밑에서 마티스 외에도 루오, 마르케와 같은 뛰어난 제자들이 나왔다. 하지만 스승에게 끝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그로는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불만에 시달리다가 센 강에 투신자살한다. 그런데 살롱에 출품해 심사위원장이었던 스승 다비드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그로는 미술사에서 제리코, 들라크루와로 이어지는 낭만파 미술을 견인한 인물로 기록된다.

대학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8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2학년생의 주택설계 작품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계곡의 물을 투명한 거실 바닥 밑을 지나가도록 설계하고 노부모 방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3층에 옥상정원과 함께 배치했다. 하지만 여러 교수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노인 침실은 1층에 배치해야 하고 거실 바닥 밑이 외기에 노출될 경우 에너지 소모 등 유지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 2학년생이 첫 번째 습작에서 보여준 튀는 아이디어를 격려해 줄 수는 없었을까? 마침 건축잡지사로부터 학생 작품 하나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작품을 소개해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는 이미 후기산업사회에 진입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도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 없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지 않은 사회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래서 비전도 없다. 대학이 튀는 사람, 튀는 행위를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인류가 만든 그림 중에서 어느 작품이 가장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답은 없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지목한 작품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한다. 사회학자 짐멜은 이 작품을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한 명의 조연도 없는 작품이다. 현대사회가 어떻게 존속하고 발전해가야 하는지를 한 장면에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극찬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주연이 돼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도 개인이 존중받고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해야 하는 사회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다.

클림트의 그림 ‘생명의 나무’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새가 앉아 있다. 생명의 나무에 무슨 죽은 새인가?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세대가 바뀌면서 존속하고 자연은 계절이 바뀌면서 이어간다. 지금 도도히 흐르고 있는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다. 이전 것이 흘러가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올 때 진정한 생명력이 있다.

대학에서 진정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의 조각칼로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조각해 낼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할 경우가 많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털어내어 생명체를 꺼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칼로 인재를 조각하려 들지 않는다.

뒤늦게, 진정한 교육자란 어떠한 것인지를 반문하곤 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 그에 맞춰 나 자신이 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36년 동안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였는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다시 대학 강단에 서게 되면 진정한 생명력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교육은 그대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씨앗들이 자라나게 해 준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을 되새기면서.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 · 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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