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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고 일반화됐는가?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고 일반화됐는가?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4.0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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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제10강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근대적 역사관 : 헤겔적 종합」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2018년 총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 강연에서 주요한 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세계사란 자유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헤겔의 문장이 말하는 것처럼 근대 역사철학 일반은 진보가 필연적임을 논증하는 과제와 더불어 완성된 형태에 도달한다. 진보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역사에 어떤 법칙이 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내재하는 법칙에 의해 역사의 흐름이 필연성을 띠고 발전해간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일반화됐는가? 그리고 그렇게 일반화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학은 어떠한 변형을 거쳐야 했는가? 그리고 그런 변형을 위해 어떠한 한계를 넘어서야 했는가? 가령 역사 법칙이나 그 역사적 필연성의 고유한 특징을 개념화하기 위해 어떠한 인식론적 장애물을 넘어서야 했는가? 
 
헤겔과 역사의 출발점, 국가  

헤겔의 관점에서 역사에서 어떤 위안을 찾거나 도덕적 교훈을 찾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역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어떤 당위나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가 지니는 형이상학적 의미여야 한다. 역사의 어떤 의도나 계획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필연적 법칙을 찾아야 한다. 역사는 자연의 계획 속에 있는 그 일부가 아니다. 역사는 오히려 자연의 굴레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역사의 의미는 자연철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철학에 근거한다. 따라서 역사의 출발점은 자연 상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정신이 객관화된 상태, 가령 한 민족의 인륜적 삶이나 국가에서 찾아야 한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 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그러나 역사의 비극과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민족정신이 고도의 정신문화에 도달하여 얻은 “최후의 열매는 그것을 낳고 기른 민족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민족에게는 쓰디쓴 음식이 되기”(104/85) 때문이다. 그 위대한 성취가 그것을 이루어낸 민족에게 오히려 생명을 앗아가는 독약이 된다. 한 민족은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실현하고 최고의 자기의식 속에 완성된 작품을 생산하자마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 죽음의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 그것도 자신이 생산한 가장 이상적인 업적에 의해 몰락의 운명을 맞는다. 그러므로 “한 민족정신의 자연사는 오히려 자살의 형태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는 생명체와 같이 어떤 내재적 목적을 지닌 특정 민족이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이자 그런 자기인식에 부합하는 정치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매번의 민족 교체가 좀 더 우월한 형태의 자유의식이나 정치적 구성체가 태어나는 혁신적 진보의 과정임을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신의 고유한 자유의식을 완전히 실현하자마자 그 민족은 몰락을 맞이한다. 

그러나 자기전개의 개념으로 집약되는 유기체 논리는 역사철학을 자연철학의 지평으로 후퇴시킬 위험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 교체에 의한 역사의 단절이나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 역사적 과정에 고유한 우연성, 비연속, 도약, 과격한 혁신, 나아가 계몽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역사의 무한한 진보도 목적론적인 자기전개의 논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성의 간계  

헤겔의 대전제는 역사가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간계를 언급할 때는 역사가 이성적임에 못지않게 정념적임을 강조한다. 즉 역사는 어떤 기계적 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라기보다 개인의 특수한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펼쳐지는 정념의 드라마다. 역사의 보편적 논리는 이런 정념의 드라마 속에서,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갈등하고 소멸하는 운동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역사는 논리와 정념을 씨실과 날실로 하는 양탄자다.

인간의 욕망과 정념을 긍정한다는 것이 ‘이성의 간계’에 포함된 내용이라면, 거기에는 또한 우연을 긍정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 개념은 역사가 신과 같은 초월적인 주체에 의해 그 세부까지 관장되고 있다는 어떤 독단적인 결정론의 표지가 아니다. 역사에서 모든 우연성을 몰아내고 필연성만 남긴다거나 인간의 능동적 역할을 부정하고 법칙만 남기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의 필연성이 우연성을 매개로 자기를 조직해간다는 직관을 표현한다. 

헤겔이 ‘이성의 간계’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역사적 행위의 주체가 감당해야 하는 불행이다. 위대한 역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고 보면 그 주체는 무언가 숨겨진 계책의 수단이나 희생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위인이 죄 없는 꽃들을 무수히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세계정신은 선악의 저편에 있는 역사적 위인들을, 그리고 그들이 속한 민족들을 무수히 짓밟아 뭉개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  

그렇다면 세계사적 개인이나 민족들을 짓밟아 뭉개며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끝나는가? 섭리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의 역사관이 그런 것처럼, 이성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헤겔의 역사관은 종말론적 성격을 띤다. 이때 ‘종말(eschaton)’은 어떤 예정된 끝이되 시작에서 조성된 모든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실현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철학사와 세계사가 평행 관계를 이룬다는 전제다. 철학사의 단계와 세계사의 단계는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철학도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며, 그렇지만 “철학사는 세계사의 가장 심층적인 내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헤겔은 자신에 의해 철학의 체계가 완결됐고, 따라서 철학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도 역시 마지막 완성 지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한다.  

역사의 종말을 장대한 일몰로 장면화하는 헤겔을 염두에 두면서 하이데거는 헤겔 이후의 역사를 칠흑의 밤으로 묘사하기를 즐긴다. 현대의 역사가 황혼의 저녁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깜깜한 밤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정확히는 유럽인)이 지나고 있는 ‘세계의 밤’은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전-지구적인 테크놀로지의 지배력 속에 인간의 창조력이 완전히 고갈되는 시대, 인간이 획일화된 논리에 의해 무한히 조작되는 시대, 존재 망각이 극치에 이르러 정신적 궁핍에 시달리는 시대다. 

하이데거는 서양적 사유(이론적 사유)가 맞이한 이런 역사적 귀결을 종말론적 사유 속에서 극복하고자 한다. 이때 종말론적 사고란 서양적 사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과 그 극단적인 요소들을 회상적으로 불러 모으고 압축하는 가운데 그 역사를 가속화하거나 스스로 순환의 주기 바깥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작별의 예식이다. 즉 종말(eschaton)이란 송별이자 결별(Abschied)의 사건이다. 

데리다는 ‘끝(fin)’이란 말이 지닌 다의적 의미를 강조하는 가운데 하이데거가 작별로 해석한 ‘에스카톤’을 새로운 시작으로 번역한다. 이런 번역의 배후에는 두 가지가 숨어 있다. 하나는 역사적 시간을 메시아적 구조에 따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의 종결(Beschlus)을 가져오는 헤겔의 변증법적 지양을 서양적 사유의 울타리(cloture)를 그리는 해체론적 글쓰기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때 울타리란 역사의 가능 범위를 조형하고 제한하는 경계이되 그 바깥으로 열릴 가능성을 지닌 어떤 이중적 회기의 경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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