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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해’ 선언 무색케 하는 공무원과 출판인의 불통
‘책의 해’ 선언 무색케 하는 공무원과 출판인의 불통
  • 백원근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 승인 2018.04.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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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낸 출판인 고영수는 회장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출판의 발견』이라는 책을 지난해 2월에 상재했다. 출판 단체장으로서의 경험담을 담담히 서술하면서 출판의 내일을 위한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다. 출판 단체장 입장에서 겪은 답답함을 토로한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공무원들에 대한 소회를 가감 없이 쓴 「공무원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란 꼭지가 있다. 공무원의 순환 보직 인사에 따른 잦은 교체와 전문성 결여, 비전과 소신의 부재 등을 꼬집었다. 공무원 개인보다는 주로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달 13일 수백 명의 출판인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서울 사무소 앞에 모여 시위 피켓을 들었다. 날선 정부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 201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의 낙하산 임명을 규탄하는 광화문 집회 이래 6년 만의 일이다. 

그날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해 8개 단체에 소속된 출판인들이 ‘문화국가 건설을 위한 출판 적폐 청산 촉구 제1차 출판인대회’에서 내건 요구는 4가지였다. 저작권법 개정을 통한 ‘수업 목적 이용 저작물 보상금’ 분배에서 출판권자의 권리 인정, 대학가에 만연한 불법복제를 방치하는 한국저작권보호원장(블랙리스트 관련 인물)의 퇴진, 세종도서 사업의 민간 이양,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선정 방식(민간이 주도하는 임원추천위원회)의 정관 명시를 통해 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와 연관돼 있다. 그 요구의 타당성, 수용 가능성에 대한 정부 입장은 출판계와 다를 수 있다. 사실상 모두가 수용하기 어려운 ‘출판계의 일방적 요구’라는 것이 정부 쪽 인식으로 파악된다. 정부에 대한 요구를 끝까지 대화로 풀지 않고 물리적 행동에 나선 것에 대해 정부 관료들은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인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절박한 문제를 어떻게든 풀기 위한 절절한 호소임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이런 경우 출판계의 요구 사항을 보다 면밀히 확인하고,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논의 테이블부터 마련해서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순리요, 바람직한 정부의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출판계에 어떤 소통의 메시지도 주지 않았고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묵묵부답이다. 한 마디로 ‘묵언 행정’을 하고 있다. 대놓고 출판계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불통 행정’으로 보인다. 정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피해 당사자인 출판계에는 직접적으로 그와 같은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 더구나 최대 이슈라 할 수 있는 ‘수업 목적 이용 저작물 보상금’ 문제에 대해 저작권 주무부서에서는 저작권자 단체의 반대 입장 등 이해관계자 간의 이해 상충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책 결정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는 불신이 더해지면서 문제가 더욱 꼬이는 형국이다. 언제까지 이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2차, 3차 출판인대회가 과격하게 열려야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의 본질이 대국민 행정 서비스 기관이고, 특히 퇴행을 거듭한 앞의 두 정권과 다른 변화된 정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책의 가치와 국민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책의 해’ 사업을 민관 합동으로 펼치고 있다. 사회적으로 ‘함께 읽기’를 내건 대국민 사업이지만, 실제로는 출판산업의 내실화와 여러 현안 과제들을 아울러 해결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병행해야 한다. 더구나 ‘책의 해’를 이끄는 도종환 장관과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밖으로는 화합하고 협업하는 모양새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행정 시스템과 산업 현장이 불협화음이라면 그 의미와 효과는 당연히 반감될 수밖에 없다.   

마침 올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관련 단체와 지자체에서는 ‘정약용의 해’를 선포했다. 백성을 살피는 목민관(행정 관료)의 자세에 대해 설파한 이 책의 핵심은 “목(행정 관료)은 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牧爲民有也)”이란 구절이다. 200년 전 전제군주제 아래에서 지식인의 통찰력이 그랬는데, 하물며 ‘국민 주권 강화’를 개헌안의 핵심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출판문화계의 온당한 요구에 불응하고 소통조차 기피하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이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만 힘을 쏟을 게 아니고 닫혀 있는 민관 대화의 창구부터 열어야 한다. 하나도 둘도 셋도 소통과 경청으로 행정에 임해야 한다. 출판인 고영수의 한탄이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백원근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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