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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크기와 별개인 지방분권
국토의 크기와 별개인 지방분권
  • 김남철 연세대·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8.04.09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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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5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부활했다. 제2공화국 시절에 잠깐 도입된 적이 있어 ‘부활’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상 이 땅에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작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지방자치는 오랜 중앙집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 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변화나 성장이 무색하리만큼 우리 사회의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인 것 같다. 분권과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지금도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에서 지방자치나 분권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방자치는 본래 주민들의 생활공동체를 기준으로 해 그 지역이 자기지역의 사무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자치권한을 보장해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스스로 자기지역의 사무를 처리하게 한다는 데 중점이 놓여 있다. 지방자치는 일정한 생활공동체에 자치권을 보장함으로써 주민들의 공동체생활을 활기 있게 하고, 각 지역들이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각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는 정치적 이념이다. 따라서 국토의 광협과 지방자치는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른 한편으로 분권은 국가권력을 나누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국가권력을 입법·사법·행정으로 나누는 수평적 분권과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는 수직적 분권이 있다. 수직적 분권 안에는 일정한 지역에 자치권을 나눠주는 지방자치의 문제도 포함이 돼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와 지방의 관계와 권력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들어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건을 경험했고, 이와 같은 엄청난 경험을 통해 많은 국민들은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 그리고 외부로부터 차단(또는 폐쇄)된 권력이 아무래도 부패하거나 남용되기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리라 짐작된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의 대선후보들이 권력의 분산과 통제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대선을 치루고 난 이후, 저마다의 정파들은 이와 같은 개헌의 중차대한 문제를 앞으로 있을 여러 선거들에 대응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국가권력의 적절한 분산은 시대적 요구이자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문제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만 의지하고 살 것인가 스스로 반문해 보고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방자치를 실시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모든 권력과 중요한 행정수단들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국가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일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지방자치는 일정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이러한 자치만 가지고는 국가권력 독점의 폐해를 청산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를 보장하고 실시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와 광역단위의 행정 차원에서 국가권력의 합리적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분들이 이를 두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용됨으로써 전 지역이 골고루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 개헌보고서나 얼마 전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학문적인 논의나 사회적인 합의가 더 필요해 보이는 내용들이 다소 성급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지방자치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나아가 지방으로의 분권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튀빙엔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았고, 행정법 및 지방자치법, 건축행정법 전문이다. 주요 저서로는 『행정법강론 사례연습』, 공저한 『도시재생 실천하라』 등이 있다. 현재 한국비교공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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